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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No More Lilies 01 : 신 하루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일행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 하루가 몸을 숙여 폴리스테이프를 넘으려던 찰나, 나리가 욕실을 뛰쳐나오면서 욕지기를 뱉고 있었다. 몇 주 전에 들어온 신입이었던 그녀는 작은 체구나 소녀같은 취향의 옷차림도 괴팍하게 보일만큼 굉장한 악바리였는데, 지금만은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창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는 모양이 가련하게 느껴진다.

 "괜찮아?"

 말을 걸자, 나리가 고개를 저으며 무어라 대답했다. 속이 역한 모양이었다.

 "괜찮긴 한데……."
 "그럼 쉬고 있어. 내가 들어가볼게."

 나리의 손에 들린 디지털카메라를 뺏어들고 욕실에 들어선다. 벽도 바닥도 온통 하얀 색의 깨끗한 욕실이었지만, 눅눅한 공기에 비린 꽃향기가 진득히 배어있어서 저도 모르게 미간이 구겨진다. 숨쉬기가 불편하다 싶어서 창문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쪽유리창이 하나 굳게 닫혀있었다. 창을 통해 햇빛이 곧바로 떨어지는 자리에 작은 욕조가 놓여있고, 그 옆에는 나이 어린 시니어인 기율이 조사용 키트를 든 채 가만히 서 있다. 건실한 그가 손을 쉬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봤지만, 하루의 기척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욕조 안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배?"
 "아, 응."
 "피해자입니까?"
 "아아."

 그를 따라 욕조 안을 들여다보자, 욕실을 가득 채운 꽃향기의 정체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얀 슬립 차림의 여자가 흰 꽃더미에 파묻힌 채 고요히 죽어있었다. 금방이라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 듯한 평화로운 표정이었지만, 꽃잎만큼이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분명히 시체의 것이었다. 역한 피냄새도 고깃덩이도 없었지만, 나리가 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욕실을 뛰쳐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녀는 겨우 나리의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여자였다.

 "지독하네요. 피해자 신분은 파악되었습니까? 집주인 말로는, 세입자일 것 같다고……."
 "……피해자라면,"
 "네?"

 그녀의 얼굴에 렌즈를 가까이 대고 초점을 맞추려는데, 기율의 목소리가 무어라 말했다. 그 목소리가 촬영을 말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올려다보면, 그는 백지처럼 무미한 표정을 지은 채 굳어있다. 심상치 않았다.
 같이 어울렸던 몇 년 동안, 하루는 기율을 어느 정도 알아왔다고 생각했다. 기율은 연하였지만 선배였고, 그가 습관처럼 짓는 미소에는 언제나 선배다운 여유와 연하다운 상쾌함이 잘 섞여있곤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의 잔재만이 남아있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하루는 기율이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괜찮으십니까, 선배? 하고 의아함에 되묻자, 천천히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목소리가 물기없이 버석거렸다.

 "신분은 여기 왔을 때부터 파악했어. 그녀는……."

 건조한 목소리의 밑바닥에서, 조화(弔花)의 향보다 역한 불쾌감이 진득하게 배어나왔다.

 "……내 약혼녀야."




시체 캐스팅은 죽이기 제일 만만한 내 여자로...
이걸 쓰게 오늘 날 내버려뒀으니 난 이제 3일쯤 얌전히 시험답지를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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