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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Lovely Crack





 사실, 토리 헤더웨이의 타임라인에 닉 니나버란 남자는 '니나버 씨'이기 이전에 '닉, 핑크머리 쪽의'였던 기간이 있다. 그건 고등학교 시절에 일어났던 이변 이후, 진로를 바꾸게 되면서 줄곧 SDMD의 사람들을 미래의 선배로 생각해온 탓이 크다. 정작 이변 당시 니나버의 얼굴은 본 적도 없으면서――그는 다른 사건을 맡고 있었다.
 몇 번 이름을 들어본 듯하니까.
 랩 요원들이 수년 전에 그를 그런 식으로 언급했던 사실을 기억하니까.
 헤더웨이가 잃어버렸던 그 MP3P를 찾아낸 것이 그라고 들었으니까.

 입사 후 이런 이런 시니어 요원도 우리 과 소속이지만 건강 문제로 휴직중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엔 무심코 아 '닉 씨, 핑크머리 쪽의…….' 하고 아는 척을 할 뻔 했다. 소리 내 말했다면 틀림없이 부끄러운 일화가 됐을 것이다.
 얼굴도 그 때까지 몰랐던 사람을 두고, 멋대로 아는 사람이라 믿어버리다니.
 브라운관 속의 연예인을 친근히 여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터무니없었다.

 반성하는 바지만,
 좋게 말하자면 니나버의 복직은 헤더웨이에게 기다려지던 일이기도 했다.

 "잘 먹겠습니다, 니나버 씨."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호칭은 니나버 씨.
 사인을 받고 싶은 건 아니지만, 헤더웨이 안의 티브이-스타는 여전히 핑크빛 금발을 고수하고 있었다. 사진보다 훨씬 여윈 것 같았지만, 직접 만나보니 인상보다 훨씬 유쾌하고 느슨한 선배였다. 임무에 들어가기 전에 알게 됐으니 반가워할 일이다. 헤더웨이는 새삼 이스트클리프가 벌인 회식 장려 정책에 감사하게 되었다.
 ……꼭 법인카드 때문만은 아니고.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메뉴요. 정말 파스타로 하실 줄은……."
 "크림 파스타가 왜?"

 그러니까 모쪼록, 법인카드로 긁는 건데……라고 물으려던 건 아니었다.

 "아뇨, 괜찮으시면 괜찮지만요."
 "괜찮지 그럼~ 먹어, 먹어."
 
 "네, 드세요."

 본부 빌딩과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마침 헤더웨이도 한 번쯤 들어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유행하는 가요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부드러운 조명이 떨어지고, 이 안의 누구도 바깥 세상의 절망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평화롭고 안일한 공간. 듬성듬성 채워진 테이블마다 웃는 얼굴의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냥 파스타, 라는 메뉴는 물론 없었지만 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대화의 안주로 무난한 메뉴였다.
 니나버를 따라 제 몫의 접시를 핸드폰 갤러리에 담아보곤, 그 무엇도 함께 입 안에 넣는다.

 "짜란~"
 
 니나버는 자기 아이라도 자랑하듯 흐뭇한 얼굴이다. 헤더웨이도 몸을 조금 내밀어 핸드폰 속의 아이를 들여다본다. 뺨이 발간 아이가 빨간 풍선을 들고 웃고 있었다. 그의 마른 손가락이 사진을 넘겨주었다. 작은 줄무늬 양말, 크리스마스 트리, 창 밖의 눈을 구경하는 눈, 유아용 스푼을 한 손에 움켜쥔 손. 아이가 감자 샐러드를 퍼먹는 홈비디오를 엿보듯 구경하며, 그 가족의 대담한 행복에 대해 잠시 가늠해본다.

 이 작은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정말 귀여워요. 몇 살이에요?"

 몇 살까지나, 살 수 있을까?
 꼬마 토리처럼 무사히 스무 살이 될 수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감상 중에 말로 뱉어서 실례되지 않는 것은 많지 않았다.  

 언제부터 아이 사진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을까,
 헤더웨이는 뇌내 어딘가의 미세한 균열을 느꼈다.

 평소엔 정성껏 악물고 있어 알 수 없다가도, 순간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부서지고 틀려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될 때가 있다. 분명 그건 이 세상이 부서지고 뒤틀리고 있어서일 테지만, 헤더웨이는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합리화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니 세상이 아닌 자신이 염세적인 것이라 믿어본다.

 아직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 세상이다.
 더 힘을 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기로 한다.

 "이 험한 세상에 용케도 이런 귀여운 게 태어난다~ 그치?"
 니나버가 얼굴을 찡그리듯 웃었다. 

 "그러게요."
 한순간 깊이 공감했지만, 헤더웨이는 말을 아끼는 대신으로 미소지었다.



 "영수증 챙겨야지."
 "여기요. 영수증만 제출하면 되는 거죠?"

 한번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하자 굳이 음식을 안주 삼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프로필 사진에 대해 묻자 니나버는 애완견의 사진을 몇 장 더 보여주었고―이렇게 아는 닉이 또 하나 늘어났다―, 로테스트 치프가 키우는 개의 건강이나 휴게실의 산세베리아에 대한 공통 화제도 금방 찾아냈다. MP3 플레이어를 테이블 위로 꺼냈을 땐 반가운 표정이 돌아왔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주인한테 갔구나. 아직 안 망가졌어? 네, 아직. 조심해서 쓰고 있어요. 찾아주신 거 니나버 씨라고 들었는데 인사도 못 드렸네요. 내가? 글쎄, 다 같이 찾은 거지.

 평화롭고 안일한……,
 달리 말하자면, 평온하고 안녕한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호출이 들어오는 바람에 레스토랑 쪽의 식후 차는 거절했다. 대신 본부로 돌아가는 길에 따뜻한 음료를 한 잔씩 나눠들었다. 남의 돈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음료 정도는 제가 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며칠째 흐렸던 탓인지, 눈이 내린 건 지난 주인데도 아직 녹지 않은 곳이 있다. 건널목의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헤더웨이는 보도블록 모서리에 남은 눈을 바라보며 말할 수 없었던 감상에 대해 천천히 다듬어봤다.
 잠깐 사이, 훨씬 말할 수 있는 형태로 변해있었다.
 
 "저도 애기 갖고 싶다. 저렇게 귀여운 애기 있으면 지금보다 열심히 살게 될 것 같아요."
 "토리, 발언이 좀 위험하다?"

 "헤헤, 그런가요?"

 니나버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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