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
경이 눈을 가늘게 하며 웃었다. 그것은 정을 내려다보고 싶을 때의 버릇이었다. 하지만 지금 품 안의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정 쪽이다. 정은 그가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평생 본 일이 없었다. 고개가 젖혀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머리를 잘 받쳐든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덧없이 흘러내렸다. 정은 순리를 막을 수 없다.
네, 누님. 정입니다.
정아.
말씀하지 마십시오. 말을 건네려고 했지만 참담하여 소리가 되지 못했다. 차라리 유언을 들어두어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경은 평온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를 오래 미워했니.
가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정은 그것을 경이 뻔히 알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는 모르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경이 그 모든 것을 알고 싶지 않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은 얼마나 그것을 묻고 싶었기에 지금,
다른 때도 아닌 지금, 정에게 물었을까.
그만큼 사랑하기도 합니다. 누님.
정은 탄식하듯 말하였다. 언제나처럼 거짓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은 정의 속을 뻔히 들여다보듯 하였으므로, 거짓으로 둘러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정은 경이 재차 묻지 않기를 바랐다. 자줏빛의 눈동자가 천천히 흐려졌다.
그렇구나.
바람대로, 경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곧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한경도 어쨌든 인간이라 뱃속만은 약하고 부드러웠다.
영영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다.
예전에 쓰다 말았던 글인데 왜 썼는지 왜 쓰다 말았는지 기억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