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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강당은 추워.



 "전체 차렷."

 S고의 체육관 겸 대강당은 전교생을 수용할 정도의 넓이와 높은 천장을 자랑했지만 그만큼 넓었기에 난방시설은 무색하도록 추웠다. 그것도 봄눈이 내리고 있는 초봄, 겨울코트들을 벗겨놓은 신입생들 사이에 끼어있자면.

 "ㅡ다음은 장학금 수여가 있겠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마신 공기가 여름의 것이었던 탓에, 이진은 추위에 약한 체질이었다. 희미하게 불어오는 온풍에 기대 덜덜 떨리는 어깨를 억지로 눌러본다. 그나마 이진이 그것은 교사진영과 가까운 앞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담임인지 뭔지 모를 초면의 교사는 네가 이진이니? 정 선생님 아들?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 비슷한 눈초리로 자신을 보긴 했었다.

 "전체 수석, 1학년 9반 김 성희 앞으로."

 이진은, 담임교사의 그것과는 전혀 닮지 않았을 시선으로 무대 위를 올려다봤다. 무대라기엔 제법 높은 감이 있는, 오히려 운동장의 조회대와 흡사한 높이였다.

 "전체 차석, 1학년 3반 이 은영 앞으로."

 중학교 때와 비교해봤자 단상에 붙어있는 교표와 교사들의 얼굴만이 다를 풍경일 것이다. 이진은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수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ㅡ그러니까 입학식을 진행하고 있는 전교회장의 목소리 같은 것에도. 이진은 엄지발가락에 감각이 없다는 점에 신경이 쓰였기에, 몸에 스며있던 한기가 녹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1, 2차 진단고사 과목별 최고득점자, 국어과, 1학년 3반 이 은영, 1학년 4반 강 현지 앞으로."

 저렇게 일일이 부르고 있으면 혀가 꼬이진 않을까? 안 그래도 혀가 얼어버릴만큼 추운데.

 "1, 2차 진단고사 과목별 최고득점자, 수학과, 1학년 3반 정 이진 앞으로."

 아. 이 때 나가라고 했었지. 같은 것을 멍하게 생각하며 이진은 제법 많아보이던 무대의 계단을 밟아올라갔다. 발 아파. 그런 걸 생각하면서.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여교사가 지시해준 자리는 유치하게도 단상 앞에 청테이프가 발려있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교장의 벗겨진 이마가, 아니 목소리가 무어라 상장번호를 읽고흰 봉투와 함께 그것을 건넸다. 박수, 받고, 옆에 끼고, 뒤로 돌아, 차렷, 경례, 뭐 그런 것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시 차렷, 이진은 박수소리가 끊이기 전에 고지의 유리함과 가공할 시력으로 아버지의 뒷모습을 찾았다. 아마도 2학년의 담임인 듯 했다. 이제 퇴장. 내려가는 계단이라 전해들은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기 위해 어깨를 돌렸다. 거기에는 교장의 앞보다는 다소 위엄이 부족한 단상이 하나 더 있었다. 이진은 잠시, 무척 기묘한 위화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층계를 내려갔다.

 "수고했어. 이제 줄로 들어가서 합류."

 위화감의 원인을 이진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익숙한 것이 익숙할 리 없는 장소에 당연하단 듯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네."

 ㅡ그 눈은 웃고 있었다.

 이진은 보통 가르친 제자가 장학금을 받는 모양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과외교사는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해진은 그 많지 않은 쪽이었다. 그 생각을 해낸 것은 이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뒤였고, 그 뒤로 한참 수여식이 이어지고 나서야 이진은 어렵사리 놀라움을 느낀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제자란 것은 S고에 재학중이란 얘기일테지. 그것이 꼭 그 사람이 그 학교의 전교회장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가. 그런 모양이었다. 위화감을 적당히 여러 번 접어서 마이의 앞주머니에 쑤셔넣고 이진은 그가 무대의 중앙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전체 차렷, 교장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십니까.
 허리를 숙였다가 다시 바로하면, 뒤돌아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있는 해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벨트는 하지 않았을 뒷모습. 뭉뚱그려져 중학교 때와 별 다를 것 없었던 조회풍경이, 묘하게 선명해진다. 이진은 바로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의 뒷통수로 시선을 옮겼다.




주제 : 잘난 사위 제 사위/흐느적/흐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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