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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하는 소언

생각을 정리하는 로그




1.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동생처럼 조금 병신인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 점을 빨리 인정하고, 나의 병신같은 점과 적당히 타협해가면서 나를 좋아하려고 어떻게든 노력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10여년간 내 나름대로 애써왔다는 점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그러니까 남 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애써왔다는 점을 말이다, 성과가 내 기준에 못 미치긴 하지만서도...
동생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 동생을 탓할 수 없듯이, 내가 무언가 잘못했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조금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좋다. 무능했을 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는 힘을 냈다. 응. 나는 나를 좀 더 좋아하는 편이 좋다.

2. 그렇다면
(병신으로 태어났다면) 병신으로 사는 수 밖에 없다. 내 동생은 병들거나 망가진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조금 잘못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애는 그 애로써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애의 잘못도 그 애의 병도 아니다.

3. 물론
동생을 불량품으로 매도하는 누나는 나쁘다. 나는 흔히 말하는 나쁜 누나고 나쁜 딸이며 그 상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사실 나는 흔히들 하듯이 내 동생은 조금 특별할 뿐이고 그 아이만의 천진하고 순진무구하고 꺠끗한 영혼을 지키기 위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해야한다. 그 말에 딱히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다. 동생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덜 간지러운 어휘를 고르고 싶을 뿐이다.

4. 원망하진 않지만
동생을 보면 나는 불안해진다. 먼저 동생이 의지할 수 있는 누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분. 되어야만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로는 그런 누나가 될 수 없다는 것에서 패배감이 느껴지곤 한다. 이 기분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한 것 같으니 넘어가더라도... 난 가끔 나도 정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기분을 받는다. 물론 정신지체라는 것이 유전적인 문제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사실 들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뒷담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무슨 말이든 지어낸다.) 내가 건강하고 건전하다는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5. 자신감
단정하기 어려운 것을 건강하게 하기보다는, 글자로 써놓기 쉬운 것에 대해서 구색을 갖춰두는 편이 번듯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증명받기에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원한 적은 없지만 덕분에 지금 나의 학벌은 보통 사람만큼은 되고, 학교 내에서의 성과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인간관계도... 이 정도면 필요한 만큼은 쌓아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남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되는 것 같다.

6. 갑자기 쓰고 싶어져서
동생과 단 둘이 살 때 있었던 일이다. 판화 수행평가를 할 때 어떤 여자애가 내 롤러를 발로 밟았던가... 무슨 이유로 망가뜨렸다.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네가 망가뜨렸으니 원상복구하던가 새 것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항의를 했다. 그 즈음의 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사실 나도 그렇고) 일단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발뺌을 하다가 얼마 하지도 않는 걸 도로 사내야겠냐는 식으로 목에 힘을 주길래 나도 거만하게 그 애를 깔아보면서 무어라 막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다음 날 인간극장이라도 보고 온 마냥 불쌍한 것을 보는 눈과 울먹이는 목소리를 해가면서 내 손에 돈을 쥐어줬었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꼭 롤러를 사라고 거듭 말하면서....ㅋㅋㅋㅋㅋㅋ.... 무슨 소릴 주워듣고 와서 내가 500원도 없는 거지로 보였는진 모르겠지만
그걸로 난 교문 앞에서 떡볶이를 사먹었다. 써놓고 보니 좀 병신같네... 그렇구나 난 병신이구나ㅋㅋㅋ

7. 쓰고 싶은 말이 좀 있었는데
몸이 영 안 좋아서 다 생략하고 한 줄만 적는다. 지금 내가 그나마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건 단순히 동생을 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 그래. 6번을 쓰면서도 내가 그렇게 독설할 수 있었던 건 매일 집에 가서 만나는 게 맨날 엄마만 찾고 실실거리고 시름시름거리는 그 애나 가끔 집안일을 도와주러 와서 나의 철없음을 비난하던 외할머니 뿐이었기 때문이란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난 그 때 열 한 살이었음.--;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남자친구(사귀기 시작한 건 열 두 살 때였으니 그 땐 그냥 선배였지)는

8. 남자친구는...
그 놈도 병신이었지. 아. 과연...
이 아니라 생각해보면 사실 선배가 날 최종병신그녀로 만들고 간 게 아닐까 싶어졌지만
그럼 위의 긍정적이고 밝은 글도 다 논리에 안 맞게 되어버리잖아--;

자기고찰은 좀 더 상태가 좋을 때 해야겠다
결론은 나는 날때부터 병신 그러니까 그냥 나를 사랑하자 뭐 그런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려고 했는데.. 으으.. 시름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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