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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Monatophobia

 

단에게도 한 때 사무실에 앉아 무엇을 하면 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무작정 지나가던 선배물론, 그때엔 회사 안의 모든 사람이 선배였다를 붙잡고 현장에 데려가 주십사 부탁했던 날이.

 

저기……, 내 몸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썩기 시작하는 건가요. 혼자, 홀로, 기다리다가, 구더기가 끓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해야 집주인이 신고해서 발견되고요?

그런 게 어딨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눈물로 짓무른 초면의 얼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견뎌야 했던 날이.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얼굴은 잊어버렸다. 이름도. 그 이름을 마루가 세 번이나 불렀음에도 어쩐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른 것은 알았던 적도 없다. 단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완전한 타인他人.

 

의욕 있는 인재가 들어왔구먼! 아직 자리 적응하기도 바쁠 텐데 현장에 나오고 싶다니. 지천地天……아니 헬-븐의 미래가 아주 밝네.”

아하하, 그렇게까지 좋게 봐주시다니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의욕이라고 봐도 좋을까.

단은 아직, 오른손이 어느 쪽인지도 헷갈리는 입사 첫 주.

쓸모에 자신이 없었다. 회사에 단을 추천한 이에게는 실례일지 모르지만, 단은 어쨌든 인간이었으므로. 저승사자와 연이 닿은 이래 지하철역에서 겪었던 몇 번의 제령除靈에서 단에게 어떤 역할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아마 입사도 그 덕분이겠지.)

하지만 특정 장소, 그것도 2년간 복무했던 장소에서의 경험만으로 단이 활약, 아니 활약하지 않더라도 뭔가 한 사람 몫을 해낼 상황이 늘 존재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 같이 일할 수 있어서 뽑았겠지. 안 그러면 애초에 회사에 오라고 했겠어? 알아서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주겠거니, 멀뚱멀뚱 빈 의자가 많은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문득 안일安逸이 불안해진 날이었다.

누가 단을 안단 말인가?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아니, , , 어르신, 아니, 선생님?”

 

마루 선생님,

아니, 입에 붙은 호칭이 자꾸만 말끝에 달라붙는다. 함께 일하는 사람사람, 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단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그들은 거의 저승사자일 것이다, 인격人格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어쨌든,

일단은 마루 선생님, 소괄호 열고 물음표, 소괄호 닫고.

이국적인 외모에 생활 한복 풍의 화려한 코트를 입은 오마루 선생은 단의 짧은 생에서 세 번째로 말을 섞게 된 저승사자로, 그 역시 단이 아는 두 사자 못지않게 시선을 끄는 면면이 있었다. 전통적인 저승사자의 외양이나 복식에 대한 고찰은 의미가 없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죽을 때까지 가 볼 일이야 없겠지만, 저 세상저승이란 곳도 생각보다 다원多元한 곳인 듯하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공에게 유익한 견습見習의 자리가 되어야 할 터인데.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아이구, 데려와 주신 것만도 큰 배움인데요. 어깨너머로 많이 배우고 열심히 보필하겠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도울 일 있으면 편하게 부려주시고요.”

 

나이 지긋한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나 쓸 법한 말투를 쓰는 그였지만, 그의 언동에 묻어 나오는 기품과 배려가 있어 꽤나 고풍스럽게 들렸다. 마루와 오늘에나 처음 통성명을 했으므로 인품을 예단豫斷할 수는 없지만, 멋모르는 신입의 부탁에도 기꺼이 응해줄 만큼 호인好人인 것만은 분명하였다.

 

, 도울 일 하니 말인데, 사실 내 스마-트폰이 아까부터 먹통이라네. 바꿀 때가 되었는지 밖에 나오면 종종 말썽이야. 단 공은 새로운 문물에도 익숙한 듯 보이는데 한 번 살펴봐 주겠는가?”

, ! 물론이죠. 잠깐 보여주시겠습니까?”

 

꼭 어른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자칫하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게 될 것 같은, 굉장히 최신 기종의 스마트폰이었다. 단은 넘겨받은 기기를 이리저리 기울여가며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인터페이스였지만, 곧 디스플레이 설정 메뉴에서 화면 밝기를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괜찮으신지 한 번 보시겠습니까? 화면이 어두워서, 오늘처럼 햇빛이 좋은 날엔 야외에서 사용하기 어려우셨을 것 같습니다.”

오오, 고맙네. 이제 시간이 보이는구먼.”

 

(시계로도 쓰시는구나. 좋은 시계이긴 하지, 정확하고.)

아닌가, 어쩌면 아직 스마트폰의 다른 기능에는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단은 생각한다. 무언가 유용한 기능을 알려드리면 점수를 딸 수 있을까? 단이 생각을 마치기 전에 마루가 스마트폰을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슬슬 시간이군, 이제 움직이세.”

, ……? !”

 

 

 

, , , …….

벨 소리가 울리며 3분이 흘렀음을 알렸다.

 

시간 됐네요. 이제 다 익었을 거예요.”

 

단은 스마트폰의 타이머 기능을 설명할 때처럼, 마루가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천천히 컵라면 뚜껑을 접어서 건넸다. 반으로 한 번, 또 한 번 접고 접힌 틈을 벌리면 간이 그릇이 되는, 별로 대단한 공작은 아니었지만 마루는 컵라면을 처음 보는 것 같아 보였기에. 아니, 육개장을 이런 종이 그릇에 끓여 먹는다니? 자고로 육개장이라고 하면 가마솥에 고기를 푹 고아서 육수부터 우려내야 하는 게……. , 그 편이 좋겠지만 이건 인스턴트니까요. -스턴-? , 즉석 식품이란 뜻입니다, 선생님. 요리할 시간이나 공간이 없는 사람들이 간편하게 먹는 제품이죠. 사실 저는 자주 먹는 편인데, 입에 맞으실까 걱정이네요. 사실 진짜 육개장은 아니고 일종의 국수 같은 것이라서…….

나름, 이것도 나름 신문물이라면 신문물이 아닐까. 단은 열심히 변명 같은 설명을 늘어놓는다. 어쩐지 말을 멈추는 것이 어려웠다.

 

단 공. 괜찮은가?”

그런 단을 차분히 지켜보던 마루가, 드디어 물었다.

 

, . ……저야 괜찮지요.”

단은, 차분히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노력대로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죽은 이의 얼굴은 이미 잊어버렸다. 이름은, 그 이름을 마루가 세 번이나 불렀음에도 이름의 끝 글자가 벌써 가물가물하다. 시간이 흐르면 성씨도 이름의 끝 글자도 모두 잊게 될 것을 예감한다. 그 외의 일은 알았던 적도 없다. 그는 단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완전한 타인이므로.

하지만 한 가지 잊기 어려울 것은,

그가 그 임대 아파트의 602호에 살았다는 것.

 

사지 멀쩡하고, 살아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괜찮지 않은 것은 단이 아니라 602호의 그 사람 쪽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활감이 없는 방은 병적으로 청결하였다. 마루가 이름을 세 번 읊조린 것을 끝으로, 냉기만이 흐르던 방 안에는 살아있는 것이 없었다. 단은 문 너머에서도 방 안의 에어컨이 낮게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위화감을 느끼며, 단은 부쩍 쌀쌀하고 청명해진 계절에 에어컨을 틀어둘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날이 추워지기 전에 쇠약해져 오늘은 에어컨을 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조금 속이 역겨워졌다.

 

어떻게, 입에 좀 맞으십니까. 선생님?”

크흠, 조금 맵지 않은가? 그래도, , 3분 만에 이만한 음식으로 변한다니 신기한 물건이로구먼.”

, 삼각김밥을 같이 드시면 좀 나으실까요. 이렇게 보시면 삼각형 모서리마다 숫자가 쓰여 있죠? 김이 밥에 젖지 않도록 따로 포장한 것이라 뜯는 방법이 조금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포장을 벗기면…….”

 

단은 늦은 점심으로 육개장 맛의 컵라면을 골랐다. 비위가 상한 탓인지 무언가 맛이 강한 음식을 먹고 싶었고, 당장 생각나는 것은 편의점의 컵라면 코너뿐이었다. 이름이나 국물의 색깔을 빼면 어느 것도 육개장과 닮은 바가 없지만, 누군가의 기일에 어울리는 음식일지도 모른다.

 

컵라면,

 

망자는 서글프게도 울었다.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훌쩍임과 욕지거리 사이로 그가 오래 전부터 아팠고,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요양 중이었단 사실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그리고 단은, 마루가 말한 시간이 그 망자가 숨을 거둘 시각을 의미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때에, 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도.

 

컵라면도 하나 못 버렸는데…….

 

싱크대 옆에 깨끗하게 씻은 컵라면 용기 하나가 남아있던 것을 기억한다.

이웃에 자신의 병이, 자신이 미처 치우지 못하고 간 것에서 악취가 나 폐가 되지 않도록, 그는 작은 당근 조각도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의 끝은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얼마나, 외로운가.

그렇게 오랫동안 최후를 준비하고 기다려 온 사람마저도,

찾아온 저승사자 앞에서는 하루라도 더, 한 시간, 한순간, 내뱉은 마지막 숨 한 모금마저 너무나 아까워 어쩔 줄 모르게 되는 모양이었다.

 

, …….

 

단 공, 자네 라면도 다 익은 모양이네. 어서 들게.”

, 그래야죠. 잘 먹겠습니다.”

 

단은 컵라면에 끼워 두었던 나무젓가락을 빼냈다. 벌어진 입 사이로 뜨거운 김이 한 김 새어 나온다. 양 엄지에 고르게 힘을 실어 젓가락을 둘로 쪼개고, 조금 망설였다가, 그것을 오른손으로 들었다. ■

 

 

 

181009

Monatophobia; 고독사에 대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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