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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매너 오브 더 데이

 

 

 

매너 오브 더 데이

Manner of the Day

P. Cup

 

 

 

 

 

체온보다 조금 높은 온도의 미온수로 몸을 씻은 뒤 부드러운 잠옷으로 감싸고 여민다. 에어 체어의 구동을 멈춘 뒤의 노아는 안락한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마시다 남은 음료를 흘려보내듯 하루를 소진하곤 했다. 파견 생활은 상대적으로 한가했으므로 새로운 취미를 익힐 짬도 있었지만, 일과를 마친 뒤의 여가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일-생활간 균형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직장에서 커리어의 전부를 쌓은 덕분이었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공간에서 기사를 읽거나 짧은 비디오 클립을 보는 것으로 노아는 충분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른함과 피로에 반쯤 잠긴 채로 누워 있던 노아는 통화 수신을 알리는 전자음을 듣고 사이버 윌을 조작한다.

 

"노아 한입니다."

전화를 받을 때면 하게 되는 통상적인 소개를 하였지만, 굳이 알림 창에 띄워진 이름을 읽지 않아도 발신인이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다.

 

ㅡ지금 통화 괜찮아?

프레야는 언제나 같은 것부터 물어왔다.

 

"응, 괜찮아. 프레야."

노아는 언제나처럼 대답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프레야가 전화를 걸어온다. 그의 침실이나 거실일 때도, 헥사곤 타워의 개인실일 때도 있으므로 시간대는 불규칙하다. 마찬가지로 노아도 자신의 침실이거나 차 안이거나, 헥사곤 타워의 개인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도 많다. 의무가 아니고 각자의 사정이 있는 만큼 통화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러나 프레야는 늘 노아를 방해하지 않는지부터 묻고, 노아는 늘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 뒤의 통화는 보통의 안부 전화가 그러하듯 용건 없이 흘러간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여러 관습 중 가장 역사가 짧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하지만 프레야는 서서히, 그리고 분명히 회복되었다. 그 사실은 노아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프레야 홀멘과 재회한 것은 어쩌다 보니 발렌타인 데이였다. 기념일 문화에 무던했던 두 사람은 만석이거나 예약석밖에 남지 않은 식당들을 몇 군데나 돌아 나오며 2월 14일이 연인들에게 어떠한 명절인지 피부로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 괜찮아요?" 다음 약속을 잡기 위해 프레야가 손가락으로 짚은 그 주의 토요일을 노아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2월 19일이네요." 말하고 나서야, 숫자 읽는 법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다른 약속이 있나요?" 프레야가 물었다. "아뇨, 그럼 토요일로 할까요?" 노아는 사실만을 말했다. "좋아요. 5시 어때요?" "캘린더에 저장해둘게요." 사실, 토요일은 노아의 생일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꽃을 선물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일이나, 분명 그 관습이 시작된 것은 그 토요일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노아 한은 그와 만든 관습들을 사랑하였다.

둘 사이의 작은 문화를 소중히 하는 행동들로 하여금, 노아는 어떠한 안도를 느끼곤 했다. 역사가 짧은 노아의 생에 흔한 감각은 아니었다.

 

어느 날처럼 거리를 헤매지 않아도 되도록, 약속 날짜와 장소는 미리 정한다. 마침 올해는 프레야의 생일 당일에 만나기로 했다. 노아와 프레야 모두 헥사곤 타워로 출근하는 날이었으므로 주요 일정은 저녁 식사가 되었다. 오늘 먹은 것의 카테고리, 99.9% 정확한 내일의 기상 예보, 최근 먹고 싶다고 생각했던 음식, 서로에게 소개하거나 함께 발견한 노스-이스트 스텔라의 괜찮은 음식점 중 방문한 지 비교적 오래된 곳의 상호들을 차례로 가늠하며 평화로운 토론을 벌인다. 같은 동네에서 5년쯤 같이 어울리다 보면 온 거리에 추억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어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좋은 가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새로 개장하는 곳이 아니면 모험을 하기도 영 어렵다.

 

"음, 그 식당은 얼마 전에 갔었잖아. 괜찮아?"

 

프레야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문했던 식당을 언급했으므로 노아는 그 점을 가볍게 짚었다.

그러나 둘 다 그 식당을 좋아하니 그곳으로 정해질지도 모르겠다. 

 

ㅡ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거든. 그렇지만 우리 둘 다 그 식당은 좋아하잖아.

 

머릿속을 넘겨다 보고 읽는 듯한 목소리에 노아는 낮은 웃음을 뱉었다. 너도 그 생각을 했구나, 그의 말을 따라 읽듯 생각하며. 그에게 비밀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어차피 숨기려 해도 프레야 홀멘이 노아 한에 대해 모르는 것은 별로 없다.

 

"그렇지. 또 가도 나는 상관없어. 거기로 할까?"

ㅡ그럼 또 가자.

"내가 내일 예약할게. 8시로 할까?" 

ㅡ좋아. 식당에서 바로 봐?

"음, 내 차로 움직여도 될 것 같아. 데리러 갈게."

ㅡ그게 좋겠다. 언제 올래?

"20분 전에 데리러 갈게."

 

같은 직장으로 통근하지만, 두 사람은 편의를 위해 각자 퇴근한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 여기에는 편의라는 이름 아래에 묶이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그 중 가장 마지막은, 프레야 홀멘이 이것까지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물론 노아에게 꽃다발을 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아는 늘 꽃다발의 메인 플라워를 장미로 골랐다. 미리 약속을 잡아둔 플로리스트가 오르비스의 정제된 온실에서 생산한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생화들을 추천해줄 것이다. 꽃은 꽃집에 유통된 이래 서서히 죽어가므로, 노아는 그 중 눈에 드는 것을 고를 즐거움은 당일의 것으로 남겨두었다.

 

"프레야."

 

노아는 통화가 길어진 사이 날짜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이름을 불러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앞으로 하려는 말을 들으면 웃음을 터뜨릴 프레야를 떠올리며, 아주 전통적인 인사를 건넨다.

 

"생일 축하해. 이따 봐."

 

프레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200105

프레야 홀멘 경위 생축로그

둘의 역사와 관습을 나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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