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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뭐라는 건데...




 부모님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바다와 하늘의 세계엔 두 사람 뿐이었다. 물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바다는 아직도 부모님이 왜 맏이인 제게 바다라 이름을 붙였는지 알지 못한다. 왜 동생의 이름이 하늘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바다와 하늘의 세계가 뒤집혀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세계 안에서는 바다가 하늘을 내려다봤고, 하늘이 바다를 숭배했으며, 원할 때엔 언제라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었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혀를 섞을 수도 살을 섞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 뒹굴고 있을 때면 그 세계엔 하늘도 바다도 없었다. 자기연민과 자기애가 뒤섞인 파랑밖에 없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만의 것이었다.

 "파-란,"
 
 바다가 음률없이 중얼거렸다. 좋아하는 동생의 납작한 배에 손을 얹고, 하늘이 숨을 쉴 때마다 손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감각을 즐기던 중이었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오래된 어떤 노래의 가사긴 했지만 사실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바다에게는 꿈도 사랑도 없었으니까. 그 대신, 바다에겐 하늘이 있었다. 바다는 하늘의 입술 위로 손을 뻗었다. 하늘이 새끼새처럼 입을 벌렸다.
 물론 그 안의 혀는 여느 사람처럼, 혹은 바다의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 색이다.

 하늘의 입 안은 언제라도 습하고 따뜻해서, 둘이 함께 하나였던―그리고 둘로 함께 자란 어머니의 자궁을 떠올리게 했다.
 바다는 문득 조금 외로워지고ㅡ그리워져서, 그래서 조금 더 손가락을 길게 뻗었다. 하늘의 혀끝이 손끝에 닿았다. 접히다가 감겨들었다. 당연하단 듯이 손가락을 핥아올리는 감각이 아주 조금, 슬펐다. 눈을 감았다. 영원히 기억할 수 없을 낙원에서, 두 사람이 하나였던 때가 있었다. 문득 그 곳을 떠나 빛과 만났던 날을 떠올린다. 바다가 하늘보다 먼저 흘러나와야 했던 3분을 떠올린다. 떠올려본다. 아주아주 조금 더, 기분이 나빠졌다. 바다는 손을 떼어버렸다.

 물론 그런 것을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왜?"

 하늘이 물었다. 왜 노래―라기보단 노래가사를 읊는 정도였지만―를 그만뒀냐는 게 아니라, 왜 손을 떼냈냐는 질문이었다.
 살짝 입맛을 다시는 입매는 바다와 꼭 닮아 고왔지만, 조금 초조한 듯도 보였다.

 "바다야?"

 그 표정이 귀여워 바다는 웃고 말았다. 하늘의 것과 꼭 닮은 웃음이었을 거다. 하늘은 절대로 바다를 형이라 부르는 일이 없었다. 대답하는 것이 귀찮아 내버려두면 응? 하고 다시 채근해온다. 일상같던 스킨쉽이 도중에 끊어진 것보다도, 바다의 흥이 깨졌을까를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바다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하늘이 겁에 질려 바다의 손을 붙잡기 직전에, 하늘의 몸 위로 몸을 숙였다.

 수평선이 한 차례 더 흐려졌다.

 홀로 쫓겨나 숨쉬어야 했던 3분이 얼마나 지루하고 무의미한 것이었을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바다는 알고 있었다. 저 없이 살아본 일이 없는 하늘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을 일이었다. 그러니까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사랑스러운 동생이니까. 하늘이 없으면 바다의 세계는 절반밖에 남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바다밖에, 또 바다밖에 남지 않으니까. 수평선이 없는 낙원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성심성의껏 3분 어린 그의 절반을 끌어안는다. 품 안에서 하늘이 물었다. 화났어? 바다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몰라.

 "그러면―"
 "그러니까―"

 둘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바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문장을 끝마쳤다.

 또 하나가 되자,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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