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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정향定向






정은 부하에게 엄하게 굴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에는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차질蹉跌이 따르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 능력에는 한계限界가, 성과에는 기복起伏이 있으며, 의도치 않은 실수를 하기도 한다ㅡ누가 예외에 해당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ㅡ. 그다지 기대하는 것이 없었으므로, 정은 실망하는 대신 부하들을 고무시킬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믿음만을 건넸다. 정의 그런 면모는 종종 훌륭한 인품으로 여겨져 존경을 샀다. 정은 그들의 생각이 오해誤解라고 생각했지만, 손해損害가 되는 일은 아니었으므로 애써 바로잡지 않았다. 정의 인망이 두터운 덕분에 정의 말도 유난스러운 관리를 받았다. 특별할 것 없는 여느 군마 중 한 마리에 불과했으나, 그 정도 성誠을 다해 보살피다 보면 어련한 말은 준마駿馬가 되기 마련이었다.






정향定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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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에게 오랫동안 몸을 맡겨왔으므로 정은 오랜만에 초면의 말을 타게 되었다. 인간의 생김새가 그러하듯 이 말도, 다른 말들과 전부 닮았으며 어느 말과도 다르게 생겼다. 손바닥으로 말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몇 마디 말을 건네는 동안ㅡ공물公物이었으므로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ㅡ, 정은 턱을 들어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미 헤아려 보았지만 말의 수에 부족함은 없었다. 몇몇은 마음에 드는 말을 골라 이미 구보를 시작했다. 반면에, 말이 사납거나 승마 자체에 익숙지 않아 도움을 구하는 단원도 몇 있는 듯했다. 정은 특히 말과 떨어져 있는 이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청라는 보이지 않았다.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없는 외모이니, 보이지 않으면 그중에 없는 것이다. 친우는 입단한 이래 기승騎乘을 처음 익혔다. 영민한 그가 흥미를 두었던 일인 만큼 배우는 속도는 빨랐지만, 불과 몇 주 전에만 해도 말 고삐를 잡아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일찍이 말을 타고 출장할 일이 생기다니……. 혼자 말을 타기로 한 친우가 기껍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론 책임감을 느낀다.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사소한 걱정을 안고 사람들의 동향을 살피던 정의 눈에, 문득 연한 색소의 털로 뒤덮인 귀 한 쌍이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으므로, 인사차 가늘게 눈을 휘었다.


"한 공, 안녕하세요!"

"요하, 정말 걸음이 빠르네요."


정에게 인사하기 위해 요하가 훌쩍 다가왔다. 언제 보아도 참 경쾌한 걸음이다. 인사 대신 습관적으로 칭찬을 건네고 보니, 등 뒤에 활과 화살집을 둘러맸을 뿐 양손은 비어있었다. 그 역시 아직 말을 고르지 않은 듯했다.


"곧 출발할 텐데, 말은 골랐나요?"


요하가 가볍게 발을 굴러 보이며 대답하였다.


"저는 뛰어서 갈 수 있는데요?"

"……."


정은 잠시 요하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쫑긋거리는 귀를 빼고도 발에서부터 종아리까지의 생김이 집토끼에서 비롯된 린이었다. 그의 신체능력에 대해 소상히 알지는 못하였으나, 정은 높은 곳에 풀쩍 뛰어오르거나 바람의 흐름을 타 가뿐히 내려오는 요하의 모습을 눈여겨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번 출장은 경계京界를 넘어 평북까지 가는 일이다. 짧은 거리의 이동이 아니었고, 설령 그가 말처럼 오래 달릴 수 있더라도, 눈높이가 다른 말들에 섞여 이동하는 것이 안전할지는 또 모를 일이었다. 정은 요하를 무시하거나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음색과 표정에 신경을 기울였다. 물론 당신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겠죠. 하지만,


"도착해서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체력을 비축해두는 게 어떨까요, 요하."






* * *






동승한 이가 있었으므로 정은 조금 더 주행에 공을 들였다. 말의 안정적인 흔들림에 몸을 싣고, 앞서나가지도 뒤처지지도 않은 채 도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최근에 두 발로 걸었던 길을 이번에는 네 발로 달음 쳐 간다. 같은 길이었지만 해야 하는 일도 가고자 하는 곳도 달랐으므로, 정은 큰 감상 없이 풍경을 흘려보냈다. 임무의 분장에 따라, 단원들은 장인촌 즈음에 가구 매입을 맡은 이들을 남기고 흩어졌다. 북쪽의 배산으로 가는 일행은 정을 포함해 다섯 정도가 남았다.


목재는 평북의 오랜 먹거리였다. 벌목을 위해 꾸준히 사람이 드나드는 만큼 산길은 잘 닦여 있었다. 몇몇 벌목꾼들이 건네는 인사에도 정은 친절했다. 어떤 이에게 위험하니 깊이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들은 한편, 어떤 이는 관복을 갖춰 입은 정들이 말라죽은 송림松林을 살리러 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했다. 불모지지不毛之地에 신록新綠을 불러올 재간은 그들 중 누구에게도 없었으나 정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그러기를 몇 번째에, 정은 문득 말을 멈춰 세웠다. 갈림길이었다. 


갈림길이라는 표지는 어디에도 없었으나, 그곳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재액이 시작되어 길을 나누고 있었다. 쉽게 펼쳐진 길과 멀리 돌아가는 길. 그러나 옳은 길과 버려진 길은 그 반대인 것처럼 보였다. 적지 않은 수의 벌목꾼들이 작업 중인 산임에도, 버려진 쪽에는 기묘할 정도로 인기척이 없다. 아직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문제의 송림으로 들어가는 방향일 것이다. 남은 탐색 시간을 가늠해 본 정이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탄식하였다. 


나뉘어 상해 있는 것은 산길만이 아니었다.


두 인간, 설과 택 사이의 기류는 이미 심상치 않았다. 정의 눈에는 어느 쪽도 순진하고 의젓한 이들이었기에 그 모양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단장의 훈계로 좀 진정된 듯했건만. 적란의 난감한 양 웃고 있는 눈을 보건대, 상냥한 성정의 그로서는 계속 조마조마한 여정이었을 것만을 짐작할 뿐이다. 정은 말머리를 완전히 뒤로 돌렸다. 소리내 언급하는 순간 갈등은 실재하게 된다. 그 대신 설에게 눈짓으로 영문을 물었으나, 설은 보일 듯 말 듯 작게 고개를 저어 보일 뿐이었다. 웃은 것처럼 보인 것은 기분 탓일까. 어쩌면 미미한 고갯짓마저 정의 착각일지 몰랐다. 정은 미간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어찌 되었든 영영 길 위에 서 있을 수는 없다. 애초 하려던 말이 달라질 이유는 없었다.


"죽은 나무와 산 나무의 견본이 각각 필요하니, 여기서 잠시 흩어져야겠습니다."


택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름의 의견을 말하기도 했지만 정이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정은 직접 그렇게 할 입장은 아니었다. 다만 하달받은 임무를 단순하게 만들어 설명하는 일에 능했으므로, 각자 채집과 교섭 중 더 내키는 것 하나를 고르도록 하여 조를 둘로 나누었다.


"체목體木을 구하려면 벌목꾼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제가 다녀오죠." 정은 사람이 적은 쪽을 골랐다.


합류할 시각과 장소를 정하고 나니 미뤄두었던 걱정이 스며 올라왔다.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다툼이 있는 둘임을 차치하고라도, 그런 장소에 오래 요양했던 설이나 어린 단원들을 보내는 것이 영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단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승마를 말리지 않았듯, 정도 최저한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그럼……."


정은 잘 알고 있다, 일에는 차질이 따르기 마련임을.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순간들은 어디에나 산재하였다. 그랬기에 정은 기대하는 것이 희박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다치거나 잘못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정의 눈에 어리고 젊기 때문일까. 그저 정이 관리할 수 없는 성가신 사고가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일까.


"사이좋게 다녀오란 말까진 않겠습니다.

무리하게 탐색하지 말고, 때가 되면 바로 약속한 지점으로 돌아오십시오."


요하가 적란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








정향(定向) [명사]

방향을 정함. 또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짐.


190203

첫번째 미션. 요하랑 같이 진행했다(토끼편애 나타남).

마감에 애를 먹었던 로그인데 모든 일에는 차질이 있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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