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당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저는 외로운 날에도 괴로운 날에도 더위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비록 당신을 생각하며 행복해진 적도 마음 속이 따뜻해진 적도 없지만 적어도 제 안의 괴로움만은 당신 탓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가며 누구나 입는 상처와 피로와 권태에 휩싸일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면, 그 흔해빠진 것이 아니라 불운했던 나만이 누릴 수 있는 불행으로 바뀌곤 했습니다. 당신이 준 불운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에 조금 슬퍼한 뒤에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편리한 것이었습니다. 네. 분명히 당신을 떠올리면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상처 없이 아픔 없이 불행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그 흔하고 유치한 위기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당신이 없었다면, 그 무료한 봄에 내 머릿 속은 무엇을 생각하며 보냈을까요. 지금 당신은 없지만,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 늘 슬픔이 되지만, 나의 봄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조금도 쉴 수 없었을 거에요. 이 어려운 세상살이 위에서 아무 생각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지쳐, 당신처럼 일찍이 완주를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입버릇처럼 어린 내가 죽겠다고 말하면 당신은 자동응답기처럼 대답했었죠. 당신이 날 살릴 거라고.
그 말대로, 저는 당신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메시아는 아니지만 어쨌건 내가 이 지긋지긋한 걸 붙들고 살 수 있게 하는 사람인 건 분명하지
갈겨놓고 보니 난 참 편리한 사춘기를 보냈군. 이러느라 스물 둘이 되도록 get over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