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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가짜 실연, 어린 부부, 다시 한 번 연인

 


 "난 여기서 이만 일어날게, 마저 놀아."

 중혁에게 미리 눈인사를 건네두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연의 술잔 앞에 열심히 오징어를 찢고 있던 나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벌써 가려고? 어디 가? 왜 가는데? 뭐 하려고? 뒷풀이 안 오게? 모처럼 공연했는데? 재잘재잘재잘, 방금 전까지 무대 위에 있던 탓인가 평소보다 훨씬 말수가 많다. 하지만 기율은 (허튼소리처럼 들리더라도) 말한 것은 대개 해내는 남자였고, 그래서 이미 기타를 어깨에 멘 채였다. 사실 누구도 그를 다시 눌러 앉힐 마음은 없어보였다.
 ㅡ잘 가아! 하고 이미 취기가 오른 듯이 깔깔거리던 지유가 미친듯이 손을 흔들었다.

 "마중나온 사람 있거든. 나리는 놀다가 가."
 "마중? 누구 왔어?"

 근래 유부녀가 된 나리가 묻는다. 그러고보니 신부화장보다 더 공들여 그린 듯한 눈화장인데, 땀에 젖어서 조금 번져있다. 그저 들떠있는 팬더에게 질문받은 것에 가볍게 대답했을 뿐인데, 기율은 정신없이 공연의 여운에 시달리고 있던 나리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도는 것을 발견한다. 게임 속의 회복스펠 같은 것을 영창한 기분이 이런 거려나,

 "──여ㅡ자친구우?"
 "응. 여자친구."
 "진짜? 그냥 여자사람친구 말고, 레알 여자친구? 걸-프렌드? 러버?! 언제부터?"
 "글쎄……꽤 오래됐는데, 말 안 했었나?"

 그 때까지도 계속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던 연이 슬라이드를 찰칵 덮어버렸다. 아 좋겠다, 나도 애인보고 싶어. 헉, 언제 또 갈아치웠냥? 헤어졌다는 줄 알았는데? 갈아치운다는 거 다 개구란 거 같아요. 벌써 찼네 차였네 한 게 몇 번째야? 내가 장담하는데, 너 영영 못 헤어질걸? 아니야, 진짜 헤어졌단 말이야. 나 노래부르다 운 거 못 봤어? 나 섬세하거든? 상처받은 남자거든? ……. ……. 왜에? 진짠데?! ……그나저나 나리 너 늦게까지 마셔도 되냐, 남편이 뭐라고 안 하겠어? 에이, 늦게까지 술마셔도 안 혼나니까 결혼한 건데요……농담이지만, 아마 지금 TV볼걸? 천천히 마중나오라지 뭐. ……나리네 마누라 불쌍해……신혼인데 혼자 쓸쓸하게 TV나 보고……. 그래, 내 걱정 말고 하루한테나 좀 잘해주라고.
 뭐 임마? 내가 우리 남편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그쵸, 형?

 왁자지껄한 흥분 속에 잠시 섞여있다가 말고, 기율은 슬쩍 거리로 빠져나왔다. 거리는 여느 때 같이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찬 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번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풍경이 태연한 거짓말처럼 느껴졌기에, 기율은 잠시 걸음을 멈춰서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거리에 지금의 기분이 멋대로 씻겨내려갈 것 같았다. 뺨에 닿는 밤공기가 유독 차다고 생각하다가, 뒤늦게 자신도 그 속에서 함께 들떠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길게 숨을 내뱉자, 가슴에 남아있던 미열이 하얀 입김에 섞여 한 모금 빠져나갔다. 마냥 반짝이며 흘러가는 사람들과 불빛들 사이를 눈으로 헤매다가, 기율은 익숙한 실루엣을 찾아낸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지민아."

 그녀만은 흐르지도 떠내려가지도 않고, 거리 위에 그저 서 있었다. 서서, 기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여자사람친구 말고, 정말 여자친구.

 "멋있던데, 주 기율 씨."

 그녀가 가늘게 눈을 휜다. 짧은 말과 미소만으로, 옅어지고 있던 무대 위의 여운을 아무렇지 않게 긍정받는다. 지민과 헤어졌던 것은 기율이 밴드에 베이시스트로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기에, 그녀가 공연을 보러 온 것은 처음이었다.

 "어때, 재미있었어?"
 "응. 율이는 재미있었어? 신났어?"

 지난 2월마다 거듭했던 것처럼 한 걸음 반 앞에 멈춰서려다가, 한 발 더 다가가 팔을 뻗는다. 지민은 조금 휘청거리며 기율을 받쳐안다가, 끌어안겼다가, 작은 기합소리와 함께 발꿈치가 공중에 들려버리고 말았다. 잠깐만, 하고 멈춰세우기도 전에 한 바퀴 타원을 그린다. ……알았어, 알았어. 신난 거군요. 네, 신났습니다. 다행이네요. 네? 바짝 매달린 어깨 너머로 하얗게 숨을 뱉으며, 그녀가 날아오를 듯이 웃었다. 미지근한 열기가 한 모금 섞인 웃음소리였다.

 "계속 웃고 있길래, 좋아하고 있구나 생각했었어."
 "……내가 그랬어?"
 "응, 계속 보고 있었으니까 확실. 그렇지?"

 같은 온도의 웃음을 공중에 흘리며, 기율은 눈을 감았다.

 "응, 좋아해."

 사실, 두 사람이 이런 사이로 돌아간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버린 나리와 나리의 남편이나, 더 먼 사이가 되려고 하는 연과 연의 애인과는 달리, 어렸던 날의 두 사람과 꼭 닮은 거리의, 하지만 그 때와 온전히 같지는 않은 사이로. 하지만 그래서, 그게 언제부터냐는 나리의 질문은 대답하기 모호한 것이었다. 그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기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 치마 입은 애 있잖아. 응? 아, 여자애 말고, 여자애같이 꾸민 남자애. 아, 연이? 응. 가터벨트도 한 남자애. ……응, 연이. 연이가 왜? 노래 부르다가 찔끔찔끔 울던데. 그래? 응. 듣고 있는데 나도 좀 슬펐어. 잘 부르는 거 같아. 그렇지? 보컬 마음에 들어? 응. 뭔가 여자애같은 목소리. 듣기 좋았어. ……아까는 나만 본 것처럼 말하더니, 그런 것까지 다 보고 있던 거야? 에이, 내가 언제 너만 봤다고 그랬어? 난 오늘 아주 평범한 관객이었다구. 그냥 공연하던 사람 중에 한 명이 내 남자친구처럼 참 잘생겼길래, 그 남자를 좀 더 많이 본 거 뿐이야. 아하, 그 남자를 좀 더 많이. 응, 아주 조금 더 많이.



써놓고 보니 내가 쓸 글이 아니었던 것도 같음. 무슨 생각으로 귤이로 1인칭을... 게다가 글 더러워. ....하지만 이미 썼으니 공개를 하자. .. ... .. 의의는 웨말 멤버 전원 등장과 연우연 할날 귤밀의 그런... 번데기. .... ...뭐 그런데 의의를ㅂ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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