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저 MP3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메탈 동아리 같은 걸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V__tory 메탈이요? 음악 장르?>
<@Rose_moss 네!! 데스 메탈! 쫙 달라붙는 검은 가죽 바지에 아이라인도 두껍게 그리고... 세기말에 대한 파괴적인 노래를 잔뜩 부르는 거죠! 공연도 다니고! 머리도 흔들고! 마약도 하고! 아마 지금쯤 목이 잔뜩 쉬어있을지도요!!XD!!!>
<@V__tory 음... 밴드가 아니라 동아리라니 은근히 건전한 규모네요.>
<@Rose_moss 어, 그런가요?>
이 곳은 시외버스 터미널.
일단은 버스를 찾는 중이니까, 무작정 버스가 제일 많은 곳으로 와 보았다.
뭐, 고작 입사 1개월 차의 뉴비 요원인 토리에게 능숙한 위장수사를 기대한 사람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요원 배지를 내밀며 CBI의 헤더웨이입니다, 하고 소개하는 것도 아직 혀를 씹는 판이니, 방해나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드리안은 '전문 연기자가 아니니까'라고 말해줬지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면서 정보 수집에도 어려움이 없는 위장신분 같은 것은 쉽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나눠 받은 와펜을 크로스백에 달고 터미널 광장에 멍하니 앉아있는 동안, 토리는 남들의 눈에 토리가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 조금 고민하고 있었다.
"저 어떻게 보여요?"
입술만 달싹이며 헤드폰에 묻자 핸드폰에 지잉, 하고 작은 진동이 들어왔다.
<@V__tory 자연스러워요. 그런데 계속 앉아있기만 할 건가요?>
실제로는 어떻지?
지금, 침착한가?
헤더웨이, 토리. 나이는 스물 셋.
하지만 난생 처음 집 밖에 나선 아이처럼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길을 잃었거나, 멀리서 오는 친구를 마중 나오거나, 같이 여행가기로 한 친구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이런 컨셉은 하루밖에 못쓸 텐데.
다른 스물 세 살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토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학교에서 공부 중이거나, 미래에 대해 고민 중이거나, 토리처럼 사회 초년생이지 않을까. 대학 동문들은 대부분 공무를 수행 중이고, 요즘 알고 지내는 동갑내기라곤 최근에 입사한 미연이나 니나 정도―말인즉, 토리와 꼭 같은 입장의 사람들―가 전부라, 아직 학생으로 보일 나이겠지 정도만 막연히 생각해볼 뿐이다.
자연스럽다는 건 불안해 보인다는 뜻인지, 길을 잃은 것 같단 뜻인지.
하지만 스마트폰을 쥐고 SNS에 열중하고 있는 것만은 여느 또래들처럼 보이지 않을까.
<@V__tory 그리고 마약은 범죄라고 전해달라는데.>
푸핫, 그만 웃어버렸다.
2.
<마멀레이드 랜드에서 뿌리고 있는 풍선이에요. 이번 설명회는 진짜일지도! pic.cfrog...>
<풍선 속에 QR코드가 들어있네요~ 몇 개 스캔해봤는데 놀이기구 팻말에 숫자 91을 합성해놓은 사진이 연결돼요. 해당 기구들에 힌트가 있는지 둘러보려고 해요>_<...>
<QR코드 추가 pic.tweet...>
<합성 이미지는 프리 업로드 사이트를 이용해서 올린 것 같네요. 혹시 모르니 원본을 조회해볼게요.>
<(RT 감사합니다) 설명회 일시를 맞게 언급한 계정을 추려봤는데, 확실히 QR코드 형태를 애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티에서 보고 계신 분들도 참고해주세요.>
<먹은 거~ pic.cfrog...>
<곧 퍼레이드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또 트윗할게요. pic.cfrog...>
<풍선 겉면에 QR코드가 인쇄된 것들이 보여요. 몇 개 촬영하긴 했는데 코드가 잘 안 보... bit.ly/...>
<@east_A 요주의 계정이 로즈 스트리트에서 트윗 중. 주변 CCTV를 분석 중이니 시간을 끌어주세요.>
<지금 다들>
<지하철역에 토끼떼 출현. 2호선 오키드 스테이트 역>
<pic.twitter...>
<버스 있습니다. 외관 pic.tweet...>
<촬영 중인 사람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트윗은 여기까지 할게요X(>
여러 조가 한꺼번에 정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페이크 앱의 타임라인은 실시간으로 바쁘게 갱신된다. 토리는 틈틈이 엄지를 놀려가며 타임라인의 내용을 체크하고 있었다. 딱히 토리 쪽에서 트윗해야 할 소식은 없지만, 유원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이비 종교의 이주 설명회나, 지하철 역사에 토끼들이 떼 지어 나타난 이변이나, 주요 신도들의 트윗 경향 따위는 읽어두는 편이 안심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통신장비 대부분을 몸에서 떼어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라도 꼭 쥐고 있지 않으면 이렇다 할 정보가 생겨도 전달하거나 전달받을 수단이 없었던 탓이다.
"해리스 군, 7번 테이블에 아메리카노 두 잔."
"아, 네!"
방금 해리스라고 불린 토리가 급히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엄선해 골랐던 91번 버스 티셔츠도, 크로스백에 붙였던 와펜도 지금은 목까지 채운 와이셔츠와 검은 앞치마 차림이라 어필할 수가 없다.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자 같은 복장의 바리스타가 음료 두 잔을 쟁반에 올려놓았다. 진동벨이나 번호표 같은 걸 나눠주는 편이 인력 절감에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 쟁반을 양손으로 받쳐 든다.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해서인지, 뜨거운 음료의 주문이 부쩍 많아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자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해버렸다.
무언가 다른 컨셉을 빨리 생각해내지 못한 탓이다. 아니 하다못해 토리가 터미널 광장의 카페에 붙어있던 아르바이트생 급구 공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아니, 랩에서 바로 가짜 이력서와 급여 계좌를 준비해주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잠입을 하고 있진 않았을 테지만.
광장에 설치된 테이블 사이 사이를 돌아다니며 음료를 서빙하는 일은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핸드폰을 엿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귀를 막고서는 제대로 일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고, 다른 일로도 바쁠 랩에 계속 사람들의 음료 기호를 들려주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 와이어는 떼어두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잠입이긴 분명히 잠입인데, 잠입이면서 '수사'이기도 한지는 몹시 자신이 없어졌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아직 뜨거우니까……."
잠시 속으로 신세를 한탄하며 음료를 테이블에 내려놓다가, 토리가 문득 눈을 든다.
"……데이거나 다치시지 않도록 조심해서 마셔주세요."
말을 마치면서 침착한 표정이었기를 바란다.
7번 테이블의 여자 둘은, 코트 속에 마침 붉은 색깔의 91번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3.
<일단 복귀 중입니다. 설명회에서 얻은 정보는 곧 정리해서 전달할게요! pic.cfrog...>
<[무료나눔/RT] 설명회에서 공개된 주요 정거장과 탑승 조건이라고 합니다. 디테일한 시간까진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니 새로운 정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아래 링크 참조해주세요. bit.ly/...>
<버스 외관은 이 쪽이 유력한 것으로 보여요. tweeter.com/A-EL/status/...>
<@V__tory 못 들었을 것 같아서 따로 멘션. 신도들은 대학생 정서의 은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교수, 강의, 과티, 시간표, 셔틀버스 같은 단어들에 주의해줘요.>
<(RT 감사합니다) 터진 풍선 조각에서 QR코드를 복구해봤어요^^ 접속되는 페이지가 지역 위치별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bit.ly/... pic.twitter...>
심야가 되고 나서야 토리는 가르송을 벗고 다시 티셔츠를 입을 수 있었다. 땀흘려 일한 뒤라 그런지 유독 밤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그 사이 쌓여있는 타임라인을 빠르게 주행하면서, 미리 눈여겨봐 둔 몇몇 트윗의 링크들을 상세히 확인해본다. 관광 안내소라면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건물이었는데……생각하며, 남에게 보여도 괜찮을 법한 내용으로 보고성 트윗을 하나 작성한다.
<근무 끝났어요! 신나는 퇴근길X)!!! 관광 안내소에 들렀다 가려고요:0>
지잉.
<@V__tory 해리스 군, 코드부터 스캔해보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제 수사에 좀 도움이 되려나. 뿌듯한 마음으로 전송을 누르고 랩에서 복구했다는 QR코드를 스캔하고 있자니, 작은 진동과 함께 푸시 메시지가 떴다. 답장하는 대신, 조그맣게 소리내어 대답한다.
"안 그래도 접속하는 중이에요."
로딩 바가 천천히 차오르다가 잠시 멈췄다.
"GPS를 켜겠냐고 묻는데…….
배터리가 얼마 없네요. 아까 와이파이 켜지 말걸."
톡, 톡, 확인 버튼을 누르면서 사거리의 보행 신호를 기다린다. 힐끔 뒤를 돌아보면, 터미널 건물에 달라붙은 프랜차이즈 상표들이 알록달록한 불빛을 내뿜고 있다. 터미널에서 탈 수 있는 마지막 버스는 심야 편 몇 대를 빼면 진작에 모두 끊어졌고,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거리는 낮보다 한산했다.
초록, 초록, 초록, ……, ……, 노랑, ……, 땡. 신호가 바뀐다. 토리는 속으로 셋을 세고 걷는다.
건널목을 두 번 꺾어 건너는 동안,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는 생각보다 아주 짧았다.
<꽝! 찾고 있는 것은 ○○색 상자에!>
"라고 쓰여있는 게 끝인데요. 그쪽에선 어땠어요?"
[……씨×, 가지가지 하네.]
[우리 쪽에서 열어봤을 땐 이틀 뒤에 갱신되는 페이지라고 쓰여있었어요.]
[레드 페퍼 시티니까, 빨간색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빨간색 상자……. 당장 생각나는 건 우체통postbox 정도인데요…….]
"음, 저도요."
누군가가 자신없게 중얼거렸지만, 토리의 눈에도 마침 관광 안내소 앞에 설치된 우체통이 눈에 들어왔기에 바로 달라붙어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앞, 뒤, 옆, 지붕, 어디에도 QR코드로 보이는 것은 찍혀있지 않았다.
"어디 있을 텐데."
[꼭 우체통이라는 건 아니잖아요. 없으면 무리하지 마요.]
"사실, 아까 서빙하면서 엿들은 게 있거든요. <과 티셔츠> 입고 있던 사람 둘이서……포스트 박스가 어쩌고저쩌고. 새 시간표가 나왔는데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끄응, 하고 있었거든요."
[우체통 하니까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나네요. 3년 전엔가, 한 번 블랙 스커트 시티 우체통이 전부 검은 색으로 변색됐었는데. 기억나요?]
"으, 전 처음 듣는데……. 어떻게 됐는데요?"
[이렇다 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어요. 결국에 이변적 요소가 없는지만 확인하고 시청에서 리페인팅을…….]
[닥터 채.]
[……미안해요. 헤더웨이 군?]
4.
[헤더웨이 군, 듣고 있어요?]
힘껏 뻗은 중지손가락 끝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걸렸다.
손톱이 조금 더 길었으면 편했을 텐데, 생각하며 그것의 끝을 살살 긁어내자 겨우 손끝에 달라붙었다.
"잠시만요. 뭘 찾은 것 같아요."
토리가 간신히 숨을 뱉으며 우체통 밑에서 팔을 빼냈다.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스티커였다. 눈을 찌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니 QR코드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또 QR코드네요. 지금 스캔해볼게요."
토리가 대답하며 그것을 카메라 렌즈에 가져갔다. 스티커가 작기 때문인지 코드를 스캔하는 시간이 잠시 길어졌다. 어쩐지 마음이 급해진다. 제목 행은 빨강. 아래는 하얀 바탕에 까만 숫자들, 숫자들. 네 자리 숫자들의 나열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랩에 넘기는 것도 미루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토리는 뒤늦게 그것이 도로 주소와 운행 시간이 조합된 노선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선표 같아요. RPC를 지나가는 경로인 것 같은데, 몇몇 숫자에 볼드 처리가 되어있어요."
[지금 보내줄 수 있어요?]
"잠시만요……. 지금 시간이……. 어……."
[왜 그래요?]
"그게……. 여기가 출발지인 것 같아서……."
갑자기, 눈 앞에 환한 불빛이 쏟아졌다.
분명 고요했던 버스 터미널 쪽 도로에서부터 커다란 버스 한 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허어, 버스……가 와요."
터미널에서 지겹게 많이 본 우등버스와 비슷하게 생겼다. 토리는 버스의 색깔을 식별하려고 눈을 찌푸렸지만,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분명 오늘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모두 확인했었다.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저 버스의 티켓이 '비매품'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버스는 서행했다.
우체통이 정류장의 표지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토리가 서 있는 바로 앞까지 다가와 마법처럼 멈춰섰다.
토리는 버스의 문 옆에 굵게 인쇄된 숫자를 눈으로 똑똑히 읽었다.
"No. 91……. 탑승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루스의 지시가 귓가에 들려왔다.
입고 있는 티셔츠의 프린트가 잘 보이도록 패딩 점퍼의 지퍼를 아래로 내리며, 작게 심호흡을 한다.
…….
길이라도 잃은 애송이처럼 보였으면, 하고 바랐다.
in Community SPEDIS: Case 1
버스 추적에 이어 버스 탑승 미션. 제목은 아마노 츠키코의 노래 일요일에서.
토리의 가명은 어쩌다보니 설/국/열/차의 철도왕 윌포드 역이었던 에드 해리스에서 따 온 것처럼 되었다.
헤더웨이 가는 철강가문이라는 나만의 동인설정이 있어서...(전혀 관련없음) 그랬다고 합니다.
토리의 가명은 어쩌다보니 설/국/열/차의 철도왕 윌포드 역이었던 에드 해리스에서 따 온 것처럼 되었다.
헤더웨이 가는 철강가문이라는 나만의 동인설정이 있어서...(전혀 관련없음) 그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