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밝았다. 해를 여닫는 시기인 만큼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손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근면勤勉과 검소儉素는 가문의 오랜 가풍이었으나 그것이 스스로나 타인에게 인색하게 굴며 살라는 뜻이었던 적은 없다. 정은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 검약의 본질이고, 합리적인 소비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여느 대은 사람들이 이 맘 때면 그렇게 하듯, 휴일을 맞아 광장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야유野遊하는 기분으로 노점들을 둘러보던 정은 한 상인 앞에 멈춰섰다. 먼 길을 건너 온 이국의 풀향기가 정의 들뜬 마음을 간지럽혔다. 긴히 필요했던 것은 아니지만, 취미에 맞는 향료를 손에 넣었다.
"안목이 있으시구려. 혹시 내놓으실 것은 없으시오?"
기분을 맞춰오는 살가운 태도에 정도 기꺼이 미소지었다. 안 그래도 본가에서 들러 조금 가지고 나온 것이 있었다.
"많지 않은 양이라 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의 본가에는, 유서由緖의 길이만큼 오래 가꾸어 온 정원이 있었다.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으나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정원의 수목을 사랑하였다. 계절에 맞는 꽃이 피고 지는 정경을 눈에 담고 벗삼으며 정도 자연의 순리를 익혔다. 그 중 정이 오늘의 나들이에 들고 나온 것은, 여름이 떫게 무르익을 때면 비를 머금고 흐드러지게 피는 수국이었다. 정은 마른 날이면 제풀에 시들해지곤 하는 그 꽃을 조금 거두어 일부러 볕에 말리곤 하였다. 독성이 있는 꽃이었으나, 소량을 달여 마시면 가슴의 화를 가라앉혀주는 약藥이 되었다.
상인은 미간을 좁혀가며 마른 꽃잎의 모양새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다시 정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생긴 꽃이라면 팔선화八仙花가 아니오?"
"알아보시는군요. 매입하시겠습니까?"
정은 손가락을 펴 임의로 매긴 가격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190113
이벤트 참여로그~ (우리 돈 기준으로 9천원에 팔았다)
절간같은 집에서 욕심없이 살던 애라 딱히 내다 팔 것이 없어서 집에 정원을 붙여주었다.
이 즈음에 받은 벌칙 때문에 겸사겸사 향료나 말린 꽃 따위에 관심이 깊다는 설정도 추가.
지금 생각하기론 물이 필요한 꽃을 말리는 것은 좀 성격나쁜 취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