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금요일 오후도 어느새 전부 흘러가버렸다. 헤더웨이는 자리를 비운 치프를 대신해 그녀의 책상을 물티슈로 닦고 있었다. 그녀, 루스 로테스트는 하루에 30분 정도 수사국을 '방문'했고, 서류 몇 장에 서명을 하고 나면 곧장 그 곳을 떠나버리곤 했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말단 뉴비 요원에게 주어질 일은 아니었지만 헤더웨이는 기꺼이 빈 사무실을 청소하곤 했다. 해가 빠지고 있었다.
괜찮아요. 금요일 저녁이니, 어디 술이라도 마시러 간 거면 좋을텐데요. 채 박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곤 했고 헤더웨이도 그럴지도요---하고 대답했지만, 사실 두 사람 모두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모른다. 헤더웨이의 경우, 그녀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 조금 신경쓰일 뿐이다.
"헤더웨이 군은 퇴근 안 해요? 오늘 같은 날은 일찍 들어가도 괜찮을텐데. 루시도 없고. 파견도 없을테고."
"저도 들어가야죠. 박사님은요?"
그는 얇은 파일철을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내용물을 치프에게 보여주고자 찾아온 것 같았다. 헛걸음에 익숙해진듯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가 가져온 파일철을 책상 한가운데에 내려놓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헤더웨이는 형식적인 질문을 돌렸다. 박사가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가 펴며 옅은 미소를 만들었다.
"검토해야 할 텍스트가 좀 있어서. 오늘은 조금 늦어질 것 같네요."
"아.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고마워요. 그런데 괜찮아요."
형식적인 말에 형식적인 말을 돌려받는다. 대화를 마친 것 같아서 먼저 사무실을 나가는 게 좋을까 생각하는데, 박사가 맞아, 헤더웨이 군, 하고 불러세운다. 눈을 돌리자 그가 호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이거 가져갈래요? 구겨진 메모지와 플라스틱 빨대, 사용 전인 종이 티백 같은 것들 사이에서 여러 겹으로 돌돌 말린 영수증이 나왔다. 다시 보니 뭔가의 공연 티켓 같았다. 그가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마크가 한 쪽에 붙어있었다.
"학생들이 자선 공연을 한대서 몇 장 사긴 했는데, 아무래도 갈 시간이 안 날 것 같아서."
시간이……. 하고 말하는 그의 눈이 조금 난처해보였다. 아마 시간이 아니라 다른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지만, 헤더웨이는 박사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잘 몰랐기에 굳이 캐묻거나 넘겨짚지 않았다. 티켓은 두 장이었다. 게다가 오늘 날짜였다.
"이번 증원에 랩도 손이 늘어나면 좋겠네요. 티켓은 감사합니다."
일단 그의 오랜 오버워크에 유감을 표해보며, 헤더웨이는 잠자코 티켓을 받아들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정이 됐지만, 같이 갈 사람은 어떻게든 구해보기로 한다.
"랩에 머릿수가 많아져봤자 고생하는 건 군들일텐데요. 바쁘죠?"
늘 필드 요원들을 '바쁘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안부를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해지지만 말이다.
헤더웨이가 웃어넘기는 동안 박사는 작은 메모지를 여러 번 접고 있었다. 그의 눈이 치프의 책상 한 쪽에 놓여있는 서류들에 닿아있었다. 내용을 열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이번에 영입하기로 한 요원들과 관련된 인사 서류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우리 과, 손이 부족했던 기간이 길어요. 박사가 말했다. 들었어요. (지금도 손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대답하자 박사는 접은 메모지를 입술로 물며 말을 이었다. 담배라도 피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그걸 그냥 질겅거릴 뿐이다. 사람이 적은 것도 나름은 장점이 있어요. 일할 때 조용하다든지, 내가 시끄럽게 해도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든지.
랩을 내 방처럼 쓸 수 있다든지.
어라.
"혹시 랩에서 혼자 춤추고 계신 거 아니에요? 전부 퇴근하면."
"응, 들켰나? 어떻게 알았지?"
박사가 모처럼 웃었다.
정말 춤을 추거나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제 농담에 그의 기분이 환기된 것처럼 보여 만족한다. 랩으로 돌아가는 그의 등을 헤더웨이는 눈으로 배웅했다.
이 부서에 보다 활기가 있던 시절에 대해 헤더웨이는 아주 어렴풋이만 알고 있다. 고등학생이었던 토리 헤더웨이는 말하자면 피해자 입장이었고, 갑작스런 이변에 갇혀 어쩔 줄 모르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 때에 이 사람들이 구하러 와주지 않았다면, 헤더웨이가 만난 곤란한 재난이 착각이나 환상, 혼자만의 망상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구체적인 모습까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아마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세기말의 분위기에 휩쓸려 데스메탈에 빠졌을지도(잠깐, 이 삶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요즈음은 너무 많은 재난이 공기 중에 섞여있지만,
그 사실이 헤더웨이에게 구원 같았던 순간을 퇴색시키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치프의 방침에 따라 주말에는 쉰다. 하지만 다음 주에는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닐 것이다. 이 걸음 걸음을 함께할 사람들과 또 만나게 될 것이다. 기대되는 일이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헤더웨이는 서류더미에 대고 미리 인사를 중얼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