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음, 생각해보고. 배가 고프다길래 뭐라도? 하고 묻자 해진은 그렇게 대답한다. 그래, 생각해봐ㅡ너무 손 많이 가는 건 말고. …사실 이미 식단에 힘을 주느라 재료고 뭐고 썩 넉넉치 못하다. 그러니까 미역국이라던가 잡채라던가 흔히 하는 갈비찜이라던가 하는 생일 아침상ㅡ그리고 대개는 점심 저녁, 다음날까지도 같은 식단이 이어지곤 한다ㅡ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자신의 곁에 나른하게 늘어진 몸은, 약ㅡ여기서 이진은 잠시 시계 쪽을 커닝했다ㅡ열 세 시간하고 이십 분 즈음 전부터 한창 스물 세번째 생일을 지내는 참이었다. 그 열 네 시간 중에 일곱 시간 정도는 수면, 한 시간 정도는 늦은 아침식사, 세 시간 정도는 섹스ㅡ여기서 세 시간은 새벽의 한 탕과 지금 뛴 한 탕에 이런저런 과정까지 합해 탈탈 털어나온 총합계로, 자신은 해진의 취미소설에나 나올 법한 굇수는 되지 못한다…랄까 정말 그랬다간 죽는 게 아닐까, 이진은 조금 고민했다ㅡ라는 지극히 욕구 충족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간 배분이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음」
뭐, 생일이고, 휴일이고 하니 뭐 아무래도 좋겠지 싶다.
이진은 몸을 모로 뉘여 해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으으음, 흥얼거리는 듯한 비음과 함께 바짝 안겨든다. 뭘 먹이지, 땅콩? 일 주일 전에 채워뒀던 땅콩은 해진 혼자서ㅡ아, 한 두 개 정도는 권해주기에 먹었던 것 같다ㅡ거덜내버렸다. 아침이 늦긴 했지만 몸을 많이 썼으니 지금 점심을 먹여도 될지도. 일단 씻기고 욕조에 담궈둔 뒤에 밥상을 차릴까, 아니 밥을 먹이고 나서 씻기는 게 좋을까, 그러다가 문득 어디선가ㅡ분명히 해진의 책이겠지만ㅡ본 듯한 텍스트가 떠올랐다.
<…목욕부터 하시겠어요,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그럼,」
<아니면, 저로?>
「나로 할래?」
물론 자신은 먹을 거리가 되지 못하니까, 이 쪽은 농담이다.
「…너?」
……농담이야. 뒤늦게 조금 후회하면서 대답했지만 어쩐지 해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농담에 대한 반응에 맞는 웃음이 못 된다. 문득 비어있던 등이 해진의 무게에 밀려 침대로 기운다. 시선을 들자, 흰 천장을 배경삼아ㅡ십여 분 전까지만도 열에 들떠있던 얼굴이 말끔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어째서인지 저런 얼굴을 보자면 후회가 되더라도 뼈가 저리는 감각을 느끼지는 못한다.
「왜? 너로 하자며」
웃음기 충만, 장난기 충만.
아무쪼록 자신이 감당하기 곤란한 악의는 보이지 않았기에 이진은 조금 안심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몰라」
시선을 살짝 피하자, 기척이 가까이 다가온다. 귓바퀴 근처를 어렴풋이 핥으며 정말 해도 돼? 하고 입김을 섞어 묻는다. 그 근처 어딘가의 솜털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쭈삣거리는 듯한 감각에 오싹해진다. 아마도, 해진이 기대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ㅡ당연하게 볼 거라고 믿고 있을 반응을 여실히 보여주며, 이진은 성실하게 조금 미간을 찡그렸다. 쾌감과도 불쾌감과도 거리가 있다.
「……뭐어」
…선배 배고프다며, 간신히 대꾸하자 말 돌리긴, 하고는 선선히 웃는 입매가 멀어진다. 아니 시야에 들어왔다가 다시 벗어난다. 두려움도 불안도 없었지만 자연히 눈을 돌려 찾게 된다. 바로 옆에, 하지만 팔을 뻗지 않으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얼굴이 있다. 새삼스럽게 이진은 조금 젖어있는 머리칼이며 눈매며 콧날 같은 것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어쩜 이렇게 생겼을까 같은 것을 생각했다. 아. 입매의 호선이 달싹인다. …그래서 뭐 해줄거냐니까? 나 오늘 생일이잖아.
「…….」
생일을 축하한다는 둥 하는 말은 이미 자정부터 아침식사 때까지 대 여섯번은 했다. 생일축하노래 같은 걸 부를 마음은 없고, 아침상은 차렸고, 생일 선물은……특별히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다가 이진은 이유없이 조금 웃었다. 오늘은 아직 아홉 시간 가까이나 남아있다.
「……뭐,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해 줄게」
뭐든지, 생일이 아니라도, 라는 말은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하지 않았다.
ㅡ그래?
ㅡ그래.
「이리 와.」
안아 줘, 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음에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여기 있잖아,」
이진은 속삭이며 순순히 그를 향해 돌아누워 팔을 뻗었다. 끌어안자, 사랑하는 호선 중의 하나가 어깨에 닿아 핥는 듯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녹아들었다. 더 세게, 하고 재촉하는 듯이 들렸기에 이진은 팔에 한층 힘을 주었다. 거칠지는 않았지만 고르지도 못한 호흡이 그대로 팔 안에 느껴진다. 눈을 감았지만, 뜨인 시야에 그가 없음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가 곁에 숨쉬고 있음이 기뻤다.
어디에도 이보다 사랑하는 것이 없었다.
In Fob Chain Messenger 8.0* : Written by Appeal
정이진 21세, 정해진 23세. 2006년의 생일을 축하하며:D 사위야 사랑한다!
정이진 21세, 정해진 23세. 2006년의 생일을 축하하며:D 사위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