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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Talk, to Santa Claus




 1.

 치프 하이디 진에 대해 선하가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요원 출신의 여성 부국장이라는 것, 그녀가 혼자 힘으로 해결해버린 사건이 전설적인 수준으로 많다는 것―대부분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특수능력은 그 어떤 이변보다도 이변적이었으니―, 그러나 현재는 페널티로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 그 이후 저 문 너머에서 칩거하며 사람을... 적어도 선하를 face-to-face로 만나지는 않는다는 것. 그 정도일까.

 "치프께서요?"
 "네,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치프 하이디 진은 요원 채 선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뇨, 고마워요."

 잠시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선하는 일단 미소하며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인센티브라고 해봤자 어차피 선하는 돈을 쓸 시간이 없었으므로, 쓰는 것보다는 많이 벌었다. 어차피 초밥을 몇 번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로 나눌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성적표를 받는 기분으로 짐작만 해볼 뿐이었고, 이번 분기에도 선하가 짐작한 정도보다 조금 더 후한―약간의 연말 보너스가 붙은 듯 했다―금액이 책정되었다. 그보다는, 내역을 확인하고 서명이나 하러 들린 자리에서 꺼내진 선물이 오히려 의외였다.

 어릴 적부터 산타는 믿은 적이 없었건만, 얼굴도 본 적 없는 전설적 존재가 선물을 나눠주다니…….
 안에 든 물건이 무얼지 짐작도 가지 않았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

 ……음.

 투시능력도 예지능력도 없는 보통의 사람에게 선물이란 건 보통 뜯기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뜯고 나서도 무엇인지 몰라 한참을 살펴봐야 할 줄은 몰랐다. 무게에 비해 부피가 제법 크다고 생각했더니, 부드럽고 따스한 촉감의 물건들이 상자 안에 차곡차곡 눌러담겨 있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커다란 곰발바닥 모양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얀색이니 백곰의 것을 흉내낸 것이 아닐까. 모양은 그랬지만 용도를 모르겠다. USB 포트가 붙은 물건이 있어 PC에 연결해봤지만 새 장치로 인식해주진 않는 듯 했고, 발바닥의 바닥에는 고무가 붙어있다. 처음엔 양말과 슬리퍼가 같이 들어있었으니―아마, 치프에겐 누군가 그 박사는 늘 맨발로 일하더란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이것도 신발의 일종이 아닐까 추측해봤지만, 한 짝 뿐인데다 너무 커서 선하의 발 사이즈와도 맞지 않았다. 구멍이 뚫려있으니 베개도 아닐테고, 주머니도 아니고…….

 "선하, 뭐해?"

 선하가 핫팩을 흔들면서 고민에 빠져있을 때, 한 줄기 빛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서린, 이게 뭔지 모르겠어서요."
 "아, 이거?"

 미스 브라이트의 친절한 2분 강의가 있은 뒤에야 선하는 온열패드와 핫팩을 쿠션 안에 바르게 끼워넣고 그 안에 발을 밀어넣어 볼 수 있었다. 양발이 비좁게 맞붙은 채 후끈한 열에 감싸였다.

 "음……. 따뜻……하네요."

 앞이 막힌 신발은 오랜만이다. 약간 갑갑했지만 일단 감상은 긍정적으로 해본다.

 "그런 용도의 물건이니까. 선물받은 거야?"
 "네. 캐서린은?"
 "응?"
 "치프의 선물 이야긴데."

 ……그러니까 아마, 치프에겐 누군가가 그 박사는 늘 맨발로 일하더란 이야기를 했을지도(2).
 하지만 수사국의 빌딩은 대개 쾌적한 실내온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출퇴근을 거의 하지 않는 선하의 옷차림이 특별히 겨울이라고 해서 무거워질 필요는 없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지낸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을텐데. 산타에게 발의 건강을 동정받은 모양이라며, 선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직 이번 인센티브 확인 안했죠? 비서실에 가 봐요."
 "와, 나 다녀올게!"
 "지금?"
 "...음, 지금!"

 다녀와요, 선하는 조신하게 무릎을 붙인 채―어디까지나 쿠션 때문이다―손을 흔들었다.



 3.

 맨발인 편이 편하지 않나요. 발이 따뜻하면 괜히 잠이 오니까.
 허리 위로는 넥타이로 목까지 조이며 늘 와이셔츠 차림을 고수하고 있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책상 뒤에선 한껏 집처럼 있고 싶다는 것이 선하의 쓸데없는 주장이었다. 이제 와서 몇 시간 동안 양말과 운동화……아니 아마도 구두가 되겠지. 이제 와서 구두 속에 발을 조여놓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랩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감사할 따름이다(대신 신발을 신어야하는 곳은 9-6 정시퇴근이겠지만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말은 그랬지만, 차가운 고무 슬리퍼보다야 부드러운 털 슬리퍼의 촉감이 좋은 계절이란 건 인정해야겠다. 선하는 토끼귀가 달린 슬리퍼를 꿰어 신고 휴게실로 나왔다. 일전의 금붕어는 얼마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선하를 맞이한 건 크리스마스 풍의 장식이 매달린 미니 트리와 텅 빈 수조 뿐이었다. 트리에 얽혀있는 꼬마 전구들이 반짝거리고 있어, 제법 형식적인 계절감이 느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캐롤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슬리퍼가 흰색이라 커피를 흘리면 얼룩 토끼가 되겠지 하고 주의하게 된다.

 선하는 이미 누군가가 내려놓은 커피를 종이컵에 조금 옮겨담아 소파에 앉았다. 평소라면 클린트가 낮잠을 자거나 신이 커피를 마시거나, 란씽이 뜨개질이나 자수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이 외롭지는 않았지만 말상대가 없는 것은 조금 심심했다. 이 순간 이 세상에 한가한 사람은 선하 하나 뿐인 게 아닐까……하지만 랩에 돌아가면 얼마든지 다시 일이 생길 것이다. 5분 정도 게으름을 피운다고 해서 선하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시온에게 부탁해야 하는 번역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사탕이 있었지.
 별무늬의 뚜껑이 인상적인 사탕 단지는, 처음 등장했을 때보단 양이 줄었지만 바닥이 났다가 다시 차올랐다가 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선하도 오늘 맥플러리와 마주쳤을 때 받은 사탕 몇 개가 생각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다른 것이 함께 끌려 올라왔다.

 Happy new year. 그리고 서명.
 하얀 카드봉투 안의 내용은 아주 간결했다. 서명의 모양만은 복잡하지만 얼핏 하이디 진으로 읽힐 수 있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주머니 속에서 며칠 구른 덕분에 조금 휘어져 있었지만 내용은 처음 열어봤을 때와 크게 다름이 없다. 선하는 그것을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함께 들어있던 백지로 눈을 돌렸다. 트리 밑에 왠지 그 종이를 넣으면 꼭 좋을 법한 크기의 홈이 파인 우체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주쳤을 때 맥플러리가 말하기론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보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으니……보통 우체통은 아닐 것이고, 소원 수리함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읽는 사람이 누굴지는 추리해봤자 소용이 없다. 차라리 치프라면 선하에게 다시 털 슬리퍼 같은 것을 사주는 일은 없겠지. 선하는 커피 막대로 커피를 꾹꾹 눌러다가 물자국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산타는 여전히 믿지 않지만, 어차피 익명이라면 어떤가 싶다.


 [당신은 한 번도 이변이었던 적이 없죠. 선물 고마워요, 산타.]

 지금 선하의 발이 따뜻한 것은 그 어떤 이변의 탓도 아닌 것이다.



 4.

 '우리도, 이변이야?'
 
 언젠가―아마, 아직 맨발이 이상하지 않을 계절이었을 것이다―에, 캐서린이 그렇게 물었었다.

 그 때는 닥터 채의 2분 강의, 아니 2분 임기응변으로 그녀를 안심시켰지만, 사실 어떤 이능력자는 제거되어야 할 이변으로 취급되었었다. 그의 능력은 그가 제어할 수 없는 재난이었고 한 도시를 패닉에 빠뜨렸으며 많은 사람을 죽였다……. 선하는 선하와 캐서린이 동시에 알고 있는, 가장 모범적으로 능력을 운용하고 높은 랭크를 갖고 있는 특수능력자 둘의 예를 들 수 있었던 당시의 순발력을 아직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녀의 의문은 선하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선하가 특수능력에 대해 정확히 말하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선하의 능력에는 스위치랄 것이 없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을 멈추면 그것은 어김없이 선하의 머릿 속에 끼어들어, 내일의 하늘에 대한 비밀을 흘려넣는 것이다. 선하는 그것을 듣거나 보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결국 그것을 알게 될 수 밖에 없다. 선하가 궁금해하는 것이 먼저인지, 선하가 알게 되는 것이 먼저인지 선하는 구분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선하의 능력이 아니라 이변이라고 봐야하는 게 아닐까. 선하의 것이 그렇다면 저 능력은? 그 능력은? 저 사람의 그 이능력은? 애초 어디까지가 이변이고 어디까지가 특수능력인 것일까.
 이변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면, 선하의 그것도 없어져야 할까.

 그렇다면 선하도 없어져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다.

 기준도, 답도, 알려진 관습도 없다.
 하지만 그 능력―혹은, 이변―은 이미 선하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선하는 이제 내일의 날씨 없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선하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불안하게 하는 것도 그것이지만, 한편으론 선하가 안심하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그것 덕분인 것이다……. 선하가 알고 있는 힌트는, 고민해서 없앨 수 없는 고민이라면 한켠으로 미뤄두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누군가와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으면서.

 기회가 된다면 털어놓고 상담할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의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오늘의 선하는 그것을 비밀로 해둘 생각이었으니까.


 "펜으로 쓸 걸 잘못했나?"

 선하는 거의 식별하기 어려워진 커피 얼룩을 잠시 불빛에 비춰봤다가, 얼룩을 향해 미소했다가, 반으로 접어 상자 안에 넣었다.
 톡,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In Community SPEDIS : Event 5
이벤트를 늘 쓰려던 글로 기워다가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제목은 마지막 줄과 함께 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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