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허구의 애매한 서화

/--앗시 저 이거 그만 두려고 했ㄴmsep

 …으,

 이진이 머지 않아 깎아내밀사과조각을 기대하면서 책에 눈을 두고 있을 때, 그 신음소리 같은 것은 아주 작고 미미한 진동으로청신경을 자극했다. 뭐야? 묻는데도, 이진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사과의 껍질을벗긴단 빌미로 둥근 표면을 깎아내려가던,조금은기분좋게 울리던소음도 멎어버렸다.

 뭐냐니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기에, 해진은 책의 쪽수를힐끗 눈에 익혀둔뒤이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이진의 왼손에 들린 과도가 조금 불쾌하게 느껴진다 싶을 때, 그 시선이 그의 오른손에 닿아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마침 낮에 날을 세워뒀던 과도에다친 사람 치고는,꽤덤덤한 목소리였다고 이진은 판단했다.

 아니? 아니뭐,

 …조금, 베였어.

 …….

 어차피 가벼운 상처겠거니, 싶었기에 이진은다시 사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와중에,완전히 책장이 덮이는 소리가 들린다. 봐봐. 자신이 말하지 않았고 사과는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해진의 것이겠다.물흐르듯무덤덤한 억양이었기에 이진은 왜, 하고 흘려넘기듯 대답했다가, 그 억양에 평소의 웃음기가 전혀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조금 놀랐다.

 탁, 하고 칼날이 사과에 흡집을 내는 맑은 소리를 냈다. 얇고 미미한 흠집 사이로 칼날을 밀어넣기도 전에, 책장이 완전히 덮히는 소리가 들리고, 가죽쇼파에 누워있던 몸이 일어날 때나 들릴법한미지근한 소리가 들리고, 이진의 넓은 시야에 해진의 맨발이 보였다. 손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응?

 좀 보자.

 이제는 조금 투덜거리는 듯한 억양이, 그렇게 말하기에 이진은 잠깐 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사과로 시선을 내렸다. 아직 다 안 깎았으니까 기다려, 뭘 기다려, 사과 말고 네 손 보자고. 음? 손. 그리곤 시선의 각도가 낮아진다. 해진의 손이 오른손목을 나꿔채갔다. 본의아니게 사과는 이미 쟁반 위로 다소 요란하게 착지했다. 조금 웃음이 났다.

 선배, 사과 달라며.

 됐어.

 닿아오는 시선은 꽤 무심했다 싶었기에 이진도 따라서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사과의 물기탓일까 피가 번져있다. 해진의 이마가 조금 구겨진다. 웃는 쪽이 좋은데, 생각하다가 남의 피를 보면서 웃는 것도 좀 아니다 생각했다. 조금 묽은 피가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싫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해보였지만 손목을 뿌리치고 싶진 않았다.

 …선배가 다친 것도 아니고, 왜 그래.

 그리고 무시당했다. 생각보다 깊이 베였는지 어땠는지,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는 액체가 손가락 위로 흘러나온다. 해진은 대답없이 계속 흐르는 피에만 신경을 쓴다ㅡ저 이의 편협한 시야에는 매번 감탄하고 있다ㅡ. 그리고 손가락이 허공에 떴다고 생각하는 순간 뜨거운 것이 피를 핥았다. 선배? 하고 부르고 싶었지만 입술만이 소리없이 달싹였다.

 ㅡ비려.

 투덜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려다보며, 이진은 조금 무안해졌다. 피니까, 비리지.

 또, 해진의 입 속으로 피가 스며든다. 뜨겁고 말캉한 혓바닥이, 차갑고 날카로왔던 칼날이 쓸고갔던 부위를 똑같은 방법으로 쓸고 지나간다. 자각하지 못했던 상처의 깊이를 꾸짖듯이 핥아온다. 잊고 있었는지 애초부터 몰랐는지 모를 통증이, 타액과 함께예리하게 스며든다.

 ……선배?

 이번에는 제대로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해진은 대답이 없었다ㅡ그야 입 안이 가득 차있으니ㅡ

 피보다는 사과가 맛있지 않나, 생각하다가, 또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래 선배는, 하고 생각하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하고 또 생각하고, 무심코 이런 거, 어디서 봤는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슴 한 쪽이 미미하게 젖어들었다.

 이런 상처 따위, 금방 낫는데도…차마 그런 말은 떠올렸을 뿐 소리낼 마음 따위 가질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이진은 그 입술이 손가락을 놔주고도 셋을 세고, 나직하게 말했다. 사과 먹자. 해진의 눈이 올려다본다. 조금 구겨졌다가, 나른하게 펴진다. 싫어. 웃었다. 정말? 저 사과 비싼건데. ……. 선배, 왜.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한숨처럼 흐르듯, 담담한 얼굴로ㅡ이럴 땐 뻔뻔하단 표현과 일맥상통한다ㅡ이진은 물었다.

 다른 거먹을까, 그럼,

/-- 펑크를 피해서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왜 펑크냐고!!!!!!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