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의 손은 부드럽고, 조금 차갑다.
손을 잡고 셋을 세면 서늘함이 스르르 없어지는데, 그럴 때면 난 내가 이 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리."
모니카가 말을 걸었다. 예쁜 갈색의 머리카락이, 모니카가 숨을 몰아쉴 때마다 어깨 근처에서 산들거렸다.
해도 달도 없어서 시간은 잘 모르지만, 우리가 이 곳을 헤맨 지도 굉장히 오래되었다.
"...리?"
"아, 응. 모니카. 왜?"
멍청하게 굴고 말았다.
나는 하늘에서 급하게 눈을 떼고 모니카를 본다. 모니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듣고 있나 해서."
"응. 듣고 있었지."
나는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쉬는 중이었다. 벽 위로 보이는 건 보라색 물감을 빠뜨린 것 같은 하늘 쪼가리뿐이라, 지금처럼 등을 기대고 앉아 하늘을 보고 있자면 모니카가 별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며, 곰이 된 여자와 그 아들의 이야기, 좋아하는 여자를 구하러 저승까지 다녀온 남자의 하프 이야기, 물고기 꼬리가 달린 인디언 추장 이야기 같은 것들을. 나는 넋을 놓고 목소리를 듣다가도 금방 다른 생각이 나면 버렸다. 모니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저 별들 중에 그 별자리가 없다는 건 나도 조금 안다.
빛나는 것은, 하나밖에 알지 못한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나의, 모니카.
나는 몇 편이나 이 애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 시 속에 이름을 쓴 적은 없지만 모든 시는 전부 모니카 그레인저를 위한 시였다. 운율이 전혀 맞지 않는다며 웃어넘길 때도 많았지만, 나는 웃는 모니카가 좋아서 다음 시를, 또 다음 시를 썼다. 모니카는 첫 시부터 확실히 고쳐두는 게 좋을 거라고 하면서도, 새 시를 내밀면 늘 열심히 읽어주었다. 나는 네가 웃는 것이 좋아. 네가 울어도, 나는 네가 좋아. 모니카는 그 연이 이상하다고 했다. 우는 걸 좋아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 하고 오히려 내게 물었었다.
"글쎄……."
그 때처럼 대답을 얼버무린다.
발뒤꿈치가 신발에 긁혀 따끔거리긴 했지만,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그런 것을 털어놓기는 꼴사납다.
"……정말?"
모니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럴 때의 모니카는 아주 예쁘다.
내가 그 녹색 눈동자에 정신이 팔린 사이, 부드러운 손이 이마를 덮었다가 떨어진다.
"정말, 열은 없는 것 같네. 많이 달려서 피곤한가보다."
열감기에 걸린 것이 아니니까, 이마를 짚어봤자 땀을 조금 흘렸구나 싶을 거였다. 모니카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묻은 것을 찬찬히 닦아낸다. 나는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카.
그건 있잖아, 케이크를 먹는 기분이야.
케이크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나지만, 우리 집에선 자주 먹을 수 없으니까.
너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잘 울지 않게 됐잖아.
"그 사람들, 누굴까?"
모니카가 물었다. 나랑 똑같이 걷고 뛰었는데도 목소리에는 피곤한 흔적이 없다.
"무지 커다란 사람이 쫓아왔잖아. 혹시 봤어? 나무보다 클 것 같았는데."
그럴 리가. 난 그 사람의 어깨 위에 꼬마애가 매달려 있는 걸 봤다. 높은 곳이 좋은 건지 그 사람이 좋은 건지, 그 사람한테 꽉 매달려서 펄럭거리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모니카가 생각하는 키는 그 꼬마의 머리통까지 합한 길이일 거다…….
부러웠던 건 아니다. 나는 함께 도망치는 동안, 이 곳에 떨어진 아이가 우리 둘만이 아니구나 하고 분해했을 뿐이다.
왜일까, 이 미로는 모니카와 나만 있어도 충분한데.
"거인일지도 몰라. 양뿔이 달린 사자도 있었으니까, 거인일지도……."
그건 스핑크스 아니었나? 벽돌로 만든 게 아니었으니까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거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마주칠 때마다 끝까지 쫓아오는 걸 봐선 모니카를 이 곳에서 데리고 나가려고 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거인이 아니라 그냥 나쁜 사람이란 걸 알려주면 저렇게 눈을 빛내는 대신 조금 무서워해줄까?
아니면, 높은 어깨 위에 올라타고 싶어할까?
"또 뭐가 있을까? 여긴 넓으니까, 신기한 걸 또 만날지도 몰라."
"……."
모니카는 가끔 이렇게 말수가 많아지지만, 나는 모니카에게 비밀이 많다.
나는 싸움을 잘 하거나 힘이 세지도 않고, 신기한 괴물 같은 건 책 속의 그림으로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무섭고 다른 어른들처럼 모니카를 나와 떼어놓을까봐 무섭고 이 곳에서 나를 꺼내 학교로 돌려보낼까봐 무섭고, 싫고, 발이 빠른 것 말고는 잘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쉬더라도, 어른들의 발소리나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리거든 다시 도망쳐야 한다……전부 모니카에게는 비밀이었다. 거인의 정체도 그 중에 하나로 해둬야겠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벽이 높은데 그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 같아."
난 등으로 벽을 힘껏 밀면서 운동화 끈을 힘껏 잡아당긴다.
"혹시 지도같은 거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우리가 제일 먼저 온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 나도 여기 지도를 만들고 싶었는데……."
힘껏…….
"……리. 대답은 꼭 하기로 했잖아."
아차,
"미안해."
"미안할 건 없지만……. 리, 여긴 우리 둘 뿐이니까, 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내 목소리만 들리게 되잖아."
"응."
"그러면 조금……."
"……."
무서웠구나, 모니카.
나는 숙연해진다. 모니카가 이 곳에서만 몇 번이나 고쳐달라고 말하고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모니카의 눈이 화를 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더욱 어쩔 줄을 모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모니카,
"내가……."
훅, 바람 소리가 들리도록 숨을 들이마셨다. 입 안에서 왠지 단내가 났다.
"―가까이에 있어요!"
"보입니다!"
아,
내가 지켜줄게,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천장은 별을 엎지른 밤하늘, 바닥은 눈이 시린 낮의 하늘,
눈 앞에는, 온통 새하얀 도화지.
빙-글빙글, 우리에겐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길 같은 것은 처음부터 몰랐다.
잡히기 전에 달려나간 건 좋았지만 운동화 끈을 마저 묶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아는 마지막 비밀 문(흰 벽처럼 보이지만 눈을 딱 감고 지나가면 통과할 수 있다)을 지났을 즈음에 한 번 넘어졌다. 운동화가 벗겨지면서 심하게 굴러버렸지만, 잔디가 깔린 땅이 부드러워서 부딪친 곳이 아프지는 않았다. 모니카는 신발을 주워주느라 잠깐 내 손을 놓았다. 당장 일어나야 하는데, 숨을 헐떡이기도 힘이 들어서 나는 잠깐 콜록거렸다. 귀에 짓눌린 잔디가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심장이 머리까지 굴러가버린 것 같았다. 기침을 하다가 잘못 튀어나가면 그대로 죽는 걸까, 누가 내 기침소리를 듣고 쫓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나는 입을 가렸다. 그랬다가, 그렇게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금방 다시 손을 뗐다.
"―신 씨, 왼쪽에 파란 벽이에요."
에요, 요, 요,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벽에 부딪쳐 웅웅거린다.
내 신발한테 하는 말은 아니겠지?
여기에 파란 벽이 어디 있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모여 가까워진다. 한 방향이 아니고 여러 방향에서부터, 나와 모니카가 있는 이 곳으로. 이 곳의 지리같은 것은 몰라도, 등 뒤로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넘어지기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날 찾아내는 거지?
왜 넘어져버린 거지?
저 사람들도 나와 모니카만큼 뛰었을 텐데, 왜 길을 잃어주지 않는 거야?
"저기 보여. 그런데 가방은 안 보여."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아, 저 누나! 뉴스에 나온 누나에요. 나 알아!"
뉴스? 그건 무슨 얘기야?
하지만 누나라는 말에 정신이 반짝 들었다.
"겨우... 만났네. 모니카 맞지?"
그건 분명히 모니카의 이야기다.
잘 들리지 않아.
다른 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
또 다른 쪽에서, 또 또 다른 발소리.
전부 바보들이었다.
아무리 친근하게 말을 걸어봤자, 모니카에 대해서는 잘 모를 테다. 아니, 아무도 모니카에 대해 나만큼 잘 알지는 못한다.
용감하지만 보기보다 무서움을 타고, 누구에게나 상냥해서 손수건이 곧잘 더러워지고, 맡은 일은 척척 해내지만, 가끔은 동화 속의 앨리스처럼 모험에 휘말리고 싶어하는, 잘 웃고, 잘 듣고, 비밀은 알게 돼도 모른 척 눈감아주고, 울 때면 눈에서 녹색 물이 떨어질 것 같았던 나의…….
모니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모니카를 이해하는 것처럼, 나를 이해해주는 것은 이 세상에 모니카 하나밖에 없다.
고무장화처럼 늘어져버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넣었다. 움직여주는 대신 벌벌 떨리기만 하길래, 이를 꽉 악물었다.
벽 너머로, 뛰어들었다.
"가까이 오지 마!"
지켜줄게, 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 말대로, 나는 모니카를 지키고 싶었다.
나의 별을 아무도 볼 수 없게,
나의 별에게,
누구도 다가올 수 없게.
나의 별이,
어딘가 멀리로 날아가버리지 않게…….
나는…….
"리!"
모니카는 벽, 그러니까 문 앞에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넘어왔다간 나까지 들키게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온 몸에 쥐가 난 것처럼 찌릿거렸지만, 나는 양 팔을 활짝 벌려 모니카를 가렸다. 내가 너무 작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게 너무 무서운데도, 꼴사납게 겁에 질려 씩씩거리는 나라도, 모니카를 혼자 둘 만큼 한심할 수는 없었다…….
"아레스 리인가. 일단 진정하고……."
"...부, 분명히 말했어. 가까이,"
숨이 차서, 나는 형편없는 데서 잠깐 말을 쉬었다.
눈 앞이 빙글빙글 도는 중에, 나는 눈으로 거인도 이 사람들에 섞여있는지 찾아보았다……없었다. 없을 수도 있지.
"오지 마요!"
나는 왜 이렇게 어릴까.
약할까.
왜 우리는 길을 잃었던 걸까.
모니카의 손을 잡고 이 벽 너머로 달아나면,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비밀 통로를 찾으면, 비밀 벽을, 비밀 문을, 아무도 오지 못하는 곳까지 도망쳐서, 도망치고, 꼭꼭 숨어버리면, 그리고 또……그 다음엔?
"란씽 씨, 돌아와도 돼요. 이 쪽으로 나왔으니까."
……그 다음은 어떻게, 를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때
뒤에서 조용한 기척이 느껴졌다.
거인이 아닌 모니카가, 불쑥 손목을 쥐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맞잡고 있었는데도, 잠깐 사이 모니카의 손은 식어있다. 아니,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내 몸이 뜨거워진 걸지도 모른다. 손목을 감싸쥐는 손가락이 너무 부드러워서,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들썩거리던 가슴도 덜컥 서늘해진다.
둘,
"괜찮아, 리."
나도 모르게 팔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모니카가 한 걸음 걸어나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내가 지켜줄게."
이 애의 손은 아주 부드럽고, 차갑다.
손을 쥐고서 셋을 세면 서늘함이 스르르...하고 녹아버리는데,
그럴 때면,
――셋.
나는,
In Community SPEDIS : Case 2 - Stage 3
아 여러분 다 필요없고 NPC갖고 동인질하지 맙시다
선하도 안 나오는데 나는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ㅋ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