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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천둥번개를 동반한 눈보라, 이후 폭염주의보




 1.

 시티는 침묵에 잠겨있었다. 아마 눈이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눈이 소리를 덮어버렸기 때문이야.’ 선하의 세계가 아직 건강하던 시절, 기숙사의 룸메이트가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쌓인 눈은 입자 사이에 틈이 많아서 흡음률이 높거든. 거의 유리솜 수준이지. 흡음률이라는 건 소리의 주파수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도시의 소음은…….’ 석사생이었던 선하를 무슨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대하듯 할 때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아이 취급에 어울리게도, 선하는 오래된 크리스마스 캐롤의 한 소절을 떠올리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Silent night, holy night…….
 겨울 특유의 부연 눈빛雪光이 2인실의 작은 창문까지 쌓여있었다. 선하는 그와 조금 더 한담을 나누며 내일의 실험 걱정을 하다가 어느새 잠들었다.
 모두가 죽은 듯 고요한 순간이었다.
 눈이 내릴 때면 선하가 떠올리게 되는 마지막 평화의 순간이었다.

 “…….”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은 감히 하지 않지만,

 아마,
 이변을 즉각즉각 감지하는 특수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쯤 그 내지 그녀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선하는 2주째 계속되는 일기예지Weather Foresight의 페널티에 시달리다 결국 병가를 냈다. 시티의 날씨는 끔찍했다가 환상적이었다가 우박이 쏟아지길 반복했고, 익스트림한 기상이변으로 하여금 페널티인 우울과 불안 증세 역시 혹독해졌다. 선하는 일에 몰두하며 그것들을 떨쳐내려다 결국 녹다운되었다. 자료실에 숨어 코가 헐 때까지 울고 더 이상 글자를 읽을 수 없게 됐을 즈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일은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무마했다. 무마해버렸다.

 말인 즉, 무슨 일이 있었긴 했다.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기로 한, 별일까지는 되지도 않는 대단찮은 일이. 얼마나 대단찮은 일이면, 세계Stage 하나를 구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히어로였을까.
 그 선택은 최선最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대답할 수 없는 의문은 오래 갖지 않는 편이 좋았다. 선하 대신 정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도, 선하가 납득하고 편해질 수 있는 정답도 없었다. 선하는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다시 조금 울었다……이유도 없이 울고 싶은 기분은 선하의 주위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선하는 그 기분을 잘 갈무리할 수 없다.
 습관처럼 머리맡에 뒀던 티슈에 손을 뻗었지만 그새 한 통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손등으로 눈을 몇 번 문질렀더니 찍찍하고 이상한 소리만 났다.  온 몸의 수분을 눈으로 짜내고 있는 기분이 들어, 나중에는 정수기로 기어가 물을 마셔가며 울기도 했다.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았던 지라 마셔도 되는 물인지는 의문이었지만, 탈수로 쓰러지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울고, 물을 마시고, 훌쩍이고,
 홀짝이고, 물을 흘리고, 졸고……. 며칠째 아무 생각 없이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건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든다.
 피로를 실감한다.
 


 2.

 중앙수사국 CBI는 요원 하나가 사망하는 것 정도로 휘청거릴 기관이 아니었다. 물론 죽은 이는 보통 요원이 아니었고 심지어 부국장副局長 중 하나였지만, 중요한 자리인만큼 더욱 빠르게 후임이 정해졌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뤄졌고, 식이 있던 다음 날, 수사국은 5분 정도 모든 불을 끈 채 잠시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일은 오후부터 진눈깨비…….)
 (묵념하듯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 때 뇌내로 새로운 날씨 정보가 끼어들었고, 내일은 우산을 꺼내둬야겠네 생각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불이 켜졌을 땐 자연스럽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마 그 전설의 ‘하이디 진’이 아니었다면 그런 찰나의 정적도 없었을 것이다.
곧 그런 일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잘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선하가 속한 특수재난관리과Special Disaster Management Division도 어찌됐든 수사국의 부분집합이었다. 애초 인원교체가 잦고 고질적으로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부서였으므로, 한 사람 정도 갑자기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부서의 업무가 마비되지 않도록 타임 테이블이 잘 짜여 있었다.
 자리를 비운 한 사람이 특재과의 부서장, 그 전설의 진 치프였지만.
 특재과마저도 그랬다.

 정말로 일상은 빠르게 돌아와버렸다.
 선하에게는 그 습관적인 날씨 안내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결국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고 있었다. 조금 냉정하게까지 느껴졌다.

 이변이 없는 평행 세계Stage를 발견하고 그것을 영영 비밀로 삼자는 믿기기 어려운 결론을 내리고도, 사람을 잃고도, 일할 사람이 떠난다고 해서 그 일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선하는 선하의 바쁨에 모처럼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선하만은 아니었는지, 2반의 맥플러리 교수는 장례식 이후 적지 않은 수의 사직서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전부 수리되자 그 역시 사임한 뒤 대학으로 돌아갔다. 애초 그 노인을 실무 현장에 남아있도록 설득한 것이 하이디 진이기 때문에, 그를 원망하거나 붙잡을 사람이 없었다. 1반의 루스 반장은 한동안 쫓기듯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거의 걸레질에 가까웠다--에만 몰두했다. 한 비서와 맥플러리 교수 모두가 사임한 관계로, 부서의 수습을 맡을 사람이 그녀 말고는 없었다.

 시티는 며칠간 눈비를 찔끔찔끔 쏟았다. 깨끗하게 녹아 없어지지도 새하얗게 얼어붙지도 못하고 새카맣게 질척질척해졌다. 선하는 꼬깃꼬깃해질 때까지 접은 포스트잇을 씹어가며 페널티를 견뎠지만, 눈은 7일이 넘게 내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볕이 들다가도 천둥 번개로 하늘이 번쩍거렸다. 선하는 내색하지 않은 채 일에 몰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 비서가 이공간異空間에 꾸역꾸역 모아왔던 하이디 진의 업적 자료들을 디지털로 스캔하고 분류하는 일이었다. 선하가 우울하든 우울하지 않든 부서는 그대로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자료서고에 틀어박혀 선하는 오래된 신문 기사들을 읽었다. 언제부턴가 신문 위로 얼룩이 뚝뚝 번지기 시작했다.

 --아, 그렇다. 아무리 열심히 손과 이로 짓씹고 접어봐도 포스트잇을 일곱 번 이상 접을 순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다.
 아니면 그냥 내일 내릴 예정인 여우비가 선하를 슬프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선하가 이 손을 멈추더라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미래가 끔찍했을지도 모른다.

 표면적인 업무만 카세트테이프처럼 순조로이 감겼다 풀렸다를 반복했을 뿐, 모두가 엉망진창이었다. 모두가 그런 별 일 아닌 일로 상처입었다.
 평소와 완전히 같을 리는 없었다.



 3.

 “아.”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침대에 있었다. 어떻게 기어 올라갔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올라가자마자 혼절한 것은 분명했다. 체온이 떨어진 것을 깨닫고 선하는 더운 물에 몸을 씻기로 결심했다.
 결심만 하고 몸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이 욕실에서 몸을 씻은 적이 없었다. 거의 퇴근하지 않는 바람에, 샴푸도 하나 구비해놓지 않았다. 선하는 온수 대신 이불 무덤 속에 파묻히는 쪽을 선택했다. 이불 밑에는 꼭 선하 한 사람만큼의 체온만이 미약하게 남아있었다. 선하는 몸을 벌벌 떨면서 팔을 끌어안았다. 열심히 부벼볼 힘은 없었다.
 이럴 때 핸드폰은 또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

 루스는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선하가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해 서고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들린 소식이었다). 사무실 벽에 권총을 난사했다나, 랩탑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침착하게 액정을 쏴버렸다나……. 어느 쪽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녀의 히스테릭한 태도가 문제되고 있었던 것은 맞다. 상세한 진단명은 모르더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다.
 선하는 막연히, 그 다음 순서는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기분부전이 페널티인 이상 기분을 다스리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하라도, 이 페널티가 장기간 지속되어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머지않아 곧 위기감을 느끼고 핸드폰을 찾게 될 지 모른다. 콜택시를 불러 곧장 가까운 정신과로 달려가겠지. 아니, 어쩌면 911을 부르는 편이 효율적인 상황까지 올지도…….
 이대로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너무 과학적이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선하는 제법 자조적인 시나리오 분석을 마친 와중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것에 겨우 한숨을 쉬었다. 병가는 글자 그대로 병가였다. 선하는 우울에 앓아 누워있었다. '그것'은 병처럼, 악화되기도 호전되기도 하면서 선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우울……했다.
 당연히 불안했다.
 
 이대로 세계가 병든 채 낫지 않는다면…….
 선하의 '병' 역시 영영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처음 능력이 발현했을 때부터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4.

 병이라고 한들 ‘병이네요!’ 하고 감히 진단할 사람은 없겠지만, 이 세계가 조금 이상해졌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세상이 말세라며 혀를 쯧쯧 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그림 속의 구름이 흐르거나, 야외 수영장의 물이 갑자기 푸딩으로 변하거나, 10층짜리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11층 버튼이 생기기도 했다. 선하는 자수 속의 나비가 날아오르거나 금붕어가 새처럼 노래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다. 축구장의 잔디가 전부 네잎 클로버로 변해버린 일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지만 달력의 계절은 한여름이다.

 늘 그런 귀여운 장난 같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이변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일도 있다.

 특수재난관리과는 그런 이상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요원들로 구성된 부국장 직속 부서였다. 이변으로 의심되는 사건에 대해 파견을 나가고,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한 뒤, 이변으로 판정되거든 원인을 분석해 제거하거나 다른 대응 방침을 정하는 식으로 사건을 해결해왔다.
 그러니까 그 데이터베이스 말이다.
 병가 신청서를 작성할 때 선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택시를 타고 직원 아파트로 향하는 동안에는 달리아를 생각했다. <달리아>는 미혼인 선하가 만든 몇 안 되는 자식이었다. 특수재난 내지 이변이라 불리는 사건들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넣은 DB로, 구축부터 데이터 수집, 유지 관리에 이르기까지 선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치기로 한 일.
 그러니까, 이런 이상하고 기묘한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 평행 세계가 저 너머에 있고, 그 곳의 선하는 내일의 날씨를 일기예보로 확인하고, 정말로 우울할 때에만 우울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리란 사실을,
 감히 모른 척 하기로 한 것이다. 

 화가 나는 건 아니다. 어차피 선하가 밤새 <달리아>에 새 데이터를 입력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오거나, 죽을 사람을 구하게 되거나, 세계의 이변이 봄눈처럼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늘 위험한 특수능력을 사용하고 페널티를 감수하는 요원들이 있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던, 신념과 긍지를 가진 히어로들이 있었다.
 그 요원들에겐 스테이지를 잘못 태어난 죄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선하들이 닫아버린 반대편 세계의 그들은 이변이 뭔지, 특수능력이 뭔지 영영 고민하지 않은 채 나름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그 세계에서.
 그러니 조금은 억울함을 느껴도 괜찮을 것이다.

 그 세계와 통하는 문을 닫고 관련 기록을 전부 폐기한 것은 교수를 비롯한 랩 요원들이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다. 분명 어떤 관점에서는 그것이 한 세계Stage를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데에, 선하도 이의가 없다.
 하지만 그 일을 전부 끝내버렸다는 건.
 선하를 부르는 사람도, 선하를 원하는 사람도, 선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까. 그게 선하의 일이었으니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적인 근거는 없지만, 과학적인 증거도 없지만, 그랬다. 선하는 당장 누구에게 연락해야 이 터무니없는 가설을 반증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아주……무서운 가설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

 선하는 감히 입증을 시도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사라져도 되는 인간인지 같은 걸 알려 드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이미 말한 적이 있지만, 대답할 수 없는 의문은 오래 갖지 않는 편이 좋았다. 선하 대신 정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도, 선하가 납득하고 편해질 수 있는 정답도 없으니까. 그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둬야 했다.
 최대한 빨리, 그만두기로 한다.



 5.

 선하가 매일 매일 먹혀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엔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그 다음 날엔 날이 개일 예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깨닫기도 전에, 그냥 알게 된다! 그건 선하의 쓸모없는 특수능력이었다! 그리고 아마 특별히 이변적인 이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날은 눈보라가 치고 있었지만 선하는 오랜만에 머릿속이 맑아진 것을 느꼈다. 문득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탈진 직전이었던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대로 다시 자고 일어났더니 맑은 날은 꼬박 지나가있고, 도로 우박이 내리고 있었다. 선하는 큰 소리로 웃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미칠 듯한 허기가 선하의 뱃속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놀랍게도 선하는 정수기 옆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발치에는 방전 직전의 상태인 핸드폰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찾을 땐 보이지도 않더니.

 이런 일을 두고 이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계가 병들고 망가져서, 이 세계가 불량품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거기까진 알 수 없지만, 선하는 핸드폰을 들어 콜택시가 아닌 피자집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신호음을 들으면서 핸드폰 충전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점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너무 오랜만에 소리를 낸 탓인지 생각보다 힘겹게 목소리가 짜여나온다.

 “피자○이죠, 야채 피자 한 판……라지로 배달받고 싶은데 카드 결제 될까요. 여기가 어디냐면…….”
 목이 뻑뻑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6.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떠올리는 것만으로 잠시 애틋한 기분이 드는 시절이 있다고 해도, 그 때의 선하가 행복하게 그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서글프고 괴로운 기분이 전부 날씨를 예지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하는 이 세계가 슬펐다.
 
 망가지고 병들어가는 세계가……, 그런 세계의 신음소리를 엿듣는 듯한 기분이 괴로웠다. 선하가 사랑하고, 선하가 살아있는 이 곳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것이 우울하고, 그 때문에 불안했다.
 하지만 죽은 것에게는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다.

 선하가 아는 것은, 선하가 이미 그 병에 사로잡혀, 그 병이 없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매일,
 내일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미리 엿보고,
 혹여나 그 하늘과 눈이 마주칠까 지붕 밑에 숨어사는 인간이.

 그렇다 해도 선하는 이 세계와 함께 아직 살아있고,
 쓸모나 필요와는 무관하게 살아있고,
 아직은 무사하므로,
 어떻게 해서든 살아있음을 신음하여 증명할 수 있었다.

 아아.
 ……내일부터는 다시 더울 예정이다.





In Community SPEDIS : Season 1 End
채 선하 박사 개인 엔딩 겸 5회 오리온 배포본 전문.

개인엔딩을 로그로 써본 건 이번이 세번째다. 스페디스는 엔딩을 맞은 커뮤 중에 제일 기간이 길었던 곳인데, 그래서인지 마무리하는 내내 힘이 많이 들었다. 현자타임이라고 해야하나... 엔딩 정황상 선하도 비슷한 감각을 깊게 느끼고 있었을 것 같다. 겸사겸사 기상이변으로 컨디션을 악화시키고 한참 앓고 일어나게 해보았다.
한참 울다가 자고 일어나서 황폐한 허기를 느끼는 모습을 좀 더 공들여 묘사하고 싶었지만 마감이란 것이...
계획한 다른 마감이 함께 있었는데 결국 그 책은 펑크를 내서, 이거라도 가지고 가야 했었다...(mm )
이 때는 시즌2 계획이 전혀 없었던지라 지금 생각하면 너무 희망적인 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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