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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Extra Preview

그러지 말걸.

하지만 후회하기엔 늦은 지 오래다. 너무 많은 원인들이 단의 등을 밀고 있었고, 어차피 단은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곤경에 처한 사람에겐 일단 말을 걸고 마는 사람이었다. 마침 단이 도울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아마, 찾으려고 했던 건 이것 같지만…….)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불쾌한 습기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발바닥에, 발목에, 목덜미에 달라붙는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래서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어쩐지 이미 닳도록 본 것만 같은 B급 호러영화가 떠오른다. 정확히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비명횡사하는 단역이. 날카로운 단말마. 풀썩, 바닥에 쓰러지는 얼굴, 초점 없는 눈동자, 한 박자 늦게 흐르는 피…….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도 있건만, 위험할지도 모르는 것의 정체를 굳이 몸 던져 확인하려는 욕망은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단처럼 거절에 소질이 없었을 뿐일지도.

그러나 확인하지 않으면 영영 이곳에서 안전해질 수 없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고, 단은 생각했다.

 

…….”

(, 저거다.)

 

어째서인지, 단은 스크린도어 너머에서 이질적인 움직임을 감지하고 만다. 열차가 운행을 멈춘 야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지하철도 위에는 무언가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알고 있지만, 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초점을 산만하게 흐트러뜨린다. 보통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플랫폼 밑의 어둠 속에서, 단은 커다랗고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

정말로 그러지 말걸.

 

 

 

 

단은 월요일에 처음 그를 보았다. 아니, 그가 보였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각자의 일과에 지친 인간 무리들 사이에서, 각시탈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가면은 싫어도 눈에 띄었다. 구두까지 온통 새카만 옷차림을 하고도 깔끔하게 차려입은 탓에 상복처럼 보이지 않는다. 가면으로 얼굴을 대부분 가려 달리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가 산 자인 단이 식별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것만은 확실하였다.

그 존재, 저승사자.

염현의 꾸준한 입사 권유에 승낙한 지도 수개월이 지났지만하지만, 숙소와 식사가 제공된다고 했는걸, 단은 여전히 저승사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저 사람도 그 회사의 사람 중 하나일까. 단도 입사하게 되면 비슷한 일을 하는 걸까? 알겠다고 말해두었지만, 사실 단은 그 회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복무를 마치고 회사에 찾아가기만 하면 취직이 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도. 그러나 뭐, 저승사자가 이 역에 나타난 것이 처음도 아니었으므로, 단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사실 저승사자를 못 본 척 하는 것은 산 자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그 저승사자는 화요일에도 왔다. 한참을 단이 경비를 서고 있던 게이트 주변을 서성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단이 교통카드를 잃어버린 승객을 상대하는 사이 홀연히 사라졌다. 수요일에는 비번, 목요일에는 휴무였으므로 쉬었다. 그러나 금요일에도 그는 나타났다. 그렇다는 것은 일주일 내내 이 역사를 방문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단을 영 꺼림칙하게 하였다. 현이 단을 찾아와 입사를 권하던 시절에도 이 정도로 꾸준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역이란, 어찌 되었든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지나는 곳이지 목적지로 삼을 장소가 못 되었다그런 사람은 근무를 서러 오는 단 정도로 충분했다, 그리고, 이미 이 역사에서 세 구의 시체를 보았기 때문에.

둘은 지난 초겨울에 얼어 죽은 노숙자였고 하나는 비운의 사고로, 본래 무엇이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스크린도어를 비롯한 각종 안전시설이 완비되어 있음에도 어떻게든 죽을 것들은 죽어버린다. 보이고 들리며 알게 된 것이 있는 만큼 단은 그런 일이 퍽 두려웠다. 또 누군가가 이 역사에서 비참하게 죽게 된다면,

그 가능성을 단이 미리 알고도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다면.

 

단은 단의 처지에 감히 감상을 갖지 않았으나, 단이 알아선 안 될 것을 알게 될 때면 어딘가 영혼을 손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영혼이란 것이 얼마나 고유하고 견고한 것인지는 오래간 목도하였음에도……. 시야에 들어온 곤경을 인지한 순간, 단은 떨쳐내기 힘든 죄책감을 느끼고 만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뭐람.

단은 이미 충분히 지쳐있었으나, 감당할 수 없을 것을 덮어두느니 없는 용기를 그러모으는 쪽을 택했다. 좋게 생각하면, 한편으론 며칠째 곤란한 상황인 듯한 그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물론 아직 단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같은 회사에 다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고보니 조선시대 무관 같은 복식은 이제 입지 않는 걸까?)

현만 해도 강렬한 레더 재킷에 폴라티를 입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조금 별난 것인가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저승사자도 모두 현대의 복식을 입는 것일까. 어딘가에서 돈을 주고 셔츠나 구두를 구입하고들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가면을 파는 곳도 있을까.

,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생각이 아무렇게나 튀고 만다.

 

단은 무던한 표정을 지은 채 몇십 미터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무언가 찾고 있는지 주변을 계속 둘러보며 큰 보폭으로 지하 역사를 활보하고 있었다. 단은 타이밍을 재 그의 한 치 앞에 끼어들었다.

지니고 있던 무전기를 자연스럽게 입가로 가져간다.

PTT 스위치를 누르지 않은 채, 단은 무던히 음성을 출력하였다.

 

선생님, 요새 자주 오시던데…….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정말, 이 버릇을 고쳐야 하루라도 오래 살 텐데.

살다살다 저승사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날이 올 줄이야.

 

 

 

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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