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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T-Spoon in Lab

 

 

 


 1.

 필요한 모든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주겠다, 는 말을 들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은 5년 전, 퍼플 포레스트 시티에서 일어났던 유사이변 때였다. 특수능력 보유자 하나가 폭주하면서 한 도시가 초토화되었다. 심각한 수준의 패싸움이 있었고, 살인과 상해, 강간과 절도, 납치와 간통, 그것보다 더 끔찍하거나 하찮은 우발성 범죄와 로맨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많은 시민들이 그 혼란에 휩쓸려 다치거나 상처입었다. 물론 죽은 사람도 많다. 이변은 아니었지만 아주 지독한 재난이었다. 한 도시에 설치된 모든 CCTV 신호가 랩으로 전송됐으며, 랩은 얼굴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이름과 주소, 신용 정보, 전산이 마비되기 직전까지 있었던 카드 결제 승인 내역까지 남김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랩에 그런 파격적인 권한을 줬던 사람은 CBI의 부국장을 겸하고 있었다.
 전임자에 비하자면 치프 로테스트는 일개 변두리 부서의 젊은 과장에 불과했으므로, 선하는 그녀가 문서화해 가져온 권한들이 그 때에 비해 모자랄 것 없는 것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녀가 그렇게 하려면 부국장의 지엄한 말 한 마디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직접 해야 했을 것이다(아마 아드리안도 거들었을 테지만). 선하는 서류철의 맨 위에 붙어있던 포스트잍을 떼어내 모니터 옆에 붙였다.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 숨어있는 장소를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

 "우리 랩은 정말 대단한 것 같지 말입니다."
 민규가 감자튀김을 우물거리다가 불쑥 말했다.

 야근 중에는 절대 굶기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공언했던 대로, 오늘의 실험 테이블 겸 식탁에는 어린이용 해피○ 세트가 장난감의 종류 수대로 펼쳐져 있었다. 그녀에게 먹고 싶은 걸 사오라고 카드를 쥐여 밖으로 보냈더니 사 들고 온 것이 그랬다(그녀는 새 장난감이 풀리는 날이라 ○도날드에 줄을 서가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그녀도 대세에 휘말려버렸다고 고백했다). 띠링, 띠링, 소리 나는 장난감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던 애셀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사실 CBI에서 오신 분이 하는 강의가 있다고 들었을 때부터 굉장히 신기해서 듣고 싶었지 말입니다. 뭔가, 그것도 이변관리 부서의 랩이라니 정부의 비밀연구실 같은 느낌이지 않습니까? 그런 대단한 데엔 어떤 사람이 일하나 궁금해서 수강 신청한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겁니다."
 "어떤 사람……그냥 이런 사람이지만요. 그래서 여기 지원한 거였어요? 비밀연구실 같아서?"
 "앗, 그건……."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하고 민규는 화들짝 놀라 어물거렸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선하의 강의가 그녀에게 뭔가의 영감을 줬으리라 생각만 할 뿐이다. (선하의 영향으로 진로를 선택한 게 분명한 사람에게 입사 동기를 다시 물어서야, 집요하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잖아. 그럴 바엔 말을 아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뭐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비밀로 해두는 게 좋겠죠."

 선하는 치즈버거를 한 입 문 채 다시 랩의 대형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크린에는 주요 도시들의 지도가 조각조각 펼쳐져 있다. 붉은 점 여러 개가 뭉쳐진 채로, 미리 그려놓은 푸른 점선을 따라 깜빡깜빡 이동하고 있었다. 미지의 존재였던 91번 버스지만, 지금은 실시간 지하철 노선도 어플리케이션마냥 훤히 감시되고 있는 셈이다. 과격한 트윗을 자주 해준 몇몇 단말기의 위치 정보 역시 덤이다.
 아마 민규가 대단하다고 단어를 고른 건 지금 저 광경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슬슬 레드 페퍼 시티로 넘어가고 있네요."
 "앗, 방금 한 명이 내렸습니다. 정차 위치는……."
 "아무나 지도에 입력 좀 부탁할게요. 손에 지금 기름이 묻어서……."



 2.

 호텔은 기괴하기 그지 없었다.
 무너지다 만 외벽, 잡초가 무성한 뜰, 으스스한 분위기의 폐쇄병동이나 퇴비 냄새가 고약했던 농장의 지하기지보다는 나았지만, 쓸모를 잃고 방치된 모양새는 작은 폐허를 연상시켰다. 

 “몰라 그런 거. 있든 말든 알게 뭐야?"

 뭐, 덕분에 한 수익 잘 챙기고 재미도 봤으니 내 입장에선 있어주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나중에는 깔깔거리며 폭소하기 시작했다. 실내 수영장의 막힌 벽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부딪혀, 웃음소리가 윙윙 메아리쳐 울렸다. 섬뜩했다. 토리 헤더웨이는 그 웃음소리를 분명 들어본 일이 있었다. 터진 쓰레기봉투에서 났던 악취와 볼썽사납게 울먹였던 신자의 흐느낌과, 매사를 아주 하찮게 여기는 듯한 그의 음색이 뒤섞여 귀를 씻고 싶었던 것을 기억한다. 윙윙. 눈썹 사이로 경악과 난색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스테이지 B의 존재를, 모른다고.”
 어금니를 악문 채 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건 또 뭔데? 암호 같은 거야?”

 헤더웨이는 황급히 등 뒤를 돌아봤다. 치프 로테스트는 그 자리에서 굳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곳의 누구라도 그녀가 폭발하기 직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주를 죽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교주는 진작부터 무장해제 상태였다. 사실 교주 본인은 무기를 든 적도 없었다. 게다가 많은 조작이변 범죄의 유력한 주모자를 바로 사살해서도 곤란할 것이다. 그녀는 무어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헤더웨이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헤더웨이가 모르는 단어가 섞인 문장이었다.
 다행히 이스트클리프가 먼저 움직였다. ……. 저 배리어 안에서라면 저 교주는 안전할 것이다, 몇 번 정도는. 옆에서 아이클러가 설득을 거들고 있었다. 무지에 얼떨한 와중이었지만 그가 눈짓을 보내와서, 헤더웨이도 일단 그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로테스트가 결국 총구를 내렸다.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갑자기, 지금까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던 작전이 낯설고 서툴게 느껴졌다.

 스테이지? 비? B의 비?
 그게 뭐지?

 그게 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3.

 스테이지 B.
 누구의 작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이 세계―스테이지 A의 뒷면이란 의미였던 것 같다.

 몰라.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명칭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행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데 있다. 특수능력이 없는 사람들, 페널티가 없는 사람들, 이변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 곳에서 평온히 살고 있다. 당시 루스가 얼마나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지도 얼핏 들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스테이지 B에만 살아있다. 정확히는 스테이지 B에서만 그녀의 약혼자이다. 스테이지 A 쪽의 그 남자는 앞서 말한 PFC의 유사이변에 휘말렸다.

 "우리가 홀을 닫기로 한 날 기억나요?"

 그녀가 티셔츠 쪼가리들을 들고 랩에 찾아왔을 때,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에요. 라고 선하는 조금 더 잘라 말할 수도 있었다.

 "그 날……. 당신이 아주 많이 화를 냈었죠. 지금도 아주 많이 화나 있고요."
 "……."
 "전 그 결정에 동의했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도망치는 대신 랩에 남아있는 거예요."
 "죄책감을 느낀단 말로 들리는데?"

 루스는 실험대 위에 걸터앉아 선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하는 가급적이면 그녀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선하도 루스의 시선을 무서워했다. 선하의 이마를 과녁보듯 가만히 주시하고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래서, 아래에 이어지는 대화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죄책감은 아니에요. 그 홀은 닫아야했어요."
 "그럼 그 얘길 왜 하는 건데?"

 늘 화나 있고, 늘 평행 세계를 미워하는, 빨간 머리의 치프.
 그녀의 가슴아프고 짜증스러운 사연에 대해 선하는 거의 모른다. 하지만 스테이지 B의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 세계의 존재 자체에 상처받은 사람은 그녀 하나만이 아니었다.

 "루스가 원하는 수사는 별로 이변과는 관련이 없죠. 랩이 우선할 일은 훨씬 많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하고 있잖아."

 "도울게요. 제가 언제 루스에 반대한 적이 있어요?"
 "그럼……."
 "……대신에, 저도 부탁할 게 있어요."
 "말해봐."

 약간의, 아니 조금 많은 용기가.

 "이 사람들이 말하는 스테이지가 정말 존재한다면……그 홀을 닫아줄 수 있어요? 아무도 넘어갈 수 없도록?"
 "……."

 하지만 그 대화는 정말로 부질없는 것이었구나, 하고 선하는 생각하고 있었다.



 4.

 도미닉 씨. 스테이지 B가 뭔지 알고 있었어요?
 응? 아뇨. 그냥 [이변없는 세계]를 두고 쓰는 올드비들 용어인가 생각했는데요, 정황상. 아니려나?
 아…….
 상황이 급했잖아요. 그럴 땐 적당히 때려맞추는 거죠. 토리 씨.
 아하. 맞아요. 그 얘기겠죠.



 5.

 "……님, 박사님?"
 "박사님, 박사님?"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두 겹으로 들렸다. 

 "미안해요. 무슨 일이죠?"
 "루스 씨가 무전기를 제게 주고 가셨어요."

 늘 이런 식이었지만, 정말로 뒷정리는 다른 사람의 몫인 모양이었다. 선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무전기를 던지듯 내팽개치고 현장을 떠났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는 건, 어디까지나 선하의 상상 속에서만 익숙한 장면이었다. 사실 한 번도 그녀와 현장에 나간 일이 없어, 그녀가 어떻게 그 곳을 떠났는지는 모른다. 그저 웃을 기분은 아니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마무리는 우리가 하게 되겠네요."

 어쨌든 교주를 손에 넣었다고 해서 할 일이 전부 끝난 것은 아니다. 선하는 남은 일이 무엇인지 머릿 속으로 정리한 뒤 입 안의 종잇조각을 쓰레기통에 뱉었다. 아드리안이 무전기 하나의 전원을 끄고, 호텔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보고했다. 투자자들이 모여있던 홀과 몇몇 객실의 스케치가 스크린에 활성화되었다. 그 중에는 간부들이 묵으며 [작업]을 수행한 흔적이 남아있는 방도 있었다.

 "호텔을 전부 수색하는 게 좋겠어요. 있는 자료란 자료는 전부 수거해 가져와주세요. 조작이변으로 분류할 기존 사례가 더 있는지 검토해야 하니까요. 껌 종이 하나도 흘리지 말아주세요."
 "하아……."
 "재판에 필요한 증거는 랩에서 분류해서 다시 넘기도록 할게요. 랩은 사본으로 충분하니까……."

 어쩌고 저쩌고, 선하는 조금 더 임의의 지침들에 대해 기계적으로 안내했다. 무너진 그레이프 브릿지 쪽에 쏠려있던 신경―이 쪽은, 다치거나 추락한 요원이 없다는 것이 기적일 따름이었다―을 갑자기 레드 페퍼 시티로 돌리는 바람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긴장이 풀리자 며칠째 철야 중이었단 사실도 뒤늦게 신경 쓰였다. 이후 출근할 노아와 니나, 세스에게 부탁할 일에 대해 메시지를 보내고 키보드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쉬어야겠단 마음이 밀려들었다. 일어났다.

 "그럼 저는 조금 쉬고 올게요. 다 끝나면 깨워줘요."
 기지개를 펴자 등에서 끔찍한 소리가 났다. 선하는 슬리퍼를 직직 끌며 간이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아 저, 기요."
 등 너머에서, 애셀이 슬쩍 마이크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그 교주 새×, 뒤통수 한 대만 세게 후려갈겨 주시면 안 될까요?"

 

 

 

 

 

 

In Community SPEDIS : Case 3

마지막 미션이 아니었다니...? 이것이 마지막 미션이다(아련)

왜 백업을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백업하는 모습(1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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