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잠들어있었던 거다, 이진은 생각했다.
졸업논문이 전부 문제다. 아니 어쩌면 괜히 이불빨래를 하면서 독서를 한 탓이다. 그것도 아니면 얇은 옷만 입고 장을 보러 나갔던 탓인지도. 아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이진은 해진의 몸이 희게 빛나는 모양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끌어안았는지 찔러넣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찔러넣은 게 아니라 베었는지 졸랐는지의 문제다. 아니, 어떻게 하기도 전에 공기인지 달빛인지 뭔지 모를, ㅡ그러니까 저에게 닿을 수 없는 그런 것들에게 녹아들어버려, 다시는 영영 잡을 수 없다.한 번도 본 적없는 눈물어린 표정으로, 가늘게 인사했다.서늘한 피부를맞댈 수 없다. 끌어안을 수 없다. 해진이 울었다,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무어라 수식조차 붙일 수 없도록 유일하고 소중해서, 웃어야만하는 그가.그래. 그런 것은 말이 된다. 아니,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건 전부 꿈이다. 꿈이니까 그런 꿈도 꾸는거다. 그런 꿈은 싫다. 사라져.
ㅡ사라져,
어두운 꿈 속을 헤메다가 말고 익숙한 기척을 느낀다. 사랑한다. 이름을 부르지는 못한다ㅡ그는 자신에게 선배니까ㅡ하지만 찾아야 한다, 가까이 있다면, 안아야 한다, 끌어안고, 말해야, 할, 게,
「…선배」
있어서,
억지로 의식을 끌어내, 목소리를 울린다. 손가락을 움직였다. 헤매도, 없다. 아니, 있다. 눈을 뜨고 싶은데, 뜰 수가 없다.
「ㅡ선배,」
속눈썹에 닿았던 손가락ㅡ이겠지ㅡ이, 어둠을 휘젓는다. 더듬어, 손을 잡는다. 얼음장 같은 손가락이지만, 손가락에 감겨오는 것은 언제나처럼 가늘고 강하다. 감싸쥔다. 감싸쥔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ㅡ왔어, 선배? 그렇게 묻자.
무서웠어, 선배, 그런 것은 말하지 말자.
어디 갔었어? 선배, 그런 것은 말하지 말자.
선배 꿈을 꿨어, 선배, 그런 것은 말하지 말자.
사랑해, 사랑한다면, 선배, 그런 것은, 말해서는 안 된다.
「선배,」
간신히, 눈을 떠올렸다. 흐릿한 밤의 시야에, 녹아들 듯 해진은 있었다. ㅡ있다는 것이 기쁘다. 순수하게 여과된 기쁨만으로 이진은 눈을 일그러뜨렸다. 다행히도 일그러짐은 이지러짐이 되고 해진도 잘 알고 있을ㅡ그리고 좋아하는 듯한 웃음이 될 것이다. 선배, 슬펐어.
「왔어?」
「응,」
모를 표정을, 너무 익숙해진 웃음에 덧씌워 해진은 내려다본다. 이진은 소중한 손을 품 안으로 끌었다. 자신의 체온이 옮아가는 손에 대고 손이 평소보다 차다는 둥, 하는 소리를 잠꼬대처럼 뱉었다. 해진은 달빛처럼 웃고, 응, 밖이 추워, 하고 대답한다. 선배가 없으면 안 돼, 그런 것은 말할 수 없다.
「이리 와, 선배」
끌어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녹아있던 이불 안에 그것을 숨긴다.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진은 알았다. 해진의 식은 몸은 가엾고, 스러질 듯 강하고, 언제나보다 더, 힘껏 끌어안아준다. 미미하게 한기를 느끼면서, 이진은 문득 졸려진다.
…이불이 몸에 스치는 소리는, 정이 지도록고요했다.
자신의 몸을 죄여오는 팔의 힘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이진은 깊게 해진을 감싼다. 이상하게 이 사람이 묻혀오는 추위는 춥지 않다. 차라리 가엾다. 그런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운명지어져,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어찌되었든 해진의 것인 것처럼ㅡ.
어떻게 선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어,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은 있다. 끌어안을 수 없는 것은 있다.
분명히,
그가 없어도, 녹아버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갈자신이라던가,
자신이 없으면 외로움에 죽어갈, 고작 두 살밖에 많지 않은 어리고 여린등 같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