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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Hello, Mr. World.




 "비 온대? 네가 우산을 다 챙기고."
 어느 날엔가, 룸메이트가 물었다.

 "네?"
 그러고 보니 오른손에 우산이 들려있었다. 단정하게 말려있는, 하늘색 접이식 우산. 그것을 선하는 막 그의 가방 속에 집어넣으려던 참이었다.

 "아."

 이상한 일이었다. 우산은 분명 선하의 소유였지만 익숙한 소지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미권의 관용표현을 빌리자면 선하는 분명 가방 속에 우산이 들어있을 가장-마지막-사람이고, 예비 우산 따위를 들고 다니느니 비가 그칠 때까지 학교를 떠나지 않을 타입이었다. 희미한 위화감을 느낀 선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멍청하게 들렸을 감탄사를 수습하기 위해 다시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혀의 움직임이 조금 뻣뻣했다.

 "...마,"
 일기예보를 봤었나보네요.

 아마,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본다.
 만으로 열아홉의 나이에 석사 논문을 퍼블리싱한 선하지만, 그라고 해서 날 때부터 분석적이고 모든 언행에 근거를 가진 천재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선하는 더 생각하지 않고 무심히 위화감을 넘겼다. 룸메이트도 그랬느냐며 다시 하던 일로 몸을 돌렸다, 날씨를 체크하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날은, 아주 많은 비가 내렸다.
 캠퍼스의 많은 천재들을 감성적으로 만들 법한, 우중충하고 무거운 폭우였다. 




 Hello, Mr. World.
 2




 본래, 당연한 일에서 깨닫기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호흡의 기쁨, 수면의 행복, 소화의 보람. 두근, 하고 지나가는 심박 한 번이 얼마나 복잡하고 절박한 것인지,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이며, OMR 카드를 실수없이 채우는 것만으로,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약속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선하는 누구나 그렇듯 묵묵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고, 그러는 동안 수업은 지루했지만 친구들을 만나는 건 나쁘지 않았다―는 감상을 갖곤 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그렇게 매일 아침 학교에 나가 수업을 견디며 친구와 어울리고 돌아오는 것이 당연했으므로.
 어느 좋고 나쁜 학생에게나 따라오는, 지극히 흔하고 평범한 일이었으므로.

 "이런 특수능력을 보유하신 줄은 몰랐는데요."
 묻는 남자의 목소리는 썩 정중하게 들렸다.

 당연히, 선하는 일기예보를 봤겠거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며 보거나 들었을 TV나 라디오, 신문, 손가락 하나만 놀리면 찾을 수 있는 인터넷 뉴스,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 또 그런 것을 지나다 보거나 들었을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목소리―내일 비 온다던데? 우산 잘 챙기고 나가―, 혼잣말, 텍스트 메시지, 포털 사이트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위젯, 거미줄처럼 펼쳐진 소셜 네트워크―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이런 곳 저런 곳 어딘가, 어딘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날씨라는 것은 공중 어디에라도 떠돌 수 있는 정보였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 선하는 그 때에도, 그리고 그 때에도 깨닫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네, 뭐어."

 고등학교는 굳이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 라던가
 날씨 따위에 관심을 가졌던 건,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다던가.

 선하는 그 정도로 겸손한 지성이었고, 합리적인 사고관의 학도(學徒)였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슬프게 고쳐 말하면 그 정도로 스스로에게 관심이 없었을 테다.

 "예지능력은 랭크도 높고 패널티도 크다고 들었습니다. 맥플러리 교수님과 상담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제 쪽은 별 거 아니에요."

 입 안이 마르는 듯한 감각에 선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부드럽게 미소한다.

 "날씨잖아요?"
 기상청이 더 잘하니까, 쓸모도 없고요.

 그 때보다 훨씬 부드럽게 혀를 놀린다. 

 "……그렇습니까?"

 "네?"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행간에 가느다란 위화감이 스몄다가 흩어진다.

 "...아뇨, 아닙니다."

 무미한 표정으로 돌아간 남자에게, 그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의욕은 없는 듯 했다. 그는 그저 하늘색의 얇은 서류철과 선하의 얼굴을 몇 번 더 번갈아 보곤, 그 안의 내용물 한 장 한 장마다 커다란 압인을 찍는 작업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게 중에 선하가 가져온 것은 간단한 이력서 한 부―그나마도 팩스로 받은 양식 위에 수기로 작성한 것이다―뿐이었기에, 조마조마한 기분도 없이 종이들이 물리는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소리 뒤에서, 선하는 남자와의 짧았던 대화가 일종의 면접이었을까 따위를 고민해봤다……물론 답이 정해진 고민이었기에 조악한 상상 정도에서 끝이 나고 만다. 남자는 부국장의 대리인으로서 저 서류들을 준비해왔고, 선하는 방금 이 부서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된 재원이었으니까.
 
 당시의 선하는 슬슬 학위를 늘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던 차였기에, 수사국이 약속한 전폭적인 연구지원마저 그리 달콤하게 들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SDMD는 생각하시는 것 같은 수사국 산하 연구소의 약자가 아니오라 부국장 하이디 진 직속의 특수부서로……로 시작하는 기밀 하나를 전해 듣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마음을 바꿔먹을 수 있었다.
 관습 바깥의 이력, 당연하지 않은 이현상(異現象), 부서져가는 댐에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있는, 기밀부서와의 연봉협상. 그런 것들은 분명 누구에게라도 드문 일일 테지만, 선하는 이제 그가 흔한 사람 사이에 흘러다닐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선하의 어딘가가 바뀐 것은 아니다. 선하는 늘 그대로의 선하였다. 그리고,
 내일 비가 온다는 것을 아는 이상, 우산을 못 본 척 할 만큼 낭만적인 사람은 될 수 없었다.

 "이 쪽,"
 남자가 명함 크기의 카드를 내밀었다. 배의 키를 연상시키는 로고가 카드의 각도에 따라 매끄럽게 반짝인다. 선하는 딱히 그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았기에 아, 하고 상체를 조금 기울여 그것을 내려다봤을 뿐이었다.

 "보이시는 공란에 서명하시면 바로 신분증으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가 고른 것보다 최근의 여권용 사진을 어디서 인화한 것인지 정도는 궁금하기도 하다.

 선하는 그가 건네는 펜을 받아들었다. 여러 문화권의 글자로 이름을 쓸 줄 알았기에 어떤 언어로 적는 것이 좋을까 조금 고민하기도 한다. Chae, Seon이라고만 적어 돌려주었다. 부국장의 머리카락이 백금발임을 얼핏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경로야 기밀이라지만 자신을 고용하려는 사람이고 그녀가 자신의 상사라면, 그녀에게 익숙한 언어로 적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는 건, 역시 금발머리의 여자는 영어를 쓸 것 같다는 범인(凡人)의 선입견 탓이다.
 그럼……하며 펜을 받아드는 남자는 이제, 체크카드를 발급해주는 은행원처럼도 보인다.

 "특수재난관리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닥터 채."
 마지막 말은, 억지로 교육받은 멘트라도 되는 듯 했으니 말이다.



*
*
*



 철퍽.
 그리고 또 하루 치의 달이 가늘어진다.

 부서에 새로운 신입이 몇이나 선하와 같은 카드를 발급받고, 선하가 해결에 도움을 준 사건파일도 두께를 늘려갈 즈음. 여름 특유의 후덥지근한 습기가 또 한 차례 특재과의 랩까지 파고들었다. 여전히 내일의 날씨 따위에 관심이 없는 선하는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벌레처럼 숨을 죽이고, 수마가 그를 먹어치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림이 끝나기 전에 눈을 뜨고 만다.
 형태없는 어떤 정보가, 게으르게 뇌리에 떠오른다. 눈 앞에 펼쳐지는 것도 소리를 들려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선하는 그냥 그것을 알았다. 어떤 종교도 계시도 바칠 수 있는 신앙도 없이, 선하는 그냥 알게 되고 만다. 특별한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 데이터를 정보라고 부르는 데에도 망설이지 않는다. 하루를 여는 일과를 마치고 선하는 몇 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안녕하세요.
 다행히, 내일도 무사하시군요.

 선하는, 이것으로 잠들 수 있다고 알고 있다.





In Community SPEDIS : Case 1
신청과제. 개인적으론 여기 달린 강아님 피드백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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