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술 마시고 싶어요?”
“아니, 그냥 보고 있었는데. 마셔본 적 없고…….”
마셔본 적 없고?
“그 쪽은 이게 좋아요?”
술을? 마셔본 적? 없다니?¿
물어오는 율은 어쩐지 물에 빠진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단은 그의 나이가 문득 궁금해졌지만, 그가 또 다시 재채기를 시작하였으므로 서둘러 생각을 접는다. 수건과 담요를 포장하고 있던 비닐과 종이 쓰레기를 차곡차곡 정리해 분리수거한 것을 끝으로, 둘은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술 좋아하죠. 마시면 편해지거든요.”
뭐, 미성년자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스물은 넘었겠지.
▼
자고自古로부터 술은 약으로 불려왔다.
최초의 음주를 아직 기억한다. 그 때 그 한 모금부터 단은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수면 시간이 늘어난 것이 가장 컸다. 술기운에 기대 잠들면 수면의 질이 낮아진다는 이야기도 어딘가에서 읽었지만, 단은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하였다. 취기는 어쨌든 단을 조금 이완시켜주었다. 패러노멀한 신경에도 약간의 이격이 생기면서, 평소에 비해 눈에 들어오는 정보도 적어졌다.
(오늘 나만의 두통약, 그런 진통제 광고가 있었지.)
감각이 단에게 통증이라면 술은 단에게 진통제 같은 역할을 했다.
“제가 좋아하는 거? 전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어떤 음료수를 좋아하냐고 갑자기 물어져도, 단은 단의 음료 선호에 대해 지금껏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는 더 이상 입에 대지 않고 있지만, 그 외에 특별히 가리는 것은 없고. 뜨거워도 차가워도 괜찮아. 무엇보다, 단은 뭔가 마실 일이 있으면 술이나 물을 마시는 편이었다.
“선배는, 술 좋아하잖아요?”
또 감격해버렸네. 선배라니.
단이 말할 때는 너무 익숙하다 못해 자동완성이 되는 호칭임에도 불구하고, 듣는 입장이 되어보니 울림부터가 너무나 각별하였다. 더군다나 단에겐 너무나 희소한 것이다, 선배로서의 입장이.
“아하, 그 얘기였구나. 율 씨는 술 안 마시잖아요.”
웃어넘기며 편의점의 문을 열고 돌아보면, 율은 빤히 단을 보고 서 있다.
“마셔볼래.”
“마셔본다니, 술을요?”
“응.”
스으읍.
20대 극초반, 신입이라면 신입 새내기라면 새내기, 귀중한 회사 후배의 청정한 간에 알코올을 붓는 사람이 되어버려도 정말 괜찮은 걸까. 에어컨 냉방이 새지 않도록 문가의 율을 데리고 몇 발짝 들어오면서, 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의 업보로 사후에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면 어쩌지?
“편해진다고 했잖아요?”
그런 단에게, 율이 물었다.
단은 어느 날의 안개비를 떠올렸다,
비를 맞으며 이런 날엔 안개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던 율을.
그의 말을 어쩐지 이해하고 말았던 그 날의 단을.
단은 보이는 것이 적을 때가 좋았다, 들리는 것이 적은 편이. 그렇게 해서 알아서는 안 될 것은 영영 모른 채 있고 싶었다, 언제나. 그런 단에게 술은, 단이 언제나 그리워할 미지未知의 사각死角을 엿보여주었다.
단의 경우엔 그랬으니,
율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럼 같이 골라볼까요?”
게다가 후배의 부탁이니까.
맛없으면 저 주면 되니까. 생수를 한 병 집어든 단은 율을 데리고 주류 코너 앞에 섰다. 도수가 낮은 걸로 마셔보면 좋을 것 같은데. 탄산 괜찮아요? 응, 괜찮아. 입에 맞을 만한 게 있어요. 거의 음료수 같은 맛인데, 도수는 전부 3도고요. 도수가 낮은 게 약한 술인가? 맞아요. 알코올 함량. 여기부터 여기까지 중에서 맘에 드는 걸로 골라볼래요?
율은 단이 가리킨 파스텔 톤의 츄하이 캔들을 잠시 훑어보다가 하나를 쑥 골라낸다. 덜컹, 하고 빠져나간 캔 하나만큼의 공간을 그 뒤의 동료들이 차례로 밀려 내려오며 채워나갔다.
“음. 이거.”
“잘 고른 것 같아요.”
그는 복숭아 과즙이 들어간, 연한 핑크색 캔의 호로요이를 골랐다.
“선배도 마셔요.”
“그러려고요. 같이 도전하는 거니까.”
전 이거. 그건 하얀색이네. 네. 밀키스 같은 맛이에요. 율 씨가 고른 건 복숭아 맛. 응. 복숭아 그림 있어서 골랐는걸. 그렇죠, 복숭아 그림은 복숭아 맛이 난단 뜻이죠. 술이 단 맛이니까 과자는 감자칩으로 할까요? 좋아. 함께 계산대까지 걸어가는 동안 단은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말았다. 물론 단은 술을 좋아하지만, 단순히 술자리 한 번이 반가워서만은 아니었다. 지옥에 떨어질까 불안한 마음 때문도, 지금은 아니었다.
단은 최초의 음주를 아직 기억하고 있으므로. ■
18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