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대로, 가만히 숨을 죽였다.
「착하지,」
해진은 한없이 부드럽게 속삭였고,한없이 세심하게몸을 비집어 열었고, 한없이 잔인하게 미소지으며, 외로워하면서, 그토록이나 냉혹하게, 자신을 시야에 담지 않는다. 이진은 알았다. 자신의 시야에 가득찬 것이 누구인지와, 그의 시야에 들어있는 것에 자신의 비중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그랬기에 순순히 다리를 벌리고, 몸을 열고, 바란다면 어깨를 잡고, 페니스를 머금고,그가 원한다면 소리내어 신음했고, 그가 원하지 않아도 몸을 떨고, 입술을 깨물고, 시트를 세탁했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손톱을 세우지 않고, 샤워를 서두르는 것도 참고,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울지 않았다.
「ㅡ응, 착하지,」
그렇게나마, 자신을 눈에 담아주는 것은 그 뿐이었으니까.
「…….」
닿으면 닿을수록 더 외로워지는데도, 어째서, 하필 이렇게 차가운 손을, 아니, 손이.
「……듣고 있어?」
「ㅡ이진아?」
빛이 없다면 그림자조차 모르는 것일테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슬플 것도 못되었다.
하지만 이진은 그의 웃음만큼 슬펐고, 그래서, 아니 그렇지 않아서,그를한 번 거절하지 않았다.
「──대답해야지,」
이진은 반쯤 감기려던 눈을 떴다. 해진의 웃음은, 눈만으로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눈이 마주쳤다. 마찬가지로, 외로워하는 건지, 외로운자신을 동정하는 건지, 아니면 그 어느 쪽도 아니거나, 둘 다인지도, 도통알 수 없었다. 알래야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응,"
이진은 가만히 대답했다.그 안에 실린 뜻도 감정도, 소리가 되지는 못했다. 되지 않았다.
사실 당신이 그렇게 웃을때면 늘 울고 싶었다고. 외로움을 아는 것이 두렵고, 그런 것 따위를 두려워하는 것이 슬프고, 그래서 외로웠다고. 그런데 그 불편한 웃음이 싫을 만큼 좋았다고.
…그 손을, 실은 많이 좋아한다고.
절반은 너무 늦게 깨달았고 절반은 아직도알지 못하는 그 말을, 소리낼 수 있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