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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화풀이/--



 "왜 때려,"

 이진의 목소리가 낮았다. 날아온 것은 플라스틱으로 된 재떨이었다. 라이터도 함께였다. 그 둘보다 반 박자 쯤 먼저 베개가 날아왔기에 베개에 신경쓰는 사이, 이마에 딱, 소리가 울리도록. 아릿한 통증으로 이진의 미간이 구겨졌다.

 "선배가 뭔데 나를 때리는데."

 홧김에 잡았던 베개는 도로 던졌다. 라이터도 어떻게 잡아냈지만, 그걸 던졌다가 해진의 몸에 맞았다간 다치겠지 싶어 바닥으로 내던졌다. 화풀이었지만 조금도 나아지는 기분이 아니었다. 머리가 아팠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볼기짝 한 번 때린 적 없으셨다. 왜 선배가 나를 때리는데?"

 목소리는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무미했지만, 이진은 천천히 구겨진 얼굴을 폈다.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입가의 미미한 경련은 해진이 있는 거리에서는 눈치채기 힘든 것이겠지만, 어쩌면 보지 않고도 알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해진이었으니까.
 그가, 볼기짝이라도 때려줄 부모님과 너무 일찍 떨어졌단 생각을 못한 것은 두통이 심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을 사과할 마음도 말을 정정할 마음도 치밀지 않았다. 그저 가슴이 묵직하고 뾰족한 것으로 쿡쿡 쑤시도록 눌려서, 기분만 더 나빠졌다. 말인 즉 목소리가 더 낮아진 것 같다는 말이다.

 "선배가,"

 침대에 기대앉은 채 자신을 노기있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던 그의 표정이 아주 미묘한 것으로 변했다. 자신이 웃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이진은 생각했다. 아니 그래서이길 바랐다. 눈이 마주친순간 미안해, 부모 운운해서, 화내서, 목소리 낮춰서, 베게 던져서, 뭐 그런 걸 입 밖에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마 그에게는 이미 읽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해진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자신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웃는 얼굴은 이진에게 있어 화가 난 표정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의 표정이기도 하고 머쓱할 때의 표정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제 기분도 그 중의 하나겠지. 자신은 표정이 몇 개 없는 편이라고 그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의 말은 대체로 맞으니 아마 정말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지.

 "뭔데."
 자신이 화가 났었다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배가, 내 뭔데."
 아마도 이마에는 멍이 들 것 같았다. 어쩌면 엄살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미 피가 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보다도 제게 해진이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란 것을, 이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입이 멋대로 그런 소리를 뱉은 건 그냥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통증에 익숙치 않아서 치밀어오르는 불쾌감 때문이었고, 그런 자신의 기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그가 서운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질문을 바꿀까,"

 이진은 몸을 조금 숙였다. 해진의, 그리고 절반쯤은 자신이 기대있던 침대 위에 한쪽 무릎을 올렸다. 고압적인 투가 된 것 같았지만 그것도 사실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신경쓰이는 것에 짜증이 치밀었다. 머리는 계속 아팠다. 그러고보니 재떨이 어떻게 됐더라, 바닥 어디 뒹굴고 있으려나? 플라스틱이니까 깨지진 않았겠지? 안에 담뱃재 들어있던 건 아닌가 모르겠네, 청소해야할텐데,

 "나는 선배의 뭔데. 샌드백?"

 대답없이 다른 것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핸드폰이었다. 손을 뻗어, 날아오는 것을 잡았다. 견고한 고체였기에 손이 얼얼하게 아팠다. 도로 던지기도 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힘든 물건이었다. 맞으면 아프고, 떨어지면 망가지니까.

 "화나면 때리고 열받으면 던지고 짜증나면 물어뜯고……."

 해진의 단정한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사랑하는 모양 그대로였다.
 사실 자신이 화를 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해진이야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언제나 그런 식으로밖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이고, 이진은 그런 정도의 투정을 받아줄 정도의 아량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 거냐고."

 이렇게까지 화낼 생각은 없었는데, 이건 신의 농간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진은 반쯤 무의식중에 손을 높이 쳐들었다. 안 돼. 스스로 생각했다. 저 얄미운 머리통을 힘껏 후려쳐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좋은 때가 아니었다. 무릎으로 조금 걸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핸드폰 충전기며 시계라며 침실용 스탠드가 얹힌 탁자 위에, 반대쪽 손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조금 울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또, 자신은 화가 나도, 울고 싶어도, 지나치게 기뻐도 이런 표정을 짓곤 했다. 전부 해진의 말대로, 이진은 표정이 부족했다.

 "선배 따위, 정말 싫어."
 그래도 예전엔 입에 달고 살던 죽어버려 따위의 개소리를 짖진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선배한테 화풀이 한 번 못하는 내가, 더 싫어."
 해진의 뾰족했던 눈매도 조금은, 누그러져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이진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해진을 내려다보았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에 기가 약간 꺾여있었다. 이렇게 싸우는 중에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해도 해진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영원히 불변할 것 같은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도 이진은 무척 좋아했다. 누구도 아닌 해진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진은 조금 웃었다. 허공에 손을 들어올렸다.

 해진의 표정이 조금 동요한다. 겁을 먹었을까, 쥐었다 펴졌다를 반복하던 그의 주먹에서 힘이 빠진 것을 확인했다.
 역시 표정부족, 표정부족. 앞으로 거울보고 표정짓는 연습이라도 해야하나 고민했다.

 짜악, 시원한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이진의 뺨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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