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레오 쿠키를 얹은 생크림 머핀, 초콜릿 칩이 잔뜩 박힌 쿠키,
따끈따끈한 글레이즈드 도넛 한 박스와 각자 취향대로 제조된 고카페인 커피.
단 음식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한다. 물론 일시적인 쾌감 뒤에는 혈당이 떨어지면서 무기력한 순간이 찾아오곤 했지만, 과로 중인 뇌를 얼러줄 당근이 필요할 때엔 기꺼이 지불할만한 대가였다. 랩 요원 대부분이 투입된 이번 작업은, 험하게 말해 쓰레기장 속에서 쓰레기 더미를 맨손으로 뒤지는 일이었다. 단언컨대, 단 것이 많이 필요했다. 선하는 초코칩 쿠키를 전투적으로 와작거리며 그간의 수확에 대해 체크하고 있었다.
"일단 아담스 군이 짜 준 프로그램은 잘 돌아가는 것 같죠. 수고해줘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라고 니나가 입에 도넛을 문 채 타이핑했다. 그녀는 임시 방편이라고 말하며 코딩했지만, 일정 키워드를 얽어 연관성 있는 텍스트를 걸러오는 식의 기능은 이 밑도 끝도 없어보이는 작업을 여럿이 애먹으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낮추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양이 많아요. 시기가 시기인지라."
"원출처가 어딘지 찾을 수 없는 자료도 많아서요……."
"오프라인 설명회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인데, 하는 말이 다 다르던걸."
"특히 91번 버스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있는 건지도 의심스러워요. 대부분 조작된 이미지였고."
"…….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데, 요."
물론 쓰레기 더미 속에 들어있는 것은 대부분 쓰레기다. 언제부턴가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잉여정보의 쓰레기장처럼 변해버렸다.
여느 디지털 콘텐츠들이 그렇듯, 선 위를 떠돌아다니며 리트윗되고 스크랩되고 복사-붙여넣기되어 다른 곳에 게시된다. 유저들의 콘텐츠 제작이 쉬워진 만큼 겉핥기식의 언급이나 패러디식 풍자도 매일매일 뻔하게 쏟아져 나온다. 말세니 멸망이니 하는 단어가 농담이 아닌 마당이라, 선데이 모닝과 91번 버스에 대한 이야기는 온라인상에 큰 화제가 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마저도,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않느냐며 한마디씩 입을 여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가짜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세스가 말끝을 흐리며 동의했다. 이걸로 랩에서도 모두가 한마디씩 한 셈이다.
여기 머핀 맛있네요. 몇 블록 떨어진 데 있는 베이커리일 거예요. 여기 마카롱도 맛있는데. ……. ……. 그런데, 우리 랩은 늘 타임라인이니 뉴스피드 같은 걸 감시하고 있는 거예요? 정확히는 수사국에서 하고 있고 달리아는 받아먹고 있단 느낌에 가깝네요. 그거, 좀 소름 끼치는데.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이상한 일이라면 스마트폰부터 꺼내고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신고보다 빠를 때도 있고요. 음……. 우리만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어차피 누구나 맘만 먹으면 열람할 수 있는 걸. ……. ……. 열린 공간이란 걸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죠. 오히려 영장이 필요 없어서 좋은 점도……. ……. ……. …….
"맞아, 달리아 쪽은 어떤가요?"
한참 메시지와 목소리를 섞어 담소를 나누던 도중, 노아가 새 머핀을 집어들며 물었다. 그녀의 자리에 한 입 베어 문 머핀이 이미 놓여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귀여운 아가씨의 안부를 묻듯 묻고 있지만 달리아는 이 랩의 중심점이 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이름으로, 이변 내지 이상현상 사례에 관해서만은 지금 랩 요원들이 매달려 있는 기초적인 자료 조사를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데이 모닝은 유감스럽게도 이변 현상이 아니다. 오랜 시간 구전되어 온 도시 전설이나 설화도 아니다. 인간들이 만든 조직이고, 사람들이 지금 막 떠들고 있는 이야깃거리인 것이다.
"달리아로 기존 사이비 종교조직들의 전도활동 패턴을 검토해봤어요. SNS나 UCC가 발달하기 전의 사례가 많아서 시대적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 정보 흘림의 주축이 있는 건 분명할 거예요. 지금까지는 루스가 준 키워드 위주로 여과했지만, 슬슬 영향력 수준을 봐서 몇몇 사용자를 마크해보도록 하죠. 그 유저들 사이의 교류가 있는지도 보는 편이 좋겠어요."
오랜만에 강의실이 아닌 랩에서 여러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긴장감을 풀고자, 선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슬슬 움직여볼까요, 치프가 재촉하러 오기 전에."
2.
선하가 막 기말고사 페이퍼의 성적 입력을 마치고 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 그녀는 벌컥 들이닥쳤다.
"……오랜만이네요. 증원 건에 대해서 말해줄 생각이란 건 알겠어요."
"맞아요. IQ가 몇이랬지?"
"그런 건 말한 적 없는데요."
루스 로테스트의 특수능력은 간단히 말해 쏘면 맞춘다, 에 가깝다. 다시 말해 총기가 있는 이상 적이 없었다. 그녀의 적의는 이행되지 않는 순간부터 패널티가 되어 그녀를 갉아먹기 때문에, 그녀에게 밉보이는 순간 즉각 처형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종종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건 나쁜 감정을 소모해 없애기 위해서라는 걸 선하도 얼핏 이해하고 있다.
문제되는 부분을 빼면 그녀는 유능한 치프였다. 부서가 일하는 법에 대해서는 누구만큼 잘 알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들의 일거리인 '이상한 일'이 세상에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그 중에서 손댈 수 있는 것을 찾는 작업도 하나의 일이 되었다. 그녀 나름 부서를 움직이기 위해 근거를 마련해온 모양이었다. 루스는 빈 실험대 위에 커다란 쇼핑백을 거꾸로 쏟았다. 비닐로 낱개 포장된 옷 몇 장을 비롯한 잡동사니들이 미끄러지듯 쏟아져나왔고, 그 위로 그녀가 집게로 묶은 종이 덩어리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생각보다 묵직했다.
"읽어볼게요."
선하는 집어든 것을 대충 훑었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 결과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마이크로 블로그와 SNS의 기록, 또 그것들이 언급된 가십 기사 수십 건을 스크랩한 것이었다. 몇몇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 [교주님], [멸망], [새 아침], [새로운], [아침], [끝], [선데이], [모닝 티셔츠], [이변], [91], [이변이 없는], [구원의], [끝], [티셔츠], [이주], [버스], [또 다른], [미친], [세계로], [티켓], [구매], [교주], [이주권], [할인], [이주기금]……. 루스는 딱히 밑줄이나 동그라미를 쳐놓지 않았지만, 눈에 거슬리는 단어가 섞여 있었다.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종이를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이번엔 내용을 주의 깊게 읽기 시작한다. 선하가 선호하는 방식의 자료 정리는 아니었다.
"다 읽었어요?"
"거의요."
"어떻게 생각해?"
어쩐지 한숨부터 나왔다. 루스가 대답을 다그쳤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카페인의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슈거 블루스가 보다 히스테릭한 방법으로 찾아온 것일지도. 하지만 실은, 잊었다고 생각한 옛일을 억지로 상기당했을 뿐이다.
이변이 없는 세계……의 존재 여부를 선하는 이미 알고 있다. 직접 방문하거나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곳으로 이어지는 문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관련 기록은 전부 폐기되었고 아무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것은 특재과 내에서도 극소수였다.
당시 부서의 결정에 루스가 얼마나 분노했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어렵게 기밀로 한 기록이 어디서 새어나간 것이라면 곤란한 것은 선하도 마찬가지였다. 내버려둘 수 없겠단 것까지는 이해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진 알겠네요."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닌데."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보통은 읽기 어려워해요. 점수를 매기자면……."
"닥터 채, 혹시 방탄복 입고 있어?"
"……아뇨. 미안해요."
"스테이지 B."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단어에 대해, 루스가 먼저 말했다.
"이……선데이 모닝이란 곳이 정말로 스테이지 B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면 간과할 수 없어."
"그렇죠……. 무슨 말인지 알아요, 루스."
그리고 일주일이나 잠적했을 만큼 성실히 기본 조사를 해온 편이다. 선하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해봐요."
그래도 바빠질 거라면 채점을 마친 뒤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3.
왜 루스가 국장실에 총을 들고 찾아갔는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정확한 협박 과정은 모르겠지만―알고 싶지도 않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비밀스레 이뤄져야 할 잠입수사에 부서 요원 전원을 쏟아넣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일부 요원들이 신자로 투입되어 있을 동안 부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배로 필요했다.
그 과정을 서포트하기 위해 랩에도 인력이 늘어나야 했단 사실을 통감하고 있었다.
"아. 새 포스터."
요, 하고 애셀이 덧붙이며 손빠르게 내용을 갈무리해 스프레드시트 문서에 입력했다.
세스가 말했던 오프라인 설명회에 대한 포스터는 제각각 장소와 날짜가 일부만 같거나 전혀 다른 버전으로 지금까지 여덟 장 가량이 퍼져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포스터 디자인도 워드로 작성한 듯한 텍스트 문서부터 화려한 이미지를 써서 제작된 것까지 제각각이고, 물론 배포 경로도 다르다. 뒤따르는 말들도 많아 장난으로 조작된 듯한 홍보물 몇 건을 가려내고 나서도 한 가지로 정확한 일시를 좁혀내는 건 불가능했다.
공연용 소극장, 아카데미의 대강당, 호텔의 파티 홀, 해수욕장의 야외 무대…….
지역별로 다양한 장소가 골고루 거론되었고, 장소마다 오전 11시다, 오후 1시를 잘못 쓴 거다, 자정으로 시간이 변경됐다, 취소됐다,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연기되었다, 별의별 말들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설명회의 세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신자는 없었다.
"이번엔 어딘가요?"
마멀레이드 랜드네요. 토요일 11시라고 해요. 하고 장소 정보를 포함한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설명회에 요원 몇 명을 보내보기로 방향을 잡은 시점부터, 신자로 보이는 몇몇 유저들의 계정을 주시하는 선으로 남겨두고 행사 일시와 장소를 파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멀레이드 랜드?"
"마멀레이드 랜드……라면 유원지 아닌가요? 퍼플 포레스트에 있는."
"주변으로 전차 역이 세 개나 지나가네요! 엄청 넓은가보다아."
"이주설명회를 할만한 곳은 아니지만요."
"호수 아카데미 홀이 설명회를 하기엔 나쁘지 않죠. 우리 학회 컨퍼런스도 거기서 자주 하는데……규모가 다르려나. 아, 호출이네요……잠시."
[안녕! 닥터 채. 좀 어때요?]
불과 하루 전에 험상궂은 태도로 브리핑을 떠맡기고 나가버렸던 루스의 전화였다. 귀로 듣기로는 브리핑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진 듯해 선하는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
"혹시 취했어요?"
[아니. 중간보고를 원해요.]
"신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SNS 계정을 주시하고 있어요."
[스토킹하는 거야? 스토킹?]
"……. 아예 관음이라고 말해줘요?"
[건진 것부터 말해요.]
"음, 이주설명회에 대한 건이 있네요."
[괜찮게 들리는데.]
"그렇죠. 일단은 설명회니까,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
[---그래서, 언제 어디로 보내면 되는지만 말해요.]
"그게 아직 확실치가 않아서요, 가짜 정보가 너무 많고……."
[아직?]
"지금은 후보지가 여덟 곳 정도……좁히는 중이긴 한데,"
[××,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
조금 전까지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사람들의 손이 전부 멈춘 걸 봐선 루스의 난폭한 단어 선택이 랩 전체에 들리고 있는 것 같다. 선하는 무심코 눈으로 랩의 출입구 센서를 확인하며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다행히 총알이 날아 들어오는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방탄조끼를 하나 장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선하가 간신히 되물을 용기를 냈다.
[전부 보내면 되잖아.]
"……."
[전부 보내보라고. 하나 정도는 진짜겠지. 우리 증원한 거 잊어버렸어?]
4.
그래서, 파견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선하는 굉장히 축약된 설명을 했다.
"전부 네 곳이네요."
도미닉이 실험대 위에 남아있던 도넛을 하나 집어들어 살펴보며 말했다. 이미 몇몇 요원들은 거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랩의 호출에 불려 온 것은 노쉬와 도미닉, 미연까지 세 명이었다. 세 명씩이나 된다는 것이 선하로선 조금 감격스러울 지경이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기로 한다.
"도넛은 먹어도 돼요. 최대한 추려본 게 그 정도네요. 더 줄이지 못해서 미안해요."
"설마요. 일시가 다르니까, 전부 다녀올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노쉬 씨?"
"문제는 없다."
"아, 이 호텔 근처에 면세점 하나 있지 않아요? 쇼핑하고 싶었는데 잘 됐어요."
"보고는 랩에 하면 되는 건지?"
"그렇게 되겠네요, 랩에서는 무선으로 서포트하도록 할게요. 필요한 장비는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음, 일단 누가 어디로 갈지 나눠야겠네요, 셋이 한 조로 다니는 건 눈에 띄고……."
"아, 잠깐만요……."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잠시 입을 다문다. 요즘은 사람이 없어 거의 하지 않게 됐지만, 랩에 연구원이 많던 시절엔 샘플 수집을 목적으로 함께 파견을 가던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리 위험한 상황도 아니고, 조용히 행사에 다녀오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은 외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입 요원들이 앞으로 더 지루한 일이 많을 이 랩에 일찍 질리지 않았으면 하는, 사적인 바람도 있다.
"혹시, 같이 다녀올래요? 바람 쐴 겸."
선하는 니나와 애셀을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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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파티 미션. 루시느님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이 로그는 오천자를 넘겼습니다 흑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