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bank - seeing your name makes me happy
드링크 잇 슬로어
Drink it slower
P. Cup
얼음을 가득 채운 믹싱 글라스에 진 2온스, 라임 과즙 1온스를 계량하여 따르고 설탕을 한 스푼 더한다. 글라스에 믹싱 틴을 물린 뒤 양손으로 감싸고 설탕이 충분히 녹을 만큼 강하게 셰이크하다, 손바닥을 써서 툭 분리했다. 거름망에 걸러 미리 식혀둔 잔에 따라내자, 일단 눈으로 보기에는 꽤 그럴듯한 김렛처럼 보인다. "와." 프레야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가벼운 탄성을 흘렸다.
"어때, 내 수련의 결과가."
노아는 이것이 지금까지 노아가 익힌 기술 중에 가장 아날로그한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놀랍게도 이곳은 <클라우즈Clouds>나 다른 칵테일 바가 아니라, 노아의 집이다. 노아는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린 채, 드물게도 부엌에 있다. 검은 석재로 마감한 아일랜드 테이블을 홈 바로 삼은 참이었다.
"단골 삼아야겠는데."
한 모금 맛을 본 프레야가 농담처럼 말하며 씩 웃었다.
아마추어의 실력을 두 사람이 자주 가는 단골 바의 바텐더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이런 건 또 언제 배웠어?"
"틈틈이? 누구한테 주는 건 처음이지만."
노아가 처음으로 대접할 잔을 김렛으로 정한 이유는, 김렛을 잘 하는 칵테일 바는 다른 칵테일도 잘 한다는 오래된 구전 때문이었다. 들은 말이었을 뿐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는데, 직접 시도해보니 그건 정말로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 달리 말해 재료의 맛으로 부족한 실력을 숨길 수 없는 칵테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프레야의 앞에 김렛을 내놓기까지는 나름의 연구와 수련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나도 신기해. 내가 김렛을 주문하는 대신 손수 만들어 대접하다니."
노아도 노아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에 취미를 붙일 줄은 몰랐다.
"네가 만들었는데 신기해?"
"그럼? 5년 전의 노아 한이 들으면 깜짝 놀랄걸."
하지만, 그때의 노아는 슈퍼마켓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리란 것도 몰랐겠지.
노아가 칵테일 조주를 시작한 계기는 분명 노아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게. 칵테일은 별로 취향 아니지 않았어?"
"음."
노아는 긍정이나 부정을 말하는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프레야 홀멘은 노아 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에 하나였으므로, 그의 감상이 잘못되었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노아 역시 노아가 술을 무언가에 희석하여 마시는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노아가 리큐어 샵에서 처음으로 토닉 워터를 사들였던 것은 분명,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몇 잔 만에 멍한 얼굴이 되고 마는 프레야를 위해서였다. (어설픈 홈 칵테일은 어설픈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흥미롭게도 진이나 보드카와 섞어 마시자 생각보다 깨끗하고 상쾌한 맛이 났다.)
"그렇긴 한데, 하다 보니까 또 재미가 있더라고."
아닐까, 역시 노아를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프레야가 조금 더 천천히 취했으면 하는 노아 자신을 위해.
그렇게 보면 잠시나마 프레야를 위해서일까 생각한 자신의 가벼움이 조금 겸연쩍어진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또한 결국 이기利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있잖아, 팀장님이 김렛을 좋아한다던데. 알고 있어?"
"그래?"
프레야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화제의 방향을 살짝 돌려본다. 신경 쓰이는 정보를 들은 듯한 그의 표정이 너무나 예상대로였으므로, 노아는 조용히 웃었다.
"오늘은 적당히 취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다음 잔은 맡겨도 될까요?"
테이블에 양팔을 괸 채, 짐짓 바텐더에게 주문하듯 말하는 프레야에 노아도 "적당히 취하고 싶으시군요, 손님?" 하고 장단을 맞춘다. 빈 잔을 거두며, 노아는 집에 갖춰 둔 음료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칵테일 레시피를 빠르게 헤아려 본다. 지난 달에 샀던 위스키는 다 마셨으니까 베이스로 쓸만한 술은 방금 쓴 비피터 진과 냉동실에 넣어둔 벨루가 정도다. 코스모폴리탄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다른 음료를 권한다.
"시 브리즈sea breeze는 어떠세요? 벨루가를 쓸게요."
"흠, 그거 좋을 것 같네요."
프레야는 반갑다는 듯 웃어주었다.
노아는 그가 벨루가가 아니라 시 브리즈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음을 안다.
그러니까, 여러분.
프레야 홀멘과 처음 만났던 21세의 겨울에 대해, 노아 한 역시 노아 나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음을 밝혀두고 싶다. 진 토닉-김렛-마가리타-시 브리즈, 지금은 단골이 된 바 클라우즈에서 노아가 처음으로 김렛을, 프레야가 진 토닉을 주문했던 날을 추억하는 프레야의 방식으로부터. 칵테일의 주문 순서를 지키며 즐거워하는 그의 곁에서, 노아 또한 그 날의 해프닝을 그 날 당시보다 조금 더 소중하고 특별한 것으로 재구성해왔다.
(눈이 내렸지, 아마.)
"벨루가는 보드카였나?" 프레야가 한 손을 입가에 세우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던지고 받는 놀이처럼 하고 있던 바텐더-손님 상황극과는 번외의 질문인 듯하다. "보드카. 철갑상어 그려진 거." "좋아." "이건 젓기만 하면 되니까 금방 나갈 거야." "아, 정말?" "왜?" "또 그거 보여줘. 흔드는 거."
191208
프레야 홀멘 경위에게 김렛을 선물하는 로그
선물하고 싶어한지 두달만에 로그를 썼다(...) 내가 칵알못이고 노아가 효율적인 애라 홈 칵테일의
레시피와 제조 방식에는 이런저런 공부와 고민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 자체는 꽤 재미있는 작업이었음
셀렉한 음악이 마음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