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마침 그 시간에 신축한 별관ㅡ이전한 도서실의 규모는 교실 여섯 개를 합쳐놓은 크기였다ㅡ과 이어지는 층계 근처를 지나던 건, 수시에 합격해 한가해진몇몇에 끼어 가을을 도서실에서 보내야 하던 차에 목이 말랐던ㅡ다 좋은데, 별관의 정수기는 물이 미지근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ㅡ자신과 이진, 그렇게둘 뿐이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던가, 인사도 무엇도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말을 걸어야 겠다고 생각한그때 갑자기 자신을 보던 멍한 눈이 시야에서 무너지듯 사라졌다.
ㅡ이질적일 만큼이나묵직하고 힘이 없는소리가, 귀를울렸다.
"……음?"
지금까지 해진이 인식하고 있던 그 후배의 분위기는 굳이 구분하자면 고요한 곳의 공기와 흡사한 것이어서, 무색무취에ㅡ라고 말하기엔 그 몸의체취가 식물의 냄새를 닮은 것이어서 무리가 있긴 하지만ㅡ맛도 없고, 조용하고 건조하고, 가라앉아있다고 하는 것이 좋을까, 나름대로의 균형이 있달까. 말하자면소리도 무게도없는종류의것이었다. 앳된 애 주제에.
"……너,"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균형을 잃고그런 소리를 내면서 굴러 떨어질 거라고는.
"…정이진?"
자신의 부름에도 이진은 그저 침묵했다. 그럴 리가, 아무리 피곤하고 성가시고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라도 대답만은 꼬박꼬박 성실히 해주던 녀석이었지 않나.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등지려다가, 그래도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두고 가버리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싶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순간, 쓰러진 머리며 드러난 귀의 모양을 보며 그것이 틀림없이 그라는 것을 깨닫고,
"……이진아?"
또,그제야,그의 쥐죽은 듯한 침묵이 본연의 의지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해진은 문득 자신이 그 몸 앞까지의 몇 걸음을 거의 뛰다시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알았음에도 정말 놀랍도록,이진은 기절해있었다. 조금 무게가 붙은 몸은 들었던 소음만큼이나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순간 언젠가 열에 끓고 있던 그의 이마를 만졌을 때의 오싹한 기분이 어김없이 찾아들었기에, 해진은 무척 불쾌해졌다. 하지만 이진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기에, 곧 그 불쾌를 잊었다.
02.
수험 스트레스라던가,
…예?
수험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멀어진 자신이기에 조금 멈칫하다가, 그것이 자신이 아니라 이진을 두고 한 말임을 깨달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은 그럴 애가……. 하기사 1학년한텐 좀 이른가, 어쨌든 조금 과로한 거 같던데.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를 하면서, 양호교사는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해진은 무심코 저런 걸 마셨다간 어김없이낭패를 볼 자신의 혀를 떠올리며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되었다.
그나저나 저 애, 이름이, 이따금씩 양호실에 가려는 이들이 손에 들고 오던 종이쪽지 같은 것에 그녀가뭔가 적기 시작하기에 아 정 이진이요. 1학년……대답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반을 떠올렸다. 7반이었나.
중셉 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