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wn and Roses
P. Cup
죄송합니다. 몸이 안 좋아서요.
물론 보건실의 치륜은 은주의 든든한 아군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보건실 프리패스를 주지 않았더라도 은주의 그 말을 의심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첫째로 은주의 얼굴엔 혈색 비슷한 것이 없었고, 둘째로 은주의 모의고사 성적이 계열 내 두 손가락 안에 들 만큼은 우수했고, 셋째로, 그 성적이 아무래도 좋을만큼 은주의 공모전 수상이력이 화려했으며, 넷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주가 대개 착실하고 순한 학생이곤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은주는 실제로 그리 건강하지 않았다.
"또, 담배?"
물론 병명은 은주도 정확히 모른다. 월요병이라던가 졸음증 같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사무엘이 반 층 밑에서 은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또, 선배."
은주는 운율을 맞춰 대답한다. 파 하고 숨을 내뱉자 공기 중에 하얗게 번졌다가 사라졌다.
옥상, 보건실, 학생회실, 교사용 화장실, 소각장, 이런 저런 흡연장소 내지 수면장소로 적당한 스위트 스팟을 은주는 여럿 알고 있었지만 가장 안전한 곳은 교사의 서쪽 계단 3층이었다. 가뜩이나 정문에서도 쪽문에서도 가장 먼 계단이었다. 지금은 시설 노후화로 인해 쓰이지 않는 구 전산실과 이어진 그 곳은 해도 잘 들지 않았고, 심지어 한 학기 동안은 청소 당번도 없었다. 사무엘을 처음 만난 곳도 그 곳이었다. 키는 훨씬 작지만 1년 위 선배로, 수시에 일찍 합격한 이래 은주처럼 이 계단을 숨어있기 좋은 장소로 알아낸 덕분이라고 들었다.
"너무 자주 뵙는 거 아니에요?"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닌데."
"올라오세요, 불 끌게요."
은주는 차가운 돌계단에 걸터앉아 낮잠을 자거나, 지금처럼 바람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때엔 종이를 태웠다. 졸다가 일어나보면 사무엘이 근처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하거나 하며. 크기야 비슷하지만 은주가 갖고 다니는 담뱃갑과는 대조되는 스마트한 소지품이다. 걸리는 것이 무섭더라도 한 대쯤은 피워볼 법도 한데, 처음 담배를 권했을 땐 스트레이트로 거절받았다. 자신은 요리를 하려는 사람이다. 그러니 손에 담배 냄새를 묻히고 싶지 않다, 는 게 그의 이유였다.
인상깊은 대답이었기에 아직 기억하고 있다.
뭘 하려나, 은주는 꿈이 없다. 막연히 글이나 팔아 먹고 살지 않을까 했기에, 문인이 된다면 지독한 골초가 되어도 괜찮겠단 한가한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물론, 골초가 될 만큼 많은 담배를 구할 수는 없으니 조금 더 미래의 일일 것이다.
"안 꺼도 되는데."
"간접흡연은 되는 거예요?"
"뭐어……."
"……?"
"아직 길잖아."
담배는 아직 불이 붙은 채였다. 그의 말대로 아직 제 목숨값만큼을 다 불태우진 못한 청춘이다. 뭔가 아까운 것을 말하는 듯한 그의 대답에 은주는 잠시 사무엘을 굽어봤다. 예쁘장한 얼굴은 둘째치고, 그 눈이 은주의 손가락에 고정되어 있던 것이 느껴진다. 정확히는 끼인 종이 막대……에. 맛있어보이는 비주얼은 아닐텐데 싶어 조금 웃고 만다. 이 선배에게 갑자기 무슨 마음이 들었던 건지는 의문이지만, 10대의 청소년에게 담배란 건 괜히 입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었다. 사실은 은주도 비슷한 동기로 흡연을 시작한 바 있다.
"손 얘기 말이에요."
"어."
"아직 신경쓰이세요?"
사무엘은 즉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잠깐 담배 한 대 쥐었다 뗀다고 손이 탄 종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건 은주도 사무엘도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 은주 쪽은,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게 이유라면 손으로 만지지만 않으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도 있었다.
"드릴까요? 선배."
모쪼록, 나쁜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면목은 없다.
조금씩 재가 되어가던 종이 막대가 은주의 손가락 사이에서 가볍게 방향을 바꾼다.
계단을 전부 올라온 사무엘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