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가희야, 오늘 시간 있어?
공짜 티켓인데 내일 갑자기 잘 봐야할 테스트가 있다는 소리를 하면서, 그녀의 육촌 언니가 넘겨준 영화표에는 제법 흥행하고 있던 멜로영화의 제목이 찍혀있었다. 시간있는 휴일이고 하니 나쁘지 않겠지 생각했지만,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늦었네? 하고 물었을 때는 나쁘지 않겠지라니, 정말 나쁘지 않았던건가, 아니 어딜 봐서 나쁘지 않은거지, 그보다도 인사를, 아니 콜라라도 하나 사 왔어야 했나 따위를 이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아마도) 고민해야했다.
"언니는 내일 테스트 준비 때문에 못 온다고,"
"아, 응. 그리고 콜라는 내가 사 놨어. 팝콘은 나 안 먹어서."
에, 내가 콜라 얘기를 했던가? 막 조명이 꺼지고극장 주변의 음식점 따위를 홍보하는 영상이 상영중인 중에, 희뿌연 스크린의 빛만으로 다른 사람과 제대로 마주본다는 것은 제법 이채롭지도 안타깝지도 못한 일이다. 그저 지민은 빤히 올려다보았고, 그래서 가희는 조금 당황했다. 지민의 입술이 달싹였다ㅡ사실 고백하자면 달싹이는 것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지만.
"뭐 해? 앉지 않고."
"…에? …아."
지민은, 다소 느긋하게 가희가 든 좌석번호의 바로 옆 자리에 몸을 바짝 기대고 앉아있었다. 기분 탓인지 허리를 곧게 펴고 양반다리를 하고, 그 자세가 가장 편한 것처럼 앉아있는듯한 모양과 쉽게 겹쳐진다.가희가 조금 더 침묵하다가 좌석에 몸을 기댔다. 스커트 자락을 조금 정돈한다. 곧 가지런하게 모인 손이 무릎에 얹힌다. 그 모양이 움직임을 멈추고나서야 지민은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영화 보고 싶었거든."
"아,"
"…그 말 밖에 몰라?……아, 영화 시작한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대화를 끊으면서도, 조금도 미안하단 생각은 없었다. 정말 그랬는지는 스스로 자신이 없지만, 곁에 앉아있는 아라의 동생은 새벽에 술 취해 들어오는 게 취미인 육촌언니의 짝사랑 상대의 옛 애인을 상대로도 가루녹차 같은 걸 대접한다던가 하는 아량있는 여자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줄 거야, 따위의 믿음도 한 조각 없으면서. 그래도 조금 즐거웠다.
그러니까, 들으면 누군가 하나쯤은 화를 내겠지만ㅡ그래서 비밀이다ㅡ지민은, 아라보다는 먼저, 아니 영화표를 두 장 얻었을 때부터 그 다음 날에 묵직한 테스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뭐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