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유독 조용하다 했더니 의겸이 어느새 잠들어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종종 봐온 광경이긴 하지만ㅡ한 번은 그에게 잠이 부족하냐고 물어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결국 물어보진 않았지만ㅡ, 오늘은 더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와인을 여러 잔 마셨고, 음식도 많았고, 무엇보다 오늘 낮 비행기로 귀국해 바로 교연의 가족친지들을 상대한 것이다. 아무래도 시끄러웠다. 좋은 날이었으므로.
생일.
"졸았나 봐, 미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기다리자 의겸은 곧 깨어났다. 한 번 찌푸리거나 뒤척이지도 않고 가만히 눈꺼풀을 들어올리더니, 거의 평소와 같아진다. 시치미를 조금 더 뗐더라면 아마 그저 눈을 잠시 감고 있던 사람처럼도 보였을 것이다.
"상관없는데."
"쓸쓸하지 않았어?"
정말로 상관없는데, 그런 건. 그것보다,
"요즘도 적게 자?"
묻자 안전벨트를 끄르던 의겸이 늘 그런 건 아니지만ㅡ 하고 웃었다.
"이번 주가 조금 바빴어."
"늘 바쁘잖아."
"보러 오려고 열심히 하느라."
"올라가면 더 자."
"씻고."
"어. 씻고 자."
의겸은 굳이 피로를 숨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평온한 얼굴로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가 퍽 다정했다. 열 여덟의 교연에게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교연도 열 아홉의 의겸에게는 물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 일에 크게 의미를 둔 적은 없었을텐데, 어느 순간엔 또 이렇게, 어린 날에는 몰랐을 변화를 느낀다. 시간이 흘렀다.
"씻고, 나랑도 축하해야지."
"뭐……."
그렇지. 생일이니까.
캐리어 외에도 짐이 많은 날이었다. 싣고 온 쇼핑백들과 케이크 상자, 꽃다발 따위를 어떻게든 나눠 들고 걷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동안 의겸은 또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어련히 소리로 알게 되겠지만 괜히 한 번 이제 타야 돼, 하고 말을 걸어본다. 땡. 의겸이 순순히 눈을 떴다. 네, 생일이신 분부터. 이번엔 제대로 졸음을 던 모양이다. 손이 없는 교연 대신, 캐리어를 끌고 따라 들어온 의겸이 익숙한 숫자를 눌렀다. 다시 닫히기까진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올라갑니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
희소가 바리바리 들려 보낸 음식들, 제각기 포장된 선물 상자들, 장미 스물 여덟 송이, 희원이 사 온 케이크, 남은 스파클링 와인, 영이 손수 그렸다는 그림 카드ㅡ오늘을 위해 많이 준비한 듯 했다. 심지어 생일 축하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해주기까지 했다. 그런 것은 알려준 적도 없는데ㅡ, ……. 새삼스러울 일이지만 양 손에 들린 호의와 축하의 무게만큼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기꺼운 감각이었으나, 조금 피로해졌다. 꼭 드라이브가 길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물 여덟이 된 소감은 어떠신지?"
시선을 느꼈는지 의겸이 돌아보며 물었다.
"넌 이미 돼 봤을 거 아니야."
"지금도 엄밀히는 스물 여덟입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스물 여덟 살이 한 마음 한 뜻이진 않을 테니까요."
"음."
너도 나도 오늘은 피곤한 것 같은데.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아."
교연은 작게 대답했다.
나쁘지 않은 날들에 조금 더 둘러싸인 채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7. 9. 9.
"으음... 으음... 버쓰데이 파티 하는 의연...(?? 교연이 집< 지금< 스물여덟쯤...<"
이라는 흰님의 리퀘스트로.
흰님의 생일이 최근이었으므로 축하를 겸하여 긍정적인 이야기로 적어보았습니다.
뭔가 영이네 집에 다녀오면 명절에 인사 다녀온 것 같은 피로 느끼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의겸이와 교연이 모두에게 시/처가가 아닌 친정에 가까운 곳일 것이겠네요.
명이 선물은 영양제 세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는데 과연... 1도 안 먹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