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쾅. 쾅.
스탬프가 종이 위를 때리는 소리에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리듬에 맞춰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마, 종이 위의 내용이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뭐라고 쓰여 있든 사용하는 스탬프의 의미가 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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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애교를 부리며 조르면 단이 좋아하는 일을 선물처럼 넘겨주는 선배.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그 역시 윤회의 여정을 미뤄둔 인간의 영혼이란 것이다. 단은 그와 비슷한 처지라면 비슷한 처지인 영혼들에게 번호와 날짜를 붙이고 망설임 없이 스탬프를 찍어대는 장승에게서 이따금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사냥감의 냄새.
물론 스탬프 인주의 냄새를 착각한 것이겠지만.
단이 현장에서 주로 추적하게 되는, 각자의 이유로 망가지고만 원령怨靈들과 장승은 가끔 흡사한 기운을 뿜곤 하였다.
“다른 스탬프는 다 잃어버렸나 봐요?”
파티션에 기댄 채 묻자, 장승은 다 알지 않느냐는 듯 배시시 웃는다.
고양감으로 달아오른 뺨과 열로 번들거리는 눈을 내려다보며, 단은 그가 죽었단 사실을 일부러 리마인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장승이 아무리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천사처럼 말한다 한들 그의 심장은 오래전에 멈추었고, 그의 영靈을 담았던 육신은 재나 흙이 되었을 것이다.
“별로……. 쓸모가 없잖아요. 일만 많아지고.”
그것은 잃어버린―정말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만―다른 스탬프를 두고 한 말일지 덧없이 이승을 헤매고 있는 이들을 두고 한 말일지. 어느 쪽이든 같은 맥락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단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미 그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리고 말았을까.
“일은 어차피 계속 줄어들걸요. 저출산 시대잖아요.”
“저출산……. 맞아. 태어나는 인간이 적다니 좋은 일 아닌가요?”
그래서 죽은 인간의 영혼들을 두고 한결같이 ‘인간’이라 부르는 것일까.
쾅. 쾅.
그것은 단이 알 수 없고.
쾅.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어쨌든 장승은 언제나 단에게 단이 원하는 것을 줄 것이다.
“선배~ ‘인간’들에게 너무 가차 없네요. 근데 선배도 인간이었잖아요?
뭐, 저야 재밌는 일 주시면 그만이지만.”
그러니까 이 질문은 답을 기대하고 던진 것이 아니었다.
단이 좋아하는 일은 그저 위험한 일. 산 사람에게 넘어오지 않을 만큼 위험하다면 더 좋았다. 충분히 위험하기만 하다면 일의 방향성이야, 정해지는 대로 따를 뿐이다. 윤회를 거듭하며 본인도 기억 못할 역사를 살아왔을 어떤 혼백에 대해 영원히 세상에서 지울지 어떨지에 대한 것은, 그 어떤 순간에도 감히 단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정하는 건,
―사실 신神이어야 할 테지만,
이 스탬프를 쥔 이들이다.
(디지털 시대가 언제인데 아직도 종이 서류에 도장을 찍다니.)
(그러나 이 회사는 인쇄 기술이 나오기 전부터 이 일을 해왔다. 아직 많은 부분이 클래식하다 못해 고루한 방식―아날로그―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
쾅, 하고 다음 서류 위에 떨어져야 했을 스탬프가 잠시 멈췄다.
“저, 저……저는.
선택받았으니까요.”
장승이 그렇게 속삭였을 때 단이 감지한 것은 일종의 광기狂氣였고,
사냥감의 냄새와 너무나 닮았으며,
“아하하~ 선배도 참.
낭만적인 말을 잘하신다니까?”
그러나 사냥을 즐기는 단에게 익숙한 것이었으므로,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 말대로, 장승은 네브레NEVLEH에 남아있는 한 제령除靈의 대상으로 서류 더미에 올라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아직 산 인간인 단 또한 네브레에 선택받았기에, 심장이 뛰는 보통의 인간이라면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그 업業에 대해 직업의식을 넘어 선민選民으로서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누군가의 생애의 끝, 나아가 윤회의 끝마저 적나라하게 눈에 드러나는 이 세계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단 역시 이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염두에 두고 지내므로.
“망자도 선택받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와, 희주 씨다~”
단은 희주의 중얼거림보다 큰 목소리를 내어 그의 등장을 반겨본다. (물론 무시당할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이 구식 시스템의 회사에서 어쩜 이렇게 조직 문화만은 현대식인지, 이런 일도 지나치게 비일비재하다.)
어떤 말은 공중에 나오지도 않았던 양 가볍게 손까지 흔들어가며 분위기를 환기해봤지만, 단은 끼어야 할 때와 빠져야 할 때를 잘 알았다. 그 정도로 장승의 안색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제 단은 잠깐 빠져있을 때다.
이미 당겨진 긴장에 대해서는, 잠시 관조하는 수밖에…….
…….
……갑자기 단 것이 당기는데. ■
180726
미러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