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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오리지널 소스

 

 

 

오리지널 소스

Original Source

P. Cup

 

 

 

1.

 

14세의 노아 한은 프로페서 그레이엄 연구실의 최연소 제자였다. 그는 인간의 지혜에 대한 통찰을 담은 저서 『지혜』로 하여금 명성과 돈을 갈퀴로 긁어들인 작가였는데, 노아는 너무 일찍 졸업 사정을 마쳤으므로 지도 교수를 고를 때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미처 받기 전이었다. 물론 그는 대중을 매료하는 책을 썼고, 노아의 모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인 것도 사실이었으나, 유명세만큼 대외 활동도 많아 1주일에 10분도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뭐, 신중해야 했던 선택인 만큼 돌이킬 수는 없다. 노아는 그와의 면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포도당 주사를 맞으며 이번 연구 계획서를 준비했다.

모든 청각을 그에게 집중한 채, 노아는 점심 메뉴를 궁리하고 있었다. 지도 교수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살피며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 그 편이 낫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쇠고기 패티의 열기에 녹은 치즈와 머스타드 소스가 함께 뒤섞여 뚝뚝 떨어지는 버거, 방금 뿌린 소금이 씹힐 만큼 갓 튀긴 감자튀김, 목 안을 따끔하게 쏘는 탄산의 소프트 드링크……. 그러고보면 인간이 통상 먹고 즐기기 위한 음식을 입에 넣은 지가 까마득했다. 역시 교내 패스트푸드점에 가야겠다, 어차피 그 곳이 제일 가까운 식당이기도 하고…….

"흠."

노아는 냉큼 상념을 정리한다. 느슨해진 목소리나 시야에 들어오는 표정만으로 보기엔 그렇게 기분이 나쁘거나 노아를 한심하게 여기는 것 같진 않았으므로, 내심 안심하였다. 

"노아, 나는 네가 영리해서 좋단다."

"우리 학교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어요, 교수님."

"내 앞에서 그러지 않기로 했지 않니? 이게 아니라, 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프로페서 그레이엄은 잠시 고심하며 입 안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를 골랐다. 출간 이후 생긴 버릇이라고 전해듣긴 했지만, 과연, 그럴 때의 그는 확실히 '작가'처럼 보이는 것도 같다. 노아 너는,

"너는 허영이 없잖니."

그런가요, 교수님.

아직은 쩔쩔 매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여도 우스꽝스럽지 않을 나이였으나, 노아는 작게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연구 범위를 넓히는 게 좋을까요?"

"아니. 아니. 좋다는 뜻이란다. 아주 효율적이야. 소위 자기가 천재라고 믿는 친구들은 자기가 좀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런가요, 교수님."

겸양하지 않기. 문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와 약속했던 단 한 가지를 무사히 해내며 노아는, 이번에는 소리 내어 되물었다.

"그렇고 말고. 자신의 지성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으리라 믿고들 있겠지."

"……."

"어렸을 때엔 나도 그랬거든."

"아, 아하하……."

농담인지 진담인지 이해하지 못한 노아가 이번에야말로 할 말을 잃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이, 프로페서 그레이엄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제대로 된 코멘터리를 듣기 전이었지만, 약속했던 면담 시간이 수 분 흘러있었다.

"점심 아직이지? 나랑 할까?"

"저야 좋지만," 어린 노아는 배를 눌린 인형처럼 즉답하고는, 뒤늦게 말을 붙였다. "다음 일정이 있지 않으세요?"

"그래. 그러니까 같이 이동했으면 해."

그의 눈길이 잠시 노아의 이동보조기계에 향했다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듯 물었다. "괜찮겠지?"

"네! 물론이죠."

"먹고 싶은 게 있니? 네 또래 애들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구나."

"전 아무거나 좋아요." 노아는 치즈 버거를 빠르게 체념하였다.

 

 

 

2.

 

"닥터 노아 한, 내 라이프 세이버."

노아의 이름을 탄식처럼 외치며, 닥터 구드가 연구실 안으로 부드럽게 슬라이딩해 들어왔다.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덕분에 한시름 놨어. 이 천재를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기는, 뭔가 먹여서 집에 보내버려야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응? 오늘 저녁은 내가 살테니까요."

22세의 노아 한은 센트럴 특수공학연구소의 선임급 연구원이었다. 호들갑스러운 넉살에 "선배도 참,"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 회사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어요."

아직은 치켜세우는 말에 우쭐한 표정을 지어도 거만해보이지 않을 나이였으나, 노아는 잔잔히 웃어넘긴다. 노아가 그에게 정말로 소생 마법을 시전했으면 모를까, 그가 부탁한 코드는 요구 조건이 조금 많았던 것을 빼면 별 일도 아니었다. 로우 데이터 없이 계속 가설적 상황에 대한 설명만 들으며 작업했기에 실제로 잘 작동할진 모른다고 말해두었지만, 일단 당장의 닥터 구드는 만족시킨 것 같다.

"하지만, 공짜 저녁은 거절할 수 없겠네요. 추천하시는 식당이라도?"

"글쎄. 이 앞에서 중화요리 어때요? 거기 비프 토마토 누들이 괜찮아요. 물론~ 고량주도 같이 살게요."

소고기, 토마토, 면이라면…… 

"이름에 들어간 재료만으로는 스파게티가 먼저 생각나는데요. 중화요리라니 궁금하네요."

"미트 파스타 소스랑은 또 다른 맛이 있죠. 향신채랑 같이 오래 끓여서 스프를 만들거든요, 라멘이랑 더 비슷한 느낌이에요."

"맛있을 것 같은데요? 완전 좋아요."

"그렇다니까요. 어때요?"

그 중화식당에서는 사실 칠리 소스를 뿌린 튀긴 새우라든지, 바삭하게 튀긴 고기라든지, 걸쭉한 우스터 소스에 볶은 해산물 같은 술안주밖에 먹어보지 못했다. 배향이 나는 고량주를 마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노아는 양 손을 들어 예스 사인을 보냈다. 딱, 하고 닥터 구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결정했네요. 지금 당장 예약을……."

식당 번호를 찾아 주머니에서 유테크를 꺼내던 닥터 구드의 표정에 희미하게 긴장이 서렸다. "아, 이것 참. 잠시만요." 업무 전화가 온 것일까, 그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것을 얼굴에 바짝 가져갔다. 그의 얼굴에 거짓말처럼 밝고 사교적인 표정이 펼쳐졌다.

"아, 아벨 소령님~ 당신의 충직한 종이 전화 받았습니다."

저 프레이즈는 분명히 농담이겠지.

 

 

 

3.

 

―지금 바빠?

아니, 잠깐 통화 괜찮은가 해서. 친근한 사이인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새어 나왔다.

"얼마든지요. 네. 잘 지내죠. 애들은 왜 이렇게 빨리 크는지. 네. 네."

입술 위에 검지손가락을 들어 보인 것을 끝으로 닥터 구드는 가볍게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얼핏 듣기엔 업무 전화인지 오랜 친구로부터의 전화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그는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일각에는 그가 클라이언트에게 너무 비굴하게 굴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센트럴에서 스스로 세일즈를 할 수 있는 인재는 그곳에 차고 넘치는 천재의 수보다 현저히 적을 것이다. 한편,

(아벨.)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라스트 네임이었으므로 노아는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인명을 더듬어보았다.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한 사람, 닥터 아그리파 아벨이 떠올랐다. 물론 그의 제안이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난 지 오래긴 하지만―안드로이드 프렌들리한 분이지. 강화 인간에 대한 강연도 유명했는데 알려나. 한 번 찾아보렴. 너도 조금은 강화된 인간이잖니. 프로페서 그레이엄은 말했었다. 농담이었을까?―, 학자의 명성이란 본래 한 번 권위를 가지면 판단되는 대신 고전이 되어 다음 세대로 내리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에게는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이 있었다. 어린 노아가 지도 교수의 팬시한 열쇠고리를 겸하여 학회에 따라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팬이 있다. 

노아는 문득 닥터 아벨이 노아를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유명 인사와 일반인의 만남이 그러하듯 노아 혼자만의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메일 한 통 넣어드렸는데. 아, 보셨구나."

실은 제가 지금 외부에 있어서~ 기억에 의존해서 말씀드리고 있긴 한데요. 네네. 궁금하신 점 있으세요? 음, 그건 말씀하신대로 이해하셔도 무방할 것 같거든요. 하하! 그럼요. 네네. 네. 네. 네……. 닥터 구드는 마치 아니오란 말은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부탁했던……. A/S……. 버전 호환……. 같은 말들이 드문드문 들려온다.

"당연히 해드려야죠. 네."

닥터 구드의 시선이 넌지시 노아를 향해 있다. 예의상 통화 내용은 흘려들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방 안의 소리라곤 그가 내는 것 뿐이었고 두 사람의 대화도 은근하게 본론을 향해 흘러간다. 노아는 곧 그간 그에게 여러 차례 질문받다 못해 '임의의' '가설적' 환경을 바탕으로 짜주었던 코드에 실재하는 클라이언트가 있음을 눈치채고 말았다. 이참에 그가 답변하기 쉽게 코드를 화면에 띄워줘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분명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아가 알아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겠지.

"음, 그 변수는 그대로 두시면 되는데요. 아, 그렇게요."

"가시성, 중요하죠. 더 한 눈에 볼 수 있게 말이죠. 네."

"그게 조금……. 인코딩의 문제인진 확인해봐야할 것 같고요."

"유의미한 값이라 반영을 안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거슬리시면 추가로……."

"원하시는 숫자가 있으신 거면 따로 말씀을 해주셔도 되죠. 네."

질문들에 노련하게 응변하던 닥터 구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노아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음, 소령님. 이러는 게 어떨까요?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을 바꿔드릴게요."

미지근하게 달궈진 유테크가 대뜸 노아의 손에 들려졌다. "당신이 받아 봐." 노아가 차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난처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그가 이미 늦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닥터 한이 원전이잖아?"

그는 노아가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것도, 노아가 알아차린 것을 모른 척 하기로 한 것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코드라면,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른 채 쓴 대로이다. 어차피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 같은데.)

노아가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 어느 것도 결정하지 못한 사이, 

―여보세요.

건너 들었던 것보다 훨씬 정중한 저음이 귓속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낮게 잠긴 목소리가 주는 기묘한 긴장감에, 이마에 한껏 들어갔던 힘이 제풀에 풀리고 만다. 그 때에, 노아는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닥터 구드를 바라보자니, 그는 어느새 딴청을 피우고 있다.

꼭, 반드시, 꿔바로우도 같이 사달라고 해야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노아는 결심한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닥터 구드와 일하고 있는 노아 한이라고 합니다."

노아는 어릴 적부터, 노아의 운명에 빠르게 순응하는 편이었다.

 

 

 

 

 

191013

아티커스 아벨 중령과의 관계로그 비스무리한 것

어린 시절에 대해 적을 수 있어 즐거웠다. 치즈버거는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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