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현관의 도어락을 열었을 때, 기율은 지민과 조우했다.
아니, 조우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기율은 아연하게, 현관문을 연 채 지민을 바라보았다. 지민은 어디서부턴가 뛰어온 듯, 숨을 헐떡이느라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오더라도 자신은 아무데도 가지 않았을텐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관의 누런 센서등 아래,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습윤해진 그녀의 눈이 까맣게 빛났다. 그녀가 숨을 고를 때마다, 그녀의 어깨가 크게 들썩거렸다.
사실, 조우 같은 것을 현관 앞에서 할 수는 없다.
그녀와 우연히 만난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지민과 기율은 딱 한 번 마주쳤고, 기율은 딱 한 번 지민을 붙잡았고, 두 사람은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헤어지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짧은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과, 다시 겨울이 돌아왔을 때에도. 수년간 웃으며 흘려보냈던 2월과 2월과 2월이 당연한 의례가 되어가는 동안에도. 읽다가 잠시 갈피를 질러둔 소설처럼, 그저 두 사람은 놓여있었다.
그러니까,
"못 하겠어."
그녀는 기율을 만나러 온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
"더 못 하겠어. 너랑 밥먹고 케이크 자르고 하는 거, 어떻게 해왔는지도 잘 모르겠어. 난,"
지민의 숨은 여전히 거칠었다. 기율을 올려다보는 눈은 어쩐지, 겁에 질려 있었다. 실내복으로 입고 있던 셔츠 사이로 밤바람이 시리게 스며들어왔다. 바람에 망가진 듯한 머리카락이나 엉망으로 꿰어입고 나온 듯한 코트 아래의 맨 다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녀는 그런 것이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저 입 안에 치미는 문장들을 말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넌 내가 여자친구든 여자친구가 아니든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그 즈음에서 입 안이 타는지, 지민이 잠시 마른 침을 삼켰다.
"아무리 해도, 네가 아무 사람이 되지 않아."
"아무리 만나도, 네가 친구가 되지는 않아."
"난 네가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웃을 수가 없어. 네 생일이 아니면, 너한테 지나가듯 전화를 걸 수도 없어. 날짜를 정해두지 않았으면 난 매일매일 네게 전화를 걸었을거야. 널 생각해야 했을거야. 네가 잘 있는지, 네 손가락 열 개가 다 붙어있는지 비는 맞지 않았는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죽지는 않았는지……. 내가 필요해지는 건 아닌지, 그런 것들이 걱정됐을거야. 사실 지금도, 그래서 왔어. 율아."
"……."
"율아,"
"보고 싶어서 왔어."
그녀는 강에 빠졌다가 기어올라온 것만 같았다. 바닷 속을 헤매다가 온 것도 같았다. 울었던 게 분명했다. 울긋불긋하게 번지고 질린 얼굴이었지만, 금방이라도 또 울 것처럼 위태로운 목소리였지만, 그녀는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견고해보였다. 길을 헤매는 미아의 표정도, 바다 위에서 죽어가는 임산부의 표정도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녀는 차라리, 끔찍한 괴물을 쓰러뜨리고 온 전사처럼 보였다.
그것이 조금 가여워진다. 어쩌면 가을밤의 한기에 차츰 몸이 식어가고 있었던 탓일지도 몰랐지만…….
……어쩌면, 펼쳐뒀던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가 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기율은 입을 열었다.
한 줄 요약: 좋아합니다, 저와 교제해주세요.
제목은 저런데 다른 노래를 왕창 들으면서 쓴 기분이... 글 내용은 사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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