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용서를 빌었어?」
이이님의 썩 신성하다고 보긴 미묘한 복식취향에 한 가지 강점이 있다면, 검은 모자챙과 감기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드물다는 거겠지. 그래도 아무쪼록, 이제 제법 내려다보는모양이 익숙해진 눈은 꽤나 고고하고새카만 색이니까ㅡ국적이 그렇다보니 어쩔 수 없는지도ㅡ.괜히 어둠의 여신이니 재앙의 여신이니 파멸의 여신이니 하는뿜기는 표현이 들러붙는 게아니구나 싶기도 했어.
「…────」
「…내가 널 용서해야하는 이유가 있나?」
무심해. 역시 무심하달까. 이이님답달까. 잔뜩 귀찮아보이는데 저렇게 과로하도록 내버려두다니, 신야주 씨가 꽤무리시킨 건가?잠은 재우는 건지 몰라.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잠을 자는 족속이 얼마나 있던가…아니 그래봤자 총 인구수가스물남짓 밖에 되지 않으니 계산해봤자긴 하지만, 무튼, 신야주 씨를 만나봐야겠…….
「잠깐,」
이런이런, 여중생 즈음 되어보이는 여자가 하나 앞에 있었구나. 지금 막 움찔 떨었어. 이이님이 압도적이어서깜빡했네. 교복 같은 거 입고 있는데, 음, 뭘 잘못해서 이이님 앞에서 저러고 있지? 뭔가 문맥상으론 저 애가 대답해야 할 때 아닌가, 한 턴 정도 쉬지 그래 이이님, 아직 졸린 거 아닌가? 어라, 나 정말 요즘 사랑에 빠졌나, 옆에 신야주 씨랑 라헤도 있었네. 그러고보니 피라펜 어디 갔나?
「너 말고,」
이이님?
「거기 너 말이야.」
어라….
마스크를 벗은 건 귀여우니 좋은데, 어째 너무 이 쪽을 보는 것 같다?
「라헤 씨, 저거, 잡아」
도망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