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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One Song One Tale

Swallow - 봄의 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꽃그림자가 지민의 뺨이며 이마에 따사롭게 내려앉아 한들거리고, 온화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 위로 벚잎이 날아 흩어진다. 꽃가루 알러지 같은 것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민은 가만히 누워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햇볕의 냄새가, 흙과 나무의 냄새가, 희미한 벚꽃과 봄의 냄새가 났다.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

 응, 애기 왔어? 엄마, 아빠가 자전거 한 대 더 빌렸어요. 이제 너도 안 넘어지니까 엄마 깨워오라고. 나 안 잤는데? 정말요? 응. 애기 얘기 다 듣고 있잖아. 듣고 계신 거 맞아요? 응. 이제 안 넘어진다고 했잖아, 애기 이제 자전거도 혼자 탈 줄 아는 거네…….

 "자는 거 맞는 거 같은데."

 눈을 뜨자, 벚나무를 배경으로 기율이 들여다보고 있다.

 "……어, 잤나?" 
 "잠꼬대하던걸. 나 안 자, 자전거가 어쩌고, 웅얼웅얼."

 이제 와서 그런 것이 부끄러울 사이는 아니지만, 기율이 귀엽던데, 하고 말했다. 그래서 지민은 민망해하는 대신 방금 것은 꿈이었던 걸까 멀거니 생각한다.

 "……내 애기가 온 줄 알았는데."
 "쥬니어 말이야?"

 기율이 목 뒤로 손을 넣어 지민을 일으켜주었다. 계속 올려다보고 있던 벚나무에서, 벚꽃이 만개한 공원으로 시야가 넓어진다. 조금 멍해있는 사이, 따뜻한 손이 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준다. 그 너머에서 작은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다가오고 있다. 지민은 당연하게 손을 흔들었다. 다가오는 것이 자전거여서가 아니라, 그것을 탄 아이가 기율과 지민의 아들이었으니까.

 엄마의 응원을 의식했는지 윤이 손을 흔들려다가, 기율의 주의를 듣기 전에ㅡ조심해, 넘어진다ㅡ조금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다시 균형을 잡고 돗자리 근처까지 다가왔다. 광장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탓에 윤은 아직도 조그맣게 보였다.

 "일어나셨어요?"
 "응. 애기, 자전거 잘 타네."
 "아까 깨우러 갔었는데……. 자전거는 반납했어요."
 "아,"

 어쩐지.
 지민에게 예지몽을 꿀 수 있는 초능력 같은 것은 없다. 잠결에 대화를 나눈 뒤로 계속 옅은 잠 속을 헤맨 모양이었다.

 "피곤하신 거 아니에요? 도시락 싸느라."
 "아니야. 그리고 아직 덜 먹었잖아."

 그 말대로. 샌드위치에 김밥에 초밥에, 메뉴를 하나로 정하지 못한 지민이 마음껏 호사를 부린 덕분에 소풍 도시락은 3인분이 아니라 6인분이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은 어떻게 먹어치웠지만 과일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지민은 소화를 시키느라 기율과 윤만을 먼저 보낸 사이 혼자 청포도를 먹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조금 나른해져서 누워버렸다가, 그대로 잠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음."

 윤이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한 바퀴만 더 돌고 와서 마저 먹을게요."
 "그래."

 손을 흔들자, 윤이 다시 페달을 밟고 멀어진다. 더 작아져서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 힐끗 뒤를 돌아본다. 기율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다. 뭐, 방금 전까지 윤은 지민을 찾아오기에 조금 바빴던 것 같다.

 "네, 자버렸네요."
 "아이쿠, 자버렸네요."

 팔을 감아오는 남편에게 한껏 몸을 기대고, 지민은 쿡쿡 웃음을 터뜨린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과, 봄의 노곤함과, 꽃향기와, 사랑스러운 온기에 홀린 듯이 휩싸인다. 시야는 조금 흔들렸다가, 잠깐 벚꽃으로 그득하게 들어찬 봄 하늘이 되었다가, 온화한 어둠이 되었다가, 달콤한 한숨을 뱉을 때엔 다시 공원으로 돌아온다. 윤이 나타날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지민이 물었다.

 "몇 시야, 지금?"
 "지금?"
 "응, 시간."
 "지금은……."

 기율이 속삭이듯 대답했다.

 "행복한 시간."

 봄바람이 벚나무를 휘감고 지나간다. 꽃그림자가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이나 무릎 위에서 살랑거리다가, 점점이 날아 부서지더니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벚잎이 흩날렸다. 꽃가루 알러지 같은 것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민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봄의 냄새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마침 멀리에서 윤의 자전거가 나타난다. 조금 전보다 속도가 빨라진 것 같다. 질리지도 않고 다시 손을 흔들게 된다. 기율이 감고 있던 팔을 느슨히 풀어주었기에, 지민은 아이를 맞으러 몸을 일으켰다.

 아, 행복한 봄.
 이 봄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따르릉 따르릉. ...
리퀘는 철안든 부부와 철든 애기의 봄나들이였는데 봄나들이 부분만 실현한듯. ....

뭔가 쓰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무튼 봄의 피로는 좋은 곡인 것 같음.
+ 생각났다. 'What time is it? Happy time.' 은 미드 하우스의 619에서 윌슨과 사만다가 나누는 대사였습니당.
사실 '얼마나 잤지……지금 몇 시야? 아직 봄이야.' 쪽을 먼저 생각했는데 저 말장난을 써먹고 싶었음요. 어색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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