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의 전투복은 다소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주머니-몬스터의 로켓단 오마쥬 같은. 그리고 종아리 절반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었다.
웃긴 차림이지만, 히어로가 감내해야할 부분이다.
"형 저요."
민이 부츠 속으로 발을 쑥 밀어넣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몸단장에 성심과 성의를 다하느라, 적은 그 말을 거의 듣지 못할 뻔 했다.
"뭐."
또 무슨 저급한 개그를 할지 모른다. 핀잔을 줄 준비를 하고 돌아보면, 민은 다른 쪽 부츠를 집어들고 발을 맞추고 있었다. 그가 신은 회색 양말은 낡고 얇아보였다.
"이번에 이기면, 고백하려고 해요."
"……?"
이게 무슨 농담이지.
전쟁영화 따위에서 이름도 없는 단역이 할 법한 사망플래그의 대사인 것은 알고 있다--적은 그런 펑펑 터지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참기름이 고소해서 라면이 경찰에게 잡혀갔다는 식의 개그보다는 고난도의 이해력이 필요한 것 같다.
민에게는 고 민이라는 이름이 있고, 이 이야기에서 그 나름 비중이 있는 역할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네메시스(가제)--자윤은 늘 소괄호를 강조했다--의 레드인 것이다. 전투력이 형편없는 신입이라지만, 그런 대사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정도는 든다. 게다가,
"누구한테?"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다.
"누나한테요."
음.
그렇다면야 굉장히 반응하기 어려운 농담인 게 분명했다.
심지어 본인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그 누나라는 게,"
"네. 형도 아는 그 누나."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표정으로 말할 수 없었을 거다.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냐?"
"네? 뭐."
이번 전투는 크다. 그리고 그 전장에서 만날 사람은 민의 그 누나다. 검은 생머리, 검은 옷으로 온 몸을 빈틈없이 가리고 채찍을 휘두르는…….
민은 늘 알고 있었고, 적은 최근에 알게 된 일이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이긴다면 민의 그녀가 죽을 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의 동료들이. 적어도 적은 그 몸도 마음도 새카매보이는 여자를 향해 망설임없이 조준할 수 있을 것이다. 탕--실제로는 소리가 나지 않겠지만,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되는 일이다. 그녀를 시체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지면 민이 죽을 수도 있다. 그가 레드니까 가장 위험했다. 물론 적이나, 채화나, 네메시스가 선발하고 훈련시켜 온 귀중한 전투원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평화를 말하지만 그들을 방해하는 것을 용서하진 않았다--그런 위선자들이었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도 않을, 집요하고 진부한 전투가 될 것이었다.
그 전투를 거치고 뭘 어떻게, 뭐라고 고백을 하겠다는 건지. 민의 말은 재미도 감동도 없는 헛소리였다.
"……너."
아니면, 나의 그녀니까 죽이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더더욱 헛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여지를 남기고는 이길 수가 없을테니 말이다.
"재미없거든?"
"하하."
짜증이 치밀어, 적은 하이개그를 들었을 때처럼 핀잔을 주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전투복은 조금 웃긴 꼴이었지만 그래도 부츠 밑에 깔창을 가득 넣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이라도 세련돼 보이도록, 적은 다시 거울에 몸을 비추고 매무새를 고치기 시작했다.
"재미가 있어야 하나요?"
등 뒤에서 민이 실없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