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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Another gray day in the big blue world




 어떤 화가가 벽화로 용 두 마리를 그렸다. 모두가 그 화룡(畵龍)의 생생함을 칭찬했으나 그 용에게는 어쩐지 눈동자가 없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화가는 눈을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갈 것이라 대답했다. 사람들이 믿지 않고 독촉하자 화가는 용 한 마리의 눈동자를 그려넣었다. 그러자 정말 그림 속의 용이 벽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엇……."

 사실 선하는 그 고사가 주는 교훈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마 현장 요원 중 누군가―어쩌면 란씽이었을지도 모른다.―가 파견되어 기본 수사절차를 밟고 남은 물감 시료를 수집해 돌아왔겠지. 란씽의 푸른 수접(繡蝶)은 분명 그 고사와 같은 듯, 다른 듯, 손 안의 천에서 튀어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뭔가 한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선하는 자연스레 나비를 수놓은 란씽에게 눈을 돌렸다. 란씽은 오히려 선하에게 영문을 묻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이. 그런 속임수는 쓰지 않는다, 쓸 수도 없거니와. 플레잉 카드를 셔플할 때처럼 가끔 하듯 손바닥을 보여 보았다.

 사실 이변은 늘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따금은 아무런 해도 되지 않기에, 선하와 란씽은 잠시 손을 멈추고 나비의 우아한 비행을 감상했다.




 "란씽 씨 솜씨가 좋아서가 아닐까요? 혼신을 담은 작품이었다던가……."
 "아니. 보통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날고 있는 것도 보통의"

 --평범한 나비인 게 아닐까요. 라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나비가……."

 수채 물감이 물에 번지듯, 란씽의 나비가 수조 끝에 올라앉는 순간 금붕어들의 비늘 위로 푸른 빛이 옮아붙기 시작했다. 애초 오렌지색 지느러미를 한들거리고 있던 금붕어 두 마리는 어느새 하늘색이 되어 있다. 선하는 눈을 멍청히 깜빡거렸다. 애초 갑작스레 색깔이 변해 특재과로 보내진 것이었던가, 비늘 색이 변하는 원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가설을 세워보고 실험을--같은 생각도, 그 순간에는 들지 않았다.

 "……이야."
 "나비, 나갔다."

 감탄사를 뱉는 것도 잊고 있던 선하가 몇 박자 늦게 소리를 내자, 란씽이 나비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아무래도 선하가 금붕어에 시선을 뺏긴 사이 열려있던 창 밖으로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지나치게 짧은 만남이었다.

 "정말, 없어졌네요."
 "창 밖으로, 나비는."
 "그렇네요. 그리고 금붕어는……."

 안경을 살짝 내려 맨눈으로 봐도, 다시 초점을 맞춰도 분명히 새파란 하늘색이다. 하늘색 배, 하늘색 비늘, 하늘색 지느러미 그리고…….

 「앙!」
 정체불명의 소리에 감상이 끊어졌다.

 선하도 클린트 쪽을 확인했지만, 란씽이 먼저 클린트의 잠꼬대가 아니란 걸 확인한 듯했다. 숨을 죽이고 있는 두 사람과 잠든 그를 빼면, 휴게실 안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몇 되지 않는다. 소리가 나는 방향은 창가, 정확히는 수조 근처……. 선하가 불길한 예감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아아아아아앙! 앙!」
 ……? 이마에 잠깐 들어갔던 힘이 풀린다. 

 "선하. 수조야."
 "……설마 했는데요."

 물고기에게 목소리란 것이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도 그 즈음에는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이변에 익숙하지 않을 수 없는 소속과 직업 탓일까……하지만 비과학적인 일에 너무 익숙해지는 것이 과학자로서 좋은 일은 아닐 텐데, 하고 뒤늦게 반성해보기도 한다. 생각이 많은 사이, 란씽이 소파에서 일어나 수조 쪽으로 다가갔다. 금붕어 몇 마리가 일제히 파드득거리며, 조그만 소리들이 짹짹거린다. 아니, 짹짹거린다는 건 물고기에게 붙일 표현이 아니려나, 잘, 모르겠지만

 「크다, 크다!」
 「파라앙! 팟파!」
 「크다.」

 「……」

 「밥? 밥?」
 「으앙!」
 「삐, 삐릿?」

 「……」

 「파랑! 파라앙!」
 「밥? 밥?」
 「난~나난나!」

 「……」
 「……」

 「으아아아아앙! 앙!」
 「삐릿!」
 「난~나난난나!」

 ……짹짹, 이젠 무엇부터 감상을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선하가 가벼운 혼란에 빠진 사이에도 금붕어들은 새처럼 지저귀며 란씽의 기척에만 신경을 쓰는 듯했다. 선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통안전과에서 넘겨받은 먹이를 넘겨주자 란씽이 그것을 물 위에 조금 뿌렸다. 머릿 속에 일어난 혼잡을 정리하는 동안, 푸른 지느러미들이 하늘거리며 밥? 밥?에 몰려든다. 버금거리며 존재와 위치를 확인하곤 있는 힘껏 먹어 없앤다. 어느 쪽이든 오래 걸릴 것은 아니었기에 란씽은 기다려주는 모양이었다.

 "나비 얘기, 금붕어 얘기, 다른 얘기, 어느 쪽부터 들을래요?"

 「난나나! 난! 나!」 「삐릿! 삐릿!」
 (자꾸 듣자니 노래하는 것처럼도 들린다, 새라고 생각하면.)

 "……금붕어."
 "그럼 금붕어 이야기. 교통 안전과에 수조 근처에 뒀던 물건이 뭔지 물어볼까 해요."
 "음……."

 이번엔 선하가 잠깐 기다렸다. 란씽이 조금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등자색 물건?"
 "그렇죠. 가설이지만, 수조 근처의 무언가에 반응해서 세포 변이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
 "음."
 "성과가 괜찮으면 리포트할 수 있을지도. 세주 씨가 실적으로 쳐주면 좋겠는데요."

 「아아아앙!」
 「난난나! 난난--난나! 난나!」

 "이제 나비 이야기 할까요."
 "나비."
 "네. 나비……는,"

 "아까 말했지만 제가 한 건 아닌데요."
 "나도. 아니야."

 그리고 날아가 버린 탓에 그 이상은 말할 것이 없다. 란씽은 나비를 수놓은 수실과 사용한 바늘 따위가 평범한 것이었음을 확인해주었다.

 "꽃이라도 찾을 생각일까요?"

 꽃은, 나비의 바로 곁에 수놓여 있었던 것 같지만.
 물론 선하가 나비의 의중 따위는 알 수 없다. 그저 날다 보니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만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바깥과 안의 차이에 대해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색실이 아닌 살아있는 꽃송이를 찾아 날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나비라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선하는 생각했다.

 "글쎄, ...꽃, 없을 텐데."
 "플라워 샵이라도 만나면 좋겠지만."
 "화원, 가까워?"
 "음……그런 거면 좋겠네요."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전 아름다운 미로에 다녀온 요원들의 옷과 신발을 털어 얻은 하늘색 잔디의 샘플은 아주 평범한 풀 쪼가리로 밝혀졌었다. 일전 잔혹한 도시에 퍼졌던 광기의 독약이 사실은 아주……평범한 향수에 불과했듯이 말이다.
 이변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일어나 무해하기도 유해하기도 했다. 사실 머릿 속에서도 입 안에서도 터지고 번지고 날아가고 불쑥 튀어나오는 것들이 모두 이변일 수도 고사일 수도 전설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선하를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어느 잔인한 변칙(Anomalies)들은 부드럽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선하를 일깨워주곤 했다. 이 세계는 정상이 아니고, 이 세계는 병들었으며, 천천히 부서지고 있다는 사실을……잊어버릴 수 없게 했다.

 "그럼, 이제 실험실?"
 "글쎄요? 일단은 여느 사람들처럼 해볼까 하는데요."
 "여느 사람?"
 "네, 일단……."

 선하는 한참 게임을 하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 촬영 버튼을 눌렀다. 옵션을 조작해 동영상으로 바꿨다.

 "요즘 사람들은 이상한 걸 보면 촬영부터 하잖아요."
 "아."
 "유튜브에 올리면 되겠죠. 말하는_하늘색_금붕어 이런 걸로."
 "……음, 그건."
 "농담이에요."

 렌즈를 들이대자 금붕어가 흠칫 뒤로 물러나며 크다! 커! 하고 지저귄다. 잠시 잠잠해져서 헤엄치는가 싶더니, 다시 선하의 손끝을 보고 삐릿! 하며 놀라기도 한다―눈이 댕그래서, 사실 늘 놀란 것 같지만―. 개의치 않고 사진도 몇 장 찍는다. 유난히 푸른색이 선연하게 나온 사진이 있어 란씽의 핸드폰으로도 전송했다……여느, 보통의 사람처럼.
 그럼 이 경이롭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이변도 보통의 하루로 스며들어주지 않을까.

 "음. 선하."
 "네?"

 란씽이 전송된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남았어. 하나. 다른 얘기."

 "아."

 선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란씽에게는 애초 만나면 권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포커 한 판 어때요? 야식 걸고."





In Community SPEDIS : Event 4
이벤트 로그. 커뮤에 올린 것과는 조금 다른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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