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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시기론




 죽음의 냄새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이화(梨花)의 그늘에서 나는 것도 아니었다. 어린 그가 곧 죽을 거라고 말하던 기녀들도, 약쟁이가 된 그에게 주먹이나 낫을 휘두르던 중독자들도 결국 그를 죽이지는 못했으니까. 공영은 악착같이 나이를 세고 되뇌며 살았지만 그 냄새는 그냥 이따금 났다. 언젠가는 소매 안쪽에서도 났고, 술잔 끝이나, 가끔은 혓바닥 밑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열 살이었나, 열병을 앓고 누웠을 때.
 그 냄새에 숨이 막혀 허우적거릴 때, 그 냄새가 죽음인 것을 알았다.

 "……이 장(章)에 있어서는, 지난 주의 소시험 주제와도 연관하여 생각해볼 여지가 다분 있습니다. 채점을 해보니 복습을 철저히 하셔야할 분들이 많았습니다만,"

 라고 그의 궁의ㅡ가 되어줬으면 하는, 남관(南館)의 교수는 안온한 목소리로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강의실의 맨 앞줄 자리 하나를ㅡ이따금은, 가장 뒷줄의 두 자리를ㅡ꿰차고 있는 2왕자의 존재에도, 이제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 일이 거의 없다.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차라리 강의를 위해 나을 것이라고, 체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체념해버렸다면, 그건 그 나름 나쁠 것 없다.
 체념이란 것은 결국 적응과 아주 닮아있어서…….

 익숙해졌다는 말과 상통하게 된다.

 소연에게 잘못 샀다는 향수를 하나 받았었다. 꽃향기가 너무 짙어서 기침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약만큼 많진 않지만, 이따금 숙면을 취하러 오는 번역쟁이가 있었을 만큼은 조향에도 공을 들였다. 많은 차를 사고, 술을 마시고, 다른 기녀의 방에서 잠을 자보기도 하고. 돈을 모이고는 시동을 시켜 새 옷을 해 입거나 보료를 바꿔보기도 했다. 커다란 약장이 거의 채워졌을 즈음, 손가락 하나가 고깃덩어리가 되어 나뒹굴었다.
 죽음의 냄새가 무취란 것은 그 때 깨달았다.
 그것은 피냄새와는 다른 것이었다. 꽃이나, 풀이나, 진한 향수와도 닮았고 조금도 닮지 않은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의 모친이 남기고 간 것이 아니라, 공영에게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적응하고 체념하면,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었다.

 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정말로 공영의 숨을 조이는 것은 아주 가끔에 불과해졌다.

 아주 가끔…….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오는 듯해, 공영은 급히 소매를 들어 입을 가렸다. 습관처럼 기침이 튀어나왔지만 어떻게든 큰 소리만은 삼켜누를 수 있었다. 누구의 취향에도 맞지 않을 것 같았던 향수의 냄새가 갑자기 떠올랐다. 비릿하게 느껴질 정도로 독했던 장미꽃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전하."

 그건 가끔인가,
 아니면 지금일까.

 "……전하?"

 부르는 목소리에야 미간을 구기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표정을 풀며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리며 시야가 맑아졌다. 묶고 오는 것을 잊어버린 탓에, 눈 앞에 제 머리카락이 한 웅큼 쏟아져있다.
 그 너머에는 어느새 교수가 다가와 서 있다. 강의의 흐름을 끊어버린 건가 싶어 힐끗 옆으로 눈을 돌려보니, 학도들은 시험지와 전공서를 번갈아 보며 답안을 작성하는 데 한가득 열중해있었다. 공영의 앞에도 같은 재질의 종이가 한 장 놓여있긴 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바람에, 그가 어떤 문제를 줬는지는 듣지 못했다.

 "아. 또 소시험인가."

 공영은 예의상 붓을 쥐려고 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것을 막았다.

 "고개를 들고, 저를 바로 봐주시겠습니까?"

 고개를 들라, 는 제 아버지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을 법한 대사가 아닐까 싶어 조금 웃음이 났다. 불평해봤자 무의미할 것을 알기에 공영은 잠자코 고개를 들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그는 키가 제법 커서, 앉은 채로 눈을 마주치려면 턱을 제법 들어야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평소의 그 단정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물은 이유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무슨,"

 일로 그런 표정이냐고 물을 생각이었다.

 어디선가 그 냄새가 났다.
 평범한 강의실에서 날 냄새는 종이며 먹 냄새 뿐일텐데. 아무래도 환향을 맡는 것 같은데 무슨 증상인지 다음에 물어볼까. 하지만 이렇다할 대처를 하기도 전에, 공영은 역겨운 대로 입 안의 것을 게워버렸다. 쏟아진 것은 아무렇게나 시험지 위에 흩뿌려졌다. 울컥,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그제서야 얼룩진 소매가 눈에 들어왔다, 붉어졌다. 이내 흐려진다.
 조금 무서워졌다.

 "……아."

 아마 아주 얼빠진 소리를 냈을 것이다.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핏구름달의 비도 이렇게 선연한 색은 아니었다. 손가락이 떨어져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의ㅡ혹은 지금의 기분에 대해 무어라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잘 알아채주었으니…….

 "전하, 말씀은 나중에……."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말 대신 또 한 모금 피가 올라왔다.
 그가 책상을 넘어 제게 손을 뻗고 있었다.

 "……전하!"

 아주, 긴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까지 살아야 오래 사는 것이 되고, 삶과 생에 성실했던 것이 되고, 가여운 어머니처럼 헛되거나 기구한 죽음을 맞지 않게 되는 것인지.
 그에 대한 답은 없을 것이다. 답의 존재를 바라는 것 자체가 생에 애착이 없다는 뜻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눈 앞의 장면이 불현듯 옆으로 기울었다.

 피,
 꽃.
 어떤 풀이나, 독한 향수.
 사실 어떤 것에서도 그 냄새는 나지 않았다. 어떤 것의 냄새와도 닮지 않아서,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었다. 그건 공영이 앓았던 병일지도 모르고, 태내에서 물려받은 불행일지도 모르고, 일 년에 한 번 핏비를 내린다는 성후(聖后)의 축복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

 그것에 의해 언젠가 공영은 죽을 것이고,
 그 죽음이 남의 입에,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피치 못할 일임을 알 뿐이다.

 그 때에 2왕자의 운명은 날 때부터 기구했다던가, 그 방의 약쟁이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던가, 그 여자가, 그 남자가 치기에 씌여 어리석은 일을 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인적없는 그 궁의 왕자가 무언가에 비관하고 있었다던가, 사는 것에 대한 의지가 약했던 거라던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것을 계속해야 공영의 죽음이 비난받지 않게 되는 걸까.

 누군가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 공영이 죽어버린다면.

 누군가가 울까?




큭... 크큭...
리퀘와는 전혀 관련없는 중2글이 되었지만
무튼 웩'ㅠ' 을 해보았습니다. 늘 수강에 민폐를 끼치고 있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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