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마 한 달, 한 주, 아니 하루도 못해 한 시간이나 1분, 아니 1초라도 더 빨리,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뭔가 깨달았다면. 혹은 내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면. 일을 미루지 않고, 수줍음을 타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가슴 속에 떠오르는 찜찜한 것에 대한 의문을 풀었더라면. 어쩌면. 와우!
아마.
어쩌면, 아마 어쩌면, 내가 그랬더라면, 이랬더라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했더라면! 쾅쾅!
더러운 불치병이여.
이런 병의 주어는 내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남의 불행을 안타까워하고, 남에게 이런 일 대신 저런 일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그 순간 다른 사람이 나타나 그 사람을 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그 사람에게 다른 심경이 생겨 조금 더 행복해질 순 없었을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앓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뭔가 달라지냐면 전-혀-아니지만. 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이미 방영된 드라마고, 이미 출간된 소설이고, 내가 충고해봤자 지인에겐 아무 도움도되지않는 심각하고 개인적인 문제가 대부분이니까요.
몇 없는 친구는 말했습니다. 세상에 김수현이 하나쯤 더 없겠냐고.
물론 그 친구는 선배의 이름을 모르니까 그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습니다.
만난다면 잡겠지만, 만날 수 없겠지요!
어쩌면 만났던 김수현' 을 놓쳤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오랫동안 그 놓친 어나더원에 대해서 아마, 아마, 아마, 어쩌면,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같은 개뻘짓을 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뭐, 네 그래요. 내가 필요한 건 남자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김수현' 같은건 필요없어요. 김수현도 사실 별로 필요없지요. 시체인걸. 하지만 역시 하지만, 김수현이 갖고 있던 어떤 부분은 그 남자도 가지고 있었으면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랑 이성교제란 걸 할 수는 없을테니까. 세상에 어떤 정신나간 남자가 평생 책임져야할, 자기자식도 아닌정지아가 딸려있는 여자하고, 진지하게 사귀게 될 위험을 감수하고 가볍게라도 교제할 수 있겠어요? 와우. 그 남자야말로 정신에 약간의 지체가 있는 건 아닐까요?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그 여자는 별로 훌륭한 학벌이나 특기가 있는 우수한 인재도, 그렇다고하늘대에 다니는 남자 구두를 핥핥거릴만큼 병신도 아니네요. 루키즘으로 모든 흠을 용서할 수 있을만큼 미인이거나 개인걸레로 만들고 싶을 만큼 섹시하지도 않고, 그런 미인이나 쭉빵이 될 수 있을만큼 부자도 아니고, 차도 집도 없고, 집안일도 싫어하고, 하다못해 적혈구마저 부족하고, 꿈도 희망도 포부도 의지도, 삶에 대한 의욕이나 죽을 용기 같은 것도 없네요.어머나 세상에, 그렇다고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릴 양보하거나 거지에게동전을 주지도 않는데요? 와우! 게다가 지긋지긋한 첫사랑이 원혼이 되어 씌여있기까지! 마지막은 싱싱한 농담입니다만.
여자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도록 찌질하게 굴어서 좀 사귀어주고 싶다던가, 별 생각없이 가볍게 친해졌다가 운 좋게 정이 들어도 나중에 네가 날 속이다니! 하면서 여잘 차버릴 것 같은 케이스 아닌가요? 아. 그러고보니 제 얘기네요.
네 그래요.
그러니까 약간 정신이 나가서 많이 관대했던, 하지만날 불쌍하게 여기진 않았던그 남자에 좀 집착하는 척 할 순 있잖아요?
솔직히 웃기지 않아? 남자를 만날 때 어느 시점에서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에 대해서 밝혀야 하는거지?ㅋㅋㅋㅋㅋㅋㅋ 처음 만났을 때? 아니면 청혼 받았을 때? 아니면 모텔 침대 위에서 막 그이가 내80A짜리 조촐한 가슴이라도 움켜쥐었을 때? ㅋㅋㅋㅋㅋㅋㅋㅋ 여보세요, 차라리 내가 내 남동생이 내 인생의 흠이자 장애물이자 걸림돌이 될 거란 걸 알기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남자가나랑 사귀고 있는 쪽이 편하지 않나?ㅋㅋㅋㅋ
아마, 어쩌면, 내가 그 날, 김수현 씨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의도를 갖고 내게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지, 그런 걸 조금 더 빨리 알고 원하는 답을 해줬더라면, 지금 나는 이렇게 개병신같이 찌질하게 삽질하고 있진 않았지 않을까? 같은
다분히 멍청하고 이미 늦은 후회에라도, 가끔은 시달려도 되는 게 아닐까?
ㅎㅎ..
어머나. 아무도 대답해줄 분이 없네요.
~_~
- 언니 안 취했다.
- 남자 고파서 쓴 글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