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허구의 애매한 서화

Maybe Classic CBI Day




 1.

 "잠복수사에 대한 제 작은 로망이……."

 새벽의 잠복은 토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루하고 따분한 작업이었다. 시청의 민원 자료를 분석해 지역 일대의 우체통 변색 패턴을 뽑아준 것을 끝으로 애셀은 퇴근했고, 가끔 통신으로 말을 걸어주던 선하도 자정을 넘기자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애초 블루 던 시티는 그리 화려한 도시가 아니었고, 밤에는 불을 끄고 잠을 자는 것이 통상이다. 랩에서 추천해준 잠복 스팟은 저녁에 진작 문을 닫은 시립도서관 앞이라, 몇 시간 째 단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았다. 토리 몰래 개미 한 두 마리 정도나 지나갔을지도.

 "로망이 있었어?"

 뒷자리에 앉은 아드리안과 백미러로 눈이 마주쳤다.

 "수사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잠복수사도 많이 하잖아요. 불 꺼진 차 안에서 사이드미러로 용의자의 집 앞을 감시하는, 그런……. 피곤하면 가끔 담배도 피우고요."
 "토리, 담배 안 피우잖아."
 "그건 그렇지만……. 잠복하는 경찰이라고 하면 클리셰가 있잖아요? 단팥빵에 병우유라든가."

 "팥빵?"

 아드리안의 손에는 빵 대신 치킨너겟이 들려있었기에, 조금 웃고 만다.
 어떤 쪽인가 하면, 토리도 빵보다는 닭고기가 좋다.

 "우리 부서는 딱히, 잠복할 일이 많진 않죠?"
 "그렇지."

 차창 바깥을 주시하고 있던 란씽이 입을 열었다.

 "범인 없으니까, 보통."
 "응."

 보통.

 "그렇겠네요……."

 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수사국 안에서 특수재난관리과가 얼마나 애매한 위치에 있는지는 시니어인 란씽이나 아드리안이 훨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적은 무의미, 업무량은 과다. 애초 특재과가 다루는 사건이 '이변'이라는 점 때문에 개선할 수 없는 문제다. 사건을 해결하더라도, 범인을 잡은 것은 아니기에 언제 또 같은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예방할 수도 없고, 개선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사건에 손을 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햄 샌드위치도."
 생각이 길어지려던 때에, 란씽이 불쑥 말을 꺼냈다.

 "네?"
 "잠복할 때 먹는 거."
 "아아!"

 그랬지. 어떤 수사 드라마의 수사국 요원이 그걸 즐겨 먹었던 것 같은데.
 샌드위치도 맛있을 것 같아요. 아침에 법인카드로 샌드위치 사 먹었으면……하고 치프의 비서―일단 카드는 루스가 아드리안에게 맡긴 것이다―인 아드리안의 눈치를 살피려던 찰나, 토리가 인기척을 느꼈다.

 "아. 저기 오네요. 공원 방향……그러니까, 9시 방향요."

 시니어들의 고개도 함께 왼쪽으로 돌아간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땅만을 밟으며 슬금슬금, 자전거 두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것, 썩 젊은 나잇대로 보이는 것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잠깐 대화를 나누는 듯하더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전거를 주차했다. 곧 다른 방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탄 남자 하나가 슬그머니 합류했다.

 "자전거라니 오랜만이네요! 어릴 때 생각나고."
 "스케이트 보드 쪽이 더 어려보이는데, 아까 본 애들 같아?"
 "모자 때문에 확실하진 않지만……인상착의는 제대로 들어뒀으니까 걱정 마세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차 안에서 일련의 장면들을 '다시' 들어두었기 때문이다.
 토리는 포테이토 피자를 소화하는 동안 지난 주의 타임라인을 주욱 리플레이하면서, 비슷한 체격의 두 사람―정확히는, 두 자전거 쪽―이 우체통에 페인트를 칠하는 장면을 똑똑히 확인했던 것이다. 버스 모양의 목걸이를 덜렁거리며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모양이 퍽 안쓰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상을 전하며 하품을 했더니 선하로부터 그 정도의 일로 특수능력을 쓰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다.

 "저 애들 한참 걸릴 텐데. 어떻게 할까요?"
 "아직. 기다려."

 란씽이 말했고, 두 그림자가 우체통으로 슬렁슬렁 걸어왔다.
 산책이라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정도'의 일이다.
 상대는 경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이비 종교 신자, 아마도 일반인. 하지만 이 쪽은 애매하니 개선 여지가 없니 해도 중앙수사국의 프로페셔널한 요원들이다(특히 선배들이). 저들이 언제 할지, 무얼 할지, 어떻게 할지도 이미 알고 대기하고 있었던 상황. 심지어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가설도 견고한 편이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토리는 시니어들의 지시에 따를 마음으로, 뭉친 어깨를 주물러 풀었다.

 "그럼 남은 치킨만 다 먹고 가볼까요?"

 아드리안이 조수석 시트에 손을 짚으며 제안했다.



 2.

 선하, 있어?
 …….
 …….
 아, 응. 듣고 있어요. 진전이 있어요?

 현행범. 연행할게.
 BDPD로요? 혐의는……일단 공공기물 파손이겠죠?
 아마.
 신도라고 생각해요?
 네, 박사님! 하고 있던 악세사리나 쓰는 은어들을 봐선, 분명하다고 봐요!

 브라반트 군에게도 말은 해뒀지만……. 루스에게는 아직 보고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할지는 편하게 결정해요. 선데이 모닝에 관련된 사건이란 걸 알면 아무래도 시끄러워질 테고, 당장은 제가……. 음……. 상대할 자신이 없어서……. 돌아와서 얘기했으면 해요. 괜찮죠?
 상관은 없지만. 나중에 알게 되실 치프님이 괜찮을지가, 조금…….
 …….
 …….
 리안 씨, 지금 뭐 먹고 있어요?



 3.

 [하나 놓쳤어. 복귀할게.]
 [토리? 지금 어디야?]

 그 말인즉 둘은 잡았다는 뜻이겠지.
 추격전을 치르고도 숨 한 번 몰아쉬지 않는 란씽의 목소리가 조금 경이롭게 느껴진다.

 검거 작전―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의 전개는 명료했다. 토리가 자전거 방향을 막고, 란씽과 아드리안이 접근해 요원 배지를 보인다. 페인트 붓을 전부 내던지고 냅다 뛰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포기한 쪽은 몇 블럭 지나지 않아 붙잡힌 것 같지만, 스케이트 보드 쪽은 사정이 달랐다. 줄곧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옆에서 잔소리만 하고 있던 보더는 바퀴에 속력이 붙자마자, 쫓기는 일행과는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질주했다.
 정확히는ㅡ토리가 대기하고 있던 방향으로.

 "제가 쫓고 있어요! 맡겨주세요!"
 ……이상, 토리가 지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연유였다.

 고요한 주택가를 가로지르며, 긴 언덕을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스케이트 보드와 자전거는 여러 면에서 상반되는 특징이 있다. 스케이트 보드가 판자에 바퀴뿐이라 수납이 편리하다면, 자전거에는 핸들도 브레이크도 있다. 상대적으로 주행이 안정적인 대신 도둑맞을 일이 많으니까. 짧은 거리를 이동할 일이 많다면 보드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위험한데다 애들의 장난감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 위험한 이동수단을 타고도 용케 한 번 넘어지지 않는 것이, 쫓아가는 입장에선 곡예처럼도 보였다. 흥분해서 되는대로 도망치는 것인지 보드를 타는 솜씨가 훌륭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토리는 그가 도심가로 향하고 있음을 자신했다. 탁 트인 주택가보다는 건물이 높고 길이 좁아지니까, 누군가를 따돌리려면 그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판단 이전에, 토리에게 블루 던은 홈-그라운드-시티, 우리 동네였다.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다가 번화가로 내려와 이른 저녁을 먹는 것이 주말의 소소한 일상이었으니, 토리로서는 너무 잘 아는 길목이다. 모쪼록 유년 시절을 보낸 동네에서 지리를 헤맬 일은 없……. 

 "어."

 ……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막다른 길에 막혔다.
 토리는 아슬아슬하게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 선다. 눈 앞에서 증발하듯 사라진 그림자를 찾아 자전거의 전조등을 이리저리 비춰보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이 골목으로 꺾는 것을 똑똑히 봤는데.
 종합상가 건물의 뒷문과 이어지는 좁은 골목은 아무리 뜯어봐도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토리가 쫓아온 방향은 아니고, 왼쪽의 문은 쇠사슬로 잠겨 있고, 눈 앞은 5층짜리 건물 벽에 막혀 있고, 오른쪽엔 소형 트럭만한 크기의 쓰레기 수거함이 놓여있을 뿐이다. 가슴이 터질 듯해 밀린 숨을 헉헉 몰아쉬며 뒤편에 숨을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누가 던지다가 뒤로 흘렸는지, 길고양이가 뜯다가 말았는지, 배가 터진 종량제 봉투와 눈이 마주쳤다. 강렬한 악취가 숨에 섞여들었다. 역겨움에 그만 물러선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어디로, 갔을까.

 [토리, 토리, 듣고 있어? 어디야?]
 "헉, 네, 선배. 호수 역 근처예요. 우웩. 놓친 것 같……아요."
 [괜찮은 거야? 지금 데리러 갈게.]
 "라져……. 차로 오시면 금방일 거예요."
 [다친 건 아니지? 위치 정확히 말해줘.]

 네, 그럼요. 오후에 과식하지 말걸 가슴으로 후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토리는 종합상가 빌딩의 위치를 상세히 설명하며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 뒷문이 열리는지도 확인했지만, 자물쇠도 차갑고 문도 단단하게 잠겨있다. 역시 도망칠 길은 토리를 제치고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자와 마주쳤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 이 시간에 있을 길고양이도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이 정도면 이변인가…….
 (히끅!)
 ……아니, 잠깐만.

 "지금 딸꾹질하신 거예요?"
 [응? 아닌데.]

 문득 쓰레기 수거함에 시선이 닿았다. 처리 차량이 언제 오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상가의 모든 가게에서 나온 쓰레기가 전부 들어있을 것이다……수거함의 외벽에도 끈적거리는 이물질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거기에 아직도 코에 남아있는 악취가……. 그런데……. (히끅!) 설마…….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만으로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고 말았다. 

 ……설마, 이건 쓰레기통인데.
 설마.

 "저, 잠시만요……."

 설마가 사람을 잡을 수도 있단 생각에, 토리는 수거함에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여봤다(정말로 피자를 게우고 싶진 않아서, 코는 꼭 쥐었다). 끅! 잔뜩 억눌린 딸꾹질 소리가 토리의 생각을 확인해주었다.

 "……. 쫓던 범인 말인데, 지금 쓰레기 수거함 속에 들어있는 것 같거든요."
 […….]
 "어떻게……생각하세요?"

 [밟을게.]
 마지막은 란씽의 말이었다.



 4.

 빨, 강…….
 파랑……. 빨강, 또 파랑…….

 눈꺼풀 위로, 빨갛고 파란 빛이 번갈아 돈다.
 토리가 예의 욱신거림을 느끼며 헤드폰을 벗었을 땐, 이미 경찰차가 도착해있었다. 란씽과 아드리안은 마치 이변 덩어리 따위를 처리하는 듯한 표정이었고, 처리되고 있는 남자―스파이크는 커다란 비닐에 담긴 채 경찰차에 올라타던 참이었다. 머리카락에 양상추 조각을 붙이고도 스케이트 보드만은 목숨처럼 끌어안고 있던 몰골이 조금 안쓰러웠다. 남자를 집어넣는 경찰관의 표정도 영 떨떠름해 보인다.

 토리 쪽을 돌아보는 것 같길래 손을 흔들어줬다……저런, 경찰차에 머리를 부딪치며 구겨넣어진다.
 나름 수사 드라마의 클래식한 마무리 장면이지 생각하며 조금 웃었다.

 "어땠어?"
 아드리안이 토리를 향해 물었다.

 "생각 이상……."

 짧은 리플레이였고 대부분이 흐느낌과 딸꾹질 소리였기 때문에 내용은 전부 기억하고 있다. 토리는 주머니에서 MP3 플레이어를 꺼내 전원을 껐다. 되돌려 들은 것은 스파이크가 수거함에 숨어 전화를 걸었다가 토리가 들이닥친 몇 분 남짓의 내용. 워낙 소리가 작아 음량을 증폭시키고 집중했더니, 귀가 조금 얼얼했다.

 ―여보세요, 교주님?

 "이었어요. 전화를 하더라고요."
 "설마, 교주?"
 "네."

 교, 주님……흑, 저예요. 스파이크. 급한 일 아니면 전화하지 말라고 하셨지만……죄송해요 저희, 급해서. 왜 수사국에서 우릴 쫓는 거죠? 갑자기……. 흑, 지금 숨어 있어요. 톰이랑 제리는 이미 잡힌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잡히면……퇴학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요. 저……너무 무서워요 교주님. 지침을 주세요, 도와주실 수 있죠? 교주님! 네? 교주…….

 "작업할 때랑은 태도가 딴판이던데요. 완전 겁먹어서, 거의 울고."

 우체통? 그런 사소한 [작업]까지 내가 어떻게 해줄 순 없는데. 운이 없었네, 학생.
 교주님, 하지만 우린 교주님이 어떻게든……, 힉!
 …….
 히끕!
 …….

 "이게 필요하시다고요. 서로 따라오셔서 서류 하나 작성하셔야 할 겁니다. 저희도 살펴봐야 하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관이 투명한 증거 봉투에 포장된 핸드폰을 들어 보인다. 다행히 겉보기엔 그리 오염되진 않았다. 스파이크가 갖고 있던 것이니 가져가 조사해보면 블루 던에 필요한 자료도, 특재과에 필요한 자료도 조금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지루했던 잠복수사의 보람 정도는 챙겨가는 하루가 아닌가 생각했다……이미 자정은 지나버렸으니 어제라고 해야하나, 어찌됐든.
 '그 정도'의 일인 것치고는, 나쁘지 않게 끝낸 것 같다고 자평해본다.

 ―학생. 제자님. 듣고 있어?
 …….
 숨어있다 이거구나. 쯧, 그럼 듣기만 해.
 …….
 월말에 더 중대한 이벤트가 있는 거……내 [강의] 들었으면 잘 알 거 아니야. [수강료] 내고 졸았어? 그 날에 집중해야지. 도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귀, 계속 만지는데."
 들려온 지적에 토리가 손을 멈췄다. 듣고 보니 손가락으로 귀를 계속 만지고 있었다.

 "그게,"

 ―곧 망할 세계인데, 너 정말 학교 나부랭이가 중요해서 전화한 거야?

 "아까 들은 웃음소리가 조금, 섬뜩했어요."
 괜스레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가, 빈손이 되어 란씽에게 차키를 넘겨받았다.

 "……돌아갈까요, 일단. 제가 운전할게요!"

 오늘도 어제만큼 긴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In Community SPEDIS : Case 2
안녕 토리 이게 네 마지막 미션이야...(토리: 엣
개같은 컨디션 개같은 로그... 그런데 이게 마지막이야 토리... 미안하다... 22...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