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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숙취는 아프고도 괴로운 것이죠




 [하프.]


 세븐 포커의 핵심은 일곱 장의 카드를 받는 동안 얼마나 높은 족보를 만드느냐에 있다. 주된 목표는 같은 숫자의 카드를 여러 장 모으거나, 같은 무늬의 카드 다섯 장, 연속된 숫자의 카드 다섯 장을 모으는 것. 패를 바꾸는 절차가 없는 단순한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의 흐름은 어디까지나 끗발과 배팅에 달려있다.

 여섯 장째의 카드를 받은 현재 핸드는 에이스 투 페어. 들쭉날쭉한 무늬들과 숫자들 사이에 스페이드 에이스와 하트 에이스, 클로버 7과 스페이드 7이 짝이 되어있다. 딱히 나쁘지 않은 패긴 하지만, 딱히 좋은 패도 아니랄지……. 


 [풀.]

 [쿼터.]

 [풀.] 


 패에 비해 판돈이 너무 올라가버렸다.


 [콜.]


 잃으면 잃는 거지 뭐, 생각하며 선하가 히든카드를 받았다.




 삐-삐-삐♪ VVIP룸에서 대박이 터졌습니다! 무려 92조를 따신 분이 있네요~


 저렴하고 단조로운 효과음과 함께 축포가 터졌다. 92조의 주인공 채 선하 씨가 잠시 액정에서 눈을 들어 올린다. 마지막의 효과음은 핸드폰이 아니라 선하가 돌려뒀던 질량분석기에서 난 소리였기 때문이다.


 음.

 스크린에 떠오른 성분표를 잠시 올려다본다. 이 일도 곧 2년 차, 그 나름 경력자 취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전문가라고 자신할 수 있는 분야는 한정되어 있다. 이든이 있었다면 흙 속에 섞여있던 저 고분자물질이 어딘가 특정 식당을 찾아줄 실마리가 될지 아니면 수사관들이 먹은 신상 간식에서 떨어진 것뿐일지 상담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퇴근한 뒤다. 혹시 다른 게 있을까 싶어 현미경의 배율을 높여봤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와……. 벌써 해가 떴네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힘이 많이 빠져있긴 하지만, 기계와 대화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 그건 당연히 사람의 목소리다. 게임머니를 불리고 있던 선하와는 달리 제대로 연구에 매진했을 2반의 소중한 재원, 세스 막스의. 랩에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던 시온을 돌려보낸 이래 두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일단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눈으로는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다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창 밖이 밝아진 것은 전혀 놀랍지 않았지만, 설탕가루를 붙잡고 고민할 의욕은 이제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 모든 답을 남김없이 다 안다면 현자(賢者)겠지. 선하는 평범한 천재였기에 모르는 것은 몰랐고, 새벽을 갉아먹으며 알아내야 할 만큼 중요한 건은 아닌 듯했다.

 이든 씨한테 잔소리야 듣겠지만…….


 "전 이쯤에서 정리할까 하는데……. 세스 씨 잠깐 아침이라도,"


 이든이 출근하면 볼 수 있게 프린트 명령을 내려두면서, 선하는 마지막 전우라면 전우라 할 수 있을 세스에게 리타이어 소식을 건넨다. 방해가 되면 어련히 거절하겠지 싶어 이른 아침을 권해봤는데, 아예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프린터가 지잉 소리와 함께 출력물을 뱉길래, 그것을 뽑아들고 돌아본다. 


 "……아."

 선하의 출신지에는 이런 동요가 있다.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하는. 


 뜬금없이 이 동요가 떠오른 건, 조금 전까지 제대로 말하고 웃던 세스가 시험관을 든 채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험관을 꼭 쥔 채 눈이 감겼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선하는 저도 모르게 악―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한 자세로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일까 목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역시 포커에 너무 집중했다니까.




 "선-하! 좋은 아침!"

 "아, 캐서린 씨."


 확실히, 캐서린 브라이트가 랩으로 내려온 걸 보니 이제 별이 보이지 않을 시간이란 걸 알겠다. 성과도 쪽잠도 야식도 없이 이렇게 말짱 새 아침이 밝아버린 것이다. 누군가에겐 눅눅하게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라지만 누군가에겐 반짝반짝한 퇴근 타임이 되기도 한달지……. 그게 가능한 건 유연근무제에 관대한 닉―2반의 노인 쪽―맥플러리 교수 덕분이었는데, 랩에서 숙식하는 데 익숙한 선하에게는 그마저도 해당 사항이 없는 시스템이다.


 "별들은 좀 어떻던가요?"

 사람의 몸은 의식이 없을 때 한층 무거워진다. 읏차, 하고 저렴한 기합을 흘리며 장정의 몸을 끌고 걷는다. 그러는 동안 물은 것은, 천문학에 조예가 없는 선하가 할 수 있는 최적의 안부인사였다. 캐서린이 이변으로 칠만한 건 없었지만……하다가 세스를 눈에 담는다. 풀썩,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나버렸지만 소파에 몸을 늘어뜨리는 동안에도 용케 깨지 않는다. 역시 신기한 곰팡ㅇ


 "……그거, 설마"

 "네. 세스 씨에요."


 아니, 큰 실례를 할 뻔 했다.


 "...기절한 건 아니지? 얼마나 못 잔 거야?"

 "거기까진 모르겠네요……."


 애매한 출력물은 이든의 책상에, 기절하듯 잠든 세스는 일단―운반하는 것보단 몸에서 시험관을 떼어내는 것이 까다로운 작업이었다ㅡ소파에. 선하가 이 새벽에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했고 전부 그럴듯한 자리에 뒀다. 식탐이 적은 선하였지만 이제 뭔가 먹지 않으면 그대로 아사하겠다 싶다. 이번에야말로…….


 "아침 어떠세요?"

 "먹고 가야지. 혼자 먹으면 쓸쓸하잖아?"


 이번에는 다행히 즉답이 돌아왔다.

 역시 퇴근을 앞뒀기 때문일까, 캐서린은 한껏 해사한 표정이었다.




 사람이 적었을 때 좋았던 점은 랩에 언제나 먹을 것이 있었다는 것이고, 사람이 늘어난 지금의 좋은 점은 음식물쓰레기를 치울 일이 거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랩 안의 냉장고도 늘 풍족하던 일전의 상태와는 조금 다르다. 엷게 성에가 끼어있는 비커―내용물을 먹지 마세요, 라는 메모가 붙어있다―하나와 각자의 취향을 반영한 양 다양한 각성제가 몇 병. 사실 이리나가 최근에 만들어온 해기스―처음 가져왔을 때 한 입 먹어보고 젓가락을 내려놨더니 제겐 권하는 일이 없어졌다. 상처받은 게 아니었으면 하는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빈 통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리고, 아무도 설거지는 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빈 락앤락 뒤에 전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숨어있는 캔맥주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넣어둔 건지 모르겠지만 미묘하게 부풀어있는 것이, 풀탭을 당기면 바로 터질 것 같은 수상함이 느껴진다. 술이라면 분명 brought by 미스 이리나 카스파로프겠지 싶은데, 저렇게 불안한 상태라면……아무리 그녀라도 별로 좋아할 거 같지 않은데. 선하에게 묻는다면 술자리는 싫어한 적이 없지만, 아침으로 술을 마실 만큼 좋아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냉장고를 닫는다.


 "슬슬 깨울까?"

 등 뒤에서 캐서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요. 휴게실에 먹을 게 있나 봐야겠어요."




 그럼 먹을 걸 구해올게요. 세스 씨는 조금 있다가 깨워주세요…….

 여자와 환자를 셸터에 두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서는 남자. 재난이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새벽이지만, 굳이 역할분담을 하자면 그런 포지션이 된 것 같다.


 애매한 시간대라 출근하는 요원은―그것도 휴게실을 거쳐서 랩으로 올 경우는―아직 없었다. 퇴근하려는 요원 하나는 선하가 붙잡아둔 덕분에, 복도에는 선하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선하는 최대한 조용히 걸었다. 


 혼자는 쓸쓸하잖아, 라고 캐서린 씨는 말했지만 휴게실로 가는 복도 정도라면 그럭저럭 외롭지 않게 다녀올 수 있었다.


 선하 쪽은 하루를 마감하려는 시각이었지만 유리 너머로 내다보이는 도시의 하늘은 차츰 새벽 특유의 연보라색을 지나 밝은 여름 하늘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가 가까워지고 있어서 해가 빨리 뜨는 것도 있지만, 대중교통이 다니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임은 분명했다. 머잖아 도시에 활기가 트이고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리라. 그 '낌새'는 현미경 따위로 보지 않아도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머잖아 랩에도 사람이 늘어나 지금과는 다른 온도가 되겠지. 아마 잠들어있을 시온이 다시 세련된 옷차림으로 돌아와 논문을 해독하기 시작하고, 녹수가 컴퓨터 앞에서 집중하고 있다가 가끔 붕어처럼 무어라 뻐끔거리기도 할 테다. 한편 설탕이던데요―하는 수줍은 결과에 이든이 낼 짜증이 눈 앞에 재생되는 듯해, 속으로 웃고 말았다.

 오늘은, 조금 흐릴 예정이다. 언젠가처럼 정어리가 폭우처럼 쏟아지거나 지난 주처럼 함박눈이 내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땐, 눅눅한 튀김냄새가 휴게실의 공기 중에 가득 차 있었다. 말라가는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접시 위에 종이를 덮어두다가, 누군가가 사온 듯한 도넛 박스에 선하는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아까까지 노려보고 있던 설탕가루의 출처에 대해 안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어.)

 매일 잘 할 수는 없지.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이든 씨한테 욕을 배불리 먹긴 하겠지만…….)




 "캐서린 씨, 도넛이 몇 개 있던데요."

 "아, 휴게실에. 나도 봤는데."

 "네에. 그리고 냉장고에는 술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맥X닝을 시켜야겠어요."

 "X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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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기간에 올린 휴게실 로그.
정말 이 라인업대로 2반이 될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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