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짙푸렀으므로 숨을 가로막는 인형 머리는 조금 갑갑하였다. 잠시 탈을 벗어 옆자리에 둘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호수는 그저 멀거니 앉아,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장미가 피어있지는 않은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분명 개발자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 때문이다.
'개발자'에 대해서라면 도는 이야기들이 조금 있다. 장미 꿈을 사재기하는 사람. 광장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흔치 않은 매입가에 꾸준히 꿈을 사들이는 점 때문에, 아무래도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꿈속에 장미가 피어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호수도 몇 번 꿈에서 장미를 발견해 판매한 적이 있는데, 그는 조금도 흥정하거나 매물의 가치를 깎아내리려 하지 않고 선뜻 10만 포인트를 보내주었다. (호수는 그것을 매번 술값으로 썼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애초에 꿈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광장'의 게시판에 이 이용자가 남기는 글들을 살피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호수가 생각하기에, 그는, 꼭 이 어플리케이션과 커뮤니티의 관리를 맡은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아, 닉네임이 개발자니까, 개발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백상아나 임그림일까. 아니면 또 다른 직원일까. 호수는 약간의 호기심 때문에 용산구에 있다는 단꿈마켓의 본사에 가볼만큼 추진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어플에 쓰여있는 사업자 정보를 곱씹어볼 수는 있었다. 단꿈마켓으로 쉬운 용돈벌이를 하고 있는 호수의 입장에서는 일거리를 주는 사람, 달리 말해 클라이언트에 가까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에게 왜 그렇게 많은 장미가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단골 관리를 위한 의뢰라고 생각하면, 장미 꿈에 비해 이 퀘스트는 동기를 이해하기 쉽다.
―이번 정류장은 ○○역 ○번 출구입니다. 정류소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무리하게 뛰어 탈 경우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다음 차량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장미를 발견했더라도 호수가 팔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말 별 내용 없는 꿈이군.)
호수는 시내버스 안에 있었다. 특유의 일정한 흔들림이나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에 어쩐지 조금 나른해져서, 그곳이 다른 사람의 꿈속이란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안내 방송을 듣고 상념에서 깨어난 호수의 시야에, 운전석 바로 뒤에 앉아있던 꿈의 주인이 팔을 뻗어 벨을 누르는 모습이 들어왔다. 뒷문 쪽에 앉아있던 승객도 허리를 바로 세우며 내릴 준비를 한다.
사실 이 승객은 호수가 버스에 올라타기 전부터 같은 좌석에서 꿈의 주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꿈의 주인은, 벨을 누르려고 몸을 돌리다가 방금 그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거북한 감정으로 구겨진 미간을, 호수는 무미한 표정의 인형탈 너머로 바라보았다.
호수의 눈에 이 불청객이 이 단조롭고 평범한 꿈을 악몽으로 만들 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단순히 대중교통에서 마주친 행인 이상으로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꿈의 주인이 계속 그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조우가, 원치 않는 시선을 받는 일이 매번 반복된다면 결코 꿈자리가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단골 유치를 위해서든 단꿈의 마케팅을 위해서든 단순한 선의이든, '사정이 딱한' 타인을 위해 누군가가 5만 원을 선뜻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호수가 오늘 밤 그의 퇴치를 맡았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
삐익…….
익숙한 소리와 함께 버스가 멈춰 선다.
껄끄러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던 꿈의 주인은 주춤거리다가 뒷문 대신 운전석 쪽의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태그했다. 호수의 타겟도 핸드폰 케이스에서 교통카드를 꺼내고 있다. 그가 꿈의 주인을 따라 내릴 생각인지, 본래의 목적지가 ○○역이었는지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호수는 사뿐히 좌석에서 일어섰다. 벽면에 매달려있던 비상용 망치를 천천히 뽑아들고, 카드를 태그하려는 '스토커'의 손을 가로막았다. 덜컹, 작은 소리와 함께 버스의 문이 접히며 열렸다. 잠깐 사이 모든 움직임이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등 뒤를 지나 차에서 내리는 이가 안도의 숨을 쉬고 있었다.
200621
스토커 퇴치 퀘스트 로그. ↓이런 퀘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