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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손풀이로 쓰던 귤밀 2.24g



이따금 새벽에 눈을 뜨면 기율의 팔이 몸에 감겨있었다.
이렇게 잡시다 저렇게 잡시다 하고 약속을 한 것도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지만, 열 번 중에 열 번쯤 그런 모양이 되어있는 걸 보면 지민의 잠버릇도 기율의 잠버릇도 적잖은 시간동안 굳어진 모양이었다. 지민의 머리는 베개 밑으로 굴러 떨어져있고,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 기율이 지민의 등에 체중을 기대고 있다.
그의 숨소리가 흩어진 듯해, 지민은 가만히 등에 힘을 준다.

이 방의 천장에는 별 스티커를 붙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눕곤 했다. 끌어안지 않는 건――그러니까, 기율을 등지고 자게 되는 건 여러가지 에로틱한 시츄에이션을 줄이고 숙면을 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서로 덥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지민의 몸은 기율의 몸보다 체온이 낮을 때가 많았으니까…….
응, 그런 역사가 있는 온도차였다. 특히 손이 그랬더라고 기억한다.

지민은 가슴 앞에 늘어져있는 기율의 손을 더듬어 잡아본다.
줄곧 한 이불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은 지민의 것과 똑같은 온도로 미지근하게 녹아있다. 기분좋은 체온이어서, 지민은 조금 웃고 말았다.
사실 기율의 손이 차갑든 뜨겁든 지민은 똑같이 미소했을 것이다.

웃음은 머잖아 잦아든다.

"……."

사실 지민은...
이따금 기율을 잃어버릴까봐 무서웠다.

물론 어쩔 줄 모르고 기율을 밀어내야 했던 불안과는 조금 다르다. 지민은 이제 그렇게 어리지 않았고, 서로의 감정을 의심하는 일도 없었다. 그와의 결혼생활은 안정적이다 못해 전형적인 궤도 위에 있다. 모든 것과 적정한 거리를 두는 세련된 삶의 방식을 익힌 것은 그것보다 한참 전의 일이지만, 그는 예외 항목에 들어있는 사람이었다. (애당초 남편과의 거리를 조절한다는 건 어렵지 않을까, 지민은 생각했다.) 아마 지민은 그와, 서로를 닮은 아이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며 천천히 나이들 예정이었다.

다만 이 사랑스러운 체온과,
사랑하는 무게가
다시는 지민을 끌어안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면
과연 그 날을 견뎌낼 수 있을까……하는, 아주 감성적인 밤에만 지민을 찾아오는 의문이었다. 일에 열중하고 있을 시간엔 찾아오기 어려운, 아주 가느다란 우려였다.

"……으음,"
기율이 낮은 소리를 흘리며 뒤척인다. 손이 잡힌 것을 느꼈는지, 지민의 손가락에 손가락을 얽으며 몸을 더 기대왔다. 조금 무거워지는 바람에, 참고 있던 호흡이 툭 튀어나가고 말았다.

"...지민아,"
낮은 목소리가 뺨에 치대졌다.

"응."
"자야지……."

반쯤은 잠꼬대 같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근심 걱정을 날려버리는 속삭임이다.
응, 하고 잠을 깨우지 않도록 가장 작게 소리를 흘린다. 조금 등을 기대보자, 기율이 그것보다 조금 더 작게, 숨소리를 흘린다. 옳지, 하는 중얼거림처럼 들렸다.

직소퍼즐의 이어지는 두 조각처럼, 온 몸이 빈틈없이 맞붙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하지만 신은 그렇게 꼼꼼하지 않겠지, 지민은 또 생각했다. 사실 지민의 종교는 무교에 가깝다.) 

하지만,
(하지만,)

"……왔어?"
일부러 몸을 조금 뒤척이면 기율은 그를 향해 돌아누울 수 있도록 팔을 풀고 기다려주었다. 어눌한 발음의 인사에 웃으며, 지민은 그의 납작한 가슴에 바짝 뺨을 붙였다.

방향이야 어쨌든, 다시 한 덩어리처럼 맞물린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서 와 해줘."
"그래, 어서 자……."
"……."

아, 귀여워라.

(적어도 지민은,)
(그를 위해서라도 아주 오래 살 생각이었다.)
(숨 한 모금)
(생 한 조각)
(살아가는 순간 순간에 조심스레 주의를 기울이면서, 아주 정성껏)
(정성껏,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가 자신을 잃어버리도록 멍청히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눈 감았어?"
"응."

그 즈음, 다시 졸려졌다.

(그러니까)
(아침에 만나.)





특재과 과제를 하면서 썼던 건데 오글거리는 대화를 덧붙여서 분량을 늘려보았다.
뭐 어련히 알아서 잘 살겠지만 좀 무서워지거든 보험을 늘리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카레이서의 생명보험... 안 들 순 없겠지만 보험료 장난 아니게 깨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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