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라도 보러 오셨나요? 이 의원님."
"……그렇게 부르지 마.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럴리가요. 의원님을 의원님이라고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
이연우가 신민하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주운, 생각보다 간단명료한 우연이었다. 민하의 카페를 알게 된 것도 순전히 닳고 닳은 또 하나의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 한 때는 그가 가진 연상의 여유에 끌렸던 적도 있었다. 민하는 몇 번의 우연이 겹쳐질 때마다 물흐르듯 연우를 흘려넘겼고, 연우는 매번 그의 그런 처세술을 닮으려고 노력했는데――까지가, 전부 과거의 일이었다. 그런 온화하고 깨끗한 비웃음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연우는 빠르게 그를 포기했다. 몇 번인가는 그에게 반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일은 어때, 재미있나?"
"재밌으니까 하나요, 돈 벌려고 하지."
"돈? 당신 시급을 생각하면 이건 돈 버리는 일일텐데. 다 알거든?"
"그래도 이윤이 있긴 있거든요. 여기가 여대 앞이라서요."
민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그잔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의 카페는 내신여대 근처의 괜찮은 카페 중 하나라는 평 외에, 민하의 모교인 하늘대의 도예생들이 손수 제작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뭐라도 주문하지 그래요? 곧 연 씨 시프트도 끝날텐데."
물론 연우의 관심사는 그런 것과 거리가 있다. 그것을 민하도 알고 있다.
"데리고 나가서 밥 먹일 생각이었는데."
"저런, 그럼 다음부터는 카페 밖에서 기다리던가."
"……지금, 비 오는데?"
"자리 팔아서 장사하는 거 몰라요? 들어오고 싶으면 주문해라. 당연한 수순인데요."
음료의 이름 같은 건 잘 몰랐다, 한 때의 지민이 녹차라떼를 좋아했던 것 밖에는.
"그럼……녹차라떼?"
"어라, 여전하네요. 그런 낡은 점은."
낡은 점……그 말에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연우는 어렴풋이 납득하고 말았다. 그 말대로 지민과의 일은 낡은 기억이었고 그 여고생이 좋아하던 음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낡은 습관이었다.
민하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며 홀로 시선을 돌렸다.
"우산셔틀인 주제에, 옛 여자한테 한눈팔아도 괜찮겠어요?"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멀리에 연이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제 목덜미 뒤에서 웃고 있을 민하의 얼굴이 족히 예상됐다. 꿰뚫려본 듯한 기분이 겸연쩍어, 연우는 가만히 안경을 밀어썼다. 드러낸 이마를 긁다가 문득 연과 눈이 마주친다. 그가 이 쪽을 보며 빙긋 미소짓는다. 가르송이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연우도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미소로 화답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연이 고개를 돌려버린 뒤였다. 그는 다시 걸레질에 여념이 없어, 이 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가에 웃음기가 남아있는 것만은 눈에 들어왔다. 연우의 얼굴도 어색하게 풀려있었다.
…….
저런, 하고 등 뒤에서 민하가 웃었다.
"뒷말은 실언이었네요."
그 날 민하가 서비스로 내놓은 것은 끓인 물에 티백을 담근, 평범한 현미녹차였다.
낡았네요 낡았어... 그래도 연우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