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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눈이 바다를 덮고 내가



 기율이 옆에 없었다.
 잠에서 덜 깬 상태였지만, 지민은 담요를 두른 채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갑판으로 나왔다. 물론 두 사람의 요트는 바다 한 가운데에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기율은 평소 지민이 앉아 볕을 쬐던 자리에 앉아있었다. 지금 그 자리엔 달빛만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율아, 하고 부르려다가, 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걸까.
 지민은 그 자리에서 수평선이나 구름이나 하는 것을 보고 있곤 했지만, 밤이니 수평선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달이나 별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많은 계절을 그와 함께―혹은, 헤어진 채로― 보내고 나서야, 지민은 그의 세계가 보이는 것만큼 넓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따금 엿보이는 그 세계는 보기보다 좁고, 보기보다 깊이 가라앉아있다. 하지만, 기율이 그 세계의 안쪽에서 길을 잃는 일을 목격한 적은 없다.
 넓고 덧없는 사색 속에서 쉬이 미아가 되곤 했던 그녀와는, 어떻게 보면 대조가 되겠다.
 지민은 한참 기율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가, 뺨을 쓰는 추위 한 줄기에 상념에서 깼다. 바다는 낮에 그랬듯 평온했지만, 밤중에 서 있기에 썩 따뜻한 장소는 못 되었다.
 슬슬 몸을 덥히러 가야겠다고, 느리게 걸음을 떼었다.
 "...들어가지 않고."
 팔을 감아 목을 끌어안았을 때, 기율이 살짝 뒤를 돌아봤다. 얇은 잠옷과 잠옷 사이로 기율의 등이 닿았다. 기율이 조금 먼저 나와있던 탓에, 그 몸은 드물게 지민보다 차가웠다. 지민은 오한에 얼핏 몸서리쳤지만, 깍지낀 손을 풀지는 않았다. 담요를 둘러덮은 탓에 두 사람의 그림자는 작은 언덕처럼 보였다.
 "응. 그러려고 했는데……."
 말끝을 흐렸다.
 지민은 기율을 사랑했지만 그의 사색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기율이 지민을 이해해도 공감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민이 기율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공감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공감대는 책 한 권과 온유한 웃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지민이 생각의 미로 속에 갇혀있을 때 그녀를 구한 것은 늘 기율이었다. 미로 속에 지민을 밀어넣은 것이 그였을지라도, 그가 아니었을지라도. 스스로 기어들어간 욕조 속이나, 보랏빛 강가나, 어느 섬의 해변일지라도. 결국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기율 한 사람 뿐이었다.
 "그랬는데?"
 기율이 웃었다. 지민은 그를 그 세계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기분을 어떻게 말해야할까,
 그렇고 이런 순간 순간의 미안함과
 감사를,
 떠오르는 외로움과, 치미는 애정을.
 이따금 지민은 그것들을 몇 모금씩 입 안에 물었다. 하지만 소리로 만들어 내뱉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여긴 너무 춥잖아."
 그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담요를 가지고 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너를 감싸는 여름.
오랜만에 귤밀인듯요. 꼭 여름일 필요는 없었던 것도 같지만
여름이 된 바람에 일단 제목이 (그리고 본문이) 이상한 것도 같지만...
당장은 제가 길을 잃은 관계로 수정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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