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까진 맑더니 비가 오네! 플리마켓은 못 가겠어.”
그렇게 말하는 희주의 표정만은 맑다. 실망하지 않아 줘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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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 선배, 그러니까 같은 회사 사무 팀 진희주 씨와의 교제는 그 특유의 뛰어난 균형 감각과 철저한 공사 구분으로 하여금, 하나같이 걱정도 탈도 많다고들 하는 사내 커플이란 점을 빼지 않아도 꽤 순항 중이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선배가 참아주고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역시 많이 많이 참아주고 있을까?)
정정하겠습니다. 적어도 단은, 순항 중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문제인 것은 사내 커플인 것보다, 단이 이런 일에 너무 초심자라는 점이 아닐까. 단은 한동안 톡을 주고받거나, 사무 팀 심부름을 자처해 희주의 얼굴을―엇갈린 날에는 그가 사랑하는 탁상 달력이라도―보고 가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그것으로 충분히 좋았기에. 그런 단에게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희주였다. 회사 일과와 구분되는 사적 시간이란 것이 단에게도 존재했고, 그 시간을 희주와 일부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단은 그제야 실감하였다. 물론 그 외에도 멍청한 실수는 많았지만 대개 희주의 지혜로운 리드로 고쳐지곤 했다. 단은 잘 배워나갔다.
그래서, 오늘의 데이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목 민족들이 남기고 죽은 것들을 관람하며.
(선배는 이런 걸 좋아하는 걸까?)
물론 단에게 이런 양질의 취미는 없다.
(아니면 요새 많이들 추천하는 데이트 코스여서?)
그의 심중이야 알 수 없지만―단은 모르는 것을 단의 자의대로 넘겨짚지 않기로 했다―, 단에게 여자친구의 문화생활에 동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단이는 그런 거 싫어~ 하며 칭얼거릴 나이도 아니고, 사실 희주가 가고 싶다고 말한 곳이 정말로 따분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곁에서 눈을 빛내며 열중하거나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즐거웠으니까.
어쨌든.
“단 씨, 택시 잡혔어. 5분 뒤 도착.”
박물관의 문화상품점에서 커다란 장우산을 하나 샀다. 선물할 마음으로 희주에게 고르도록 했는데, 단이 계속 들고 다닐 예정이라 아직 선물이란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만약의 플랜 B가 필요할까 싶어 조사해두었던 이촌 인근의 케이크 카페 이야기를 꺼내보려다, 비 오는 주말 오후에 잘 알려진 카페에 자리가 남아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단에게는 만약의 만약인 플랜 C도 있었으므로, 둘은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슬슬 나가야겠네요. 갈까요?”
―팡,
(이런 날도 있지.)
아름다운 무늬의 우산을 펼치며 단은 생각하였다.
사실 이렇게 되어버린 날을 조금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비를 만나고, 그래서 본래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어도,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함께라면 무얼 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단 혼자만이 아니라서. ▶
180701
희주 선배와 커플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