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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상냥한 사람들은 외로움과 그리움의 차이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는 이따금 어지러웠다

 

"호수 너는? 괜찮아?"

A가 물었다.

"괜찮아."

호수가 대답했다. 잠긴 목을 쥐어짜내 뱉은 말이었으나, 생각보다 매끄러운 울림이 흘러나왔다.

 

 

상냥한 사람들은 외로움과 그리움의 차이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는 이따금 어지러웠다

2

 

 

"전역하니까 어떠냐. 좋기만 하진 않지?"

 

B는 호수보다 2개월 먼저 제대한 대학 동기였다. 아직 모자를 쓰고 다니던 호수에 비하면 머리카락을 제법 많이 길렀다는 생각이 든다. 장난기를 섞어 말을 붙이는 그의 두상을 보며, "그러니까." 호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 복학한 그는 한참 시험기간인 모양이었는데, 연락을 받자마자 선뜻 술집으로 불러내는 것이 황송하기 그지없다. 가운데에 둔 해물파전에서는 식욕을 돋우는 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아, 이제 뭐 하지? 그 생각부터 들더라고."

"뭐 하긴, 복학해야지."

"복학 준비도 해야겠지……."

 

그 말은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학생으로서의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에 가볍게 한숨을 뱉자 B가 깔깔 웃었다.

 

"뭘 걱정해. 너 엄청 날렸잖아~ 경영대 과대분 여자친구 있나요? 같은 글 심심하면 올라오고."

 

ㅋㅋㅋ.

그것도 꽤 옛날 일이 되었지만, 호수는 선선히 놀림감이 되어 주었다.

 

경영대에는 성적이 되어서, 무난한 전공이라길래,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들어왔다. 경영자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에는 잘 적응했지 않나 생각한다. B의 말대로 과대였기도 하고. 그러나 이제 윤호수가 누군지 모르는 경영대 사람도 꽤 늘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모르는 얼굴들과 새로이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은 조금 피로할 것이지만, 다 고만고만한 관계일 것이라 생각하면 겉돌게 되진 않을까 걱정되진 않는다. 또 그만큼 많은 술자리가 있을 것이고, 그건 좋아하는 일이니까 더더욱 괜찮고.

 

"적응이야 뭐, 너도 있는데. 별로 걱정 안 해."

"어우."

 

말은 그렇게 했지만, B는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그래, 그래. 화석은 화석끼리 다녀야지. 그러려면 나 졸업하기 전에 빨리 복학해라? ...아직 화석까진 아니지 않아? 그런데 한 학기 더 쉴지도 모르겠어. 방학도 있는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해? 뭐 하느라. 아까는 뭐 하지, 싶었다더니. 말이 그렇지. 알바 구했어. 당분간은 학비 좀 벌어야지. 야, 너 장학금은……. 아, 휴학했어서 어쩔 수 없나.

 

"천천히 얘기할게. 일단 마시자."

"난 조금만 마신다? 시험기간이라서."

"그럼 뭐하러 술집으로 불렀어."

"그야, 네가 술 좋아하니까?"

 

술, 아주 좋아하지.

 

 

 

* * *

 

 

 

호수는 술을 첫사랑에게 배웠다. 다섯 살이 많은 과외 선생은 수능을 100일 앞둔 제자에게 응원의 말과 함께 캔 하나를 내밀었고, 호수는 그것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었다. 무더운 계절이었으므로 맥주캔에는 차가운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풀탭을 당기기 전 손가락에 달라붙은 물기를 문질러 닦았을 때의 감각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백일주. 낡은 수험생 문화라며 자조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호수는 동경하던 사람이 권한 작은 일탈이 좋았다. 복숭아향이 나는 츄하이의 은은한 탄산이 목에 차가운 따끔거림을 남겼다. 그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술을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

…….

그럴 리 없겠지. 누구한테 배웠어도 술은 좋아했을 것 같으니까.

 

 

 

* * *

 

 

 

아, 이건 꿈이다.

 

호수는 어깨가 무거울 때면 그것부터 생각하였다. 생시에서 몸에 흘려 넣었던 술의 여파로 정신은 혼미하였지만, 어차피 호수에게 꿈을 지각하는 것은 몸을 조금 뒤척이는 정도의 쉬운 일이었다. 학교 옥상이나 복도형 아파트 난간에서 밀려 떨어지는 사람, 냉동창고 트럭 속에서 얼어붙은 사람, 잠옷 차림으로 나무나 배관에 매달린 사람, 욕조에 잠겨 움직이지 않는 사람.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람, 아름다운 백합이 한가득 피어있는 방 안에서 눈을 감은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아는 사람일 때도, 전혀 모르는 사람일 때도, 호수 자신의 얼굴일 때도 있었다. 호수는 어쩐지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안다. 호수가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죽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호수의 꿈 속이니 호수가 생각하는 바가 아마 맞을 것이다.

 

어떤 시체는,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너 A랑 잘 만났었잖아. 나 A를 좋아했거든.

이라든가,

 

요새 이거 유행이거든, 용돈벌이로 괜찮다고들 하더라고. 너도 할래?

같은 말을 했던 B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 * *

 

 

 

[마감맨] 연못님, 혹시 시체 꿈 꾸셨나 해서 연락드려요. 가끔 파시던 것 같아서...

[연못] 아. 마감맨님. 예술하시는 분들 좋아하시는 꿈이죠. 얼마 생각하세요?

 

 

 

 

200603

호수 신미. 사실 이 친구에 대해 조금 더 면밀한 고찰을 하고 싶었지만....

원대한 계획에 비해 마감에 급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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