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층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신나게 써내려가기로 한:> 이 포스트의 갈래는 일상보고를 목적으로 한다.
일상이라! 사실 학적을 즐겨 밝히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웬만하면 학교 생활에 대핸 적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를 포함해서, 생각보다 본인의 학벌에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사 스무살이고, 나의 현 학적은 이 사회에서 내가 학벌이라고 부르기 가장 쉬운 것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좀 좋기 때문에, 남들 하듯이 지나가듯 한 번 거론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서울특별시 행정기구 설치조례 제3장 제1절에서 "대학교"라 다루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여느 학교들이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도 글쓰기 수업을 교양필수과목으로 한다. 나는 우리 반의 교수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건 단순히 글 쓰기가 싫어서이기도 했고, 다른 반과의 커리큘럼이 뭔가 미묘하게 달라서이기도 했고, 수업내용이 중간고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담스러웠던 것은, 그 앞 강의를 같은 건물에서 듣느라, 교수님께서 강의 시작보다 2~30분 일찍 건물에 도착하시는 걸 꼭 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도무지 인사를 하기도 뭐하고 모른 척을 하기도 뭐해서 이후에는 화장실에서 시간을 떼우기도 하고 빈 강의실에서 아침잠을 보충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언젠가 수업의 일환으로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있다. 다른 반들 전부가 첫 수업의 과제로 끙끙거리고 몇 번인가 첨삭도 받았다던 그 것. 우린 그 때 대자보에서 오타나 비속어를 찾고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다른 반에 비해 무척 늦게, 그것도 무려 실습으로 작성해야 했다. 특이했던 것은 소개의 대상이 미래의 나, 라는 것. 또 특이했던 것은 그 외의 아무 형식을 제시하지 않으신 것. 편지나 뭐 그런 것도 괜찮다고 하셔서 미래의 딸에게 쓰는 편지 같은걸 쓸까도 생각해봤는데, 뭔가 [미안하구나 딸아, 너를 가졌을 때 엄마는 겨우 열 세 살이었어서…….] 같은 걸로 시작했다간 채점하시던 분이 혼절하실 것 같아서 관두고, 유서도 많이들 쓴다기에 유서를 썼다. 동경하는 스물 일곱의 내가 되어서.
사실 누군가 이걸 채점하실 분이 혼절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긍정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스물 일곱 살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부터 내 생일날마다 한 장씩 유서를 쓰기로 결심했다. 되돌아보면 오랜 시간동안 나는 동생을 위해 꿈을 눌렀고 법대를 졸업했고 일상에 눌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도 운좋게, 다시 꿈을 꾸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을 1년 정도 먼 곳에 뒀었지만, 이번에 쓴 책이 10쇄를 찍은 덕분에 모쪼록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동생은 돌아오자마자 묵묵히 대청소를 시작했다. 근래, 내 글을 꿈으로 여겨준 친구 덕분에, 소설이 애니화되고 있다. 독자들과 출판사 식구들에게, 친구들과 동지들에게 모두 감사한다. 나를 지켜주고 있을 그 사람에게도 감사한다. 아, 배가 고프다. 뭐 그런 멍청한 내용의.
쓰면서도 스스로가 비웃길만큼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맞는 문법으로 문장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저런 상황에서 내가 행복할지도, 그렇게 될 수 있을때까지 내가 얼마나 더 5월 21일을 버틸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꼴에 유서라고 레포트를 내는 주제에 서명도 했다. 웃기지?ㅋ 시간도 거의 다 됐고 해서 그냥 내버렸는데, 그러고 나서야 그 글이 수시과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10점짜리였을 거다. 그런데 유독 오랜 시간이 되도록ㅡ그리고 다른 과제들의 점수들이 죄다 A- 연타로 돌아올 동안에도ㅡ자기소개서와는 관련도 없어진 유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유서가 돌아온 게 사실 오늘이다. 놀랍게도, 점수가 매겨져있지 않았다.
교수님께서는 쓰면서 스스로 실컷 망가졌을 글에 점수를 매기는 건 좀 슬프지 않냐고 하셨다. 그래서 반쯤 안도했는데, 각자에게 돌아가고 있는 레포트 아닌 레포트들을 보다가 조금 경악했다. 종이가 꾹꾹 눌리도록 특유의 악필로 메모들을 남겨두신 것이다. 내 몫이 돌아왔을 때 그 같잖은 유서에 무슨 말이 쓰여있을지가 무서웠었다. 글자 그대로, 스스로 실컷 망가져가며 써내려간 글을, 꼭 초등학교 때 흔히 하는 일기장 검사마냥 읽으셨다는 것이 부끄럽고 초조했다. 그런데 그걸 돌려주시면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행복하게 살자."
사실 스무 살의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스물 일곱 살의 내가 행복했으면 했는지도 모르겠다.
받은 글은 다른 첨삭들과 별 다를 것 없이 중간 중간 알아보기 힘든 문자들이 있었다. 어쩌면 한국어를 쓰신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얼굴이 자꾸만 화끈거리고, 눈이 뜨거워지더라. 허겁지겁 클리어 파일에 끼워다 그것을 가방에 쑤셔넣어버렸다. 해독해볼 틈도 없이, 그런데, 그 때만 따라 왠지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